*  미국 탐사 갔다 온 지 몇달이 지났건만

여태까지 침낭을 빨지 않고 베란다 구석에 박아 놓았다

 

몽골 탐사 생각이 나면서  준비물을 떠 올려 보다가

아차!  싶어 오늘 얼른 침낭을 빨았다

 

내 침낭은 오리털도 아니고, 그 유명한 거위털도 아니다

옛날 미군부대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부피도 크고 무겁다

그러나 거위털 못지 않게 무척 따뜻하다

침낭이야 다 그렇겠지만 속에 들어가면 부드러운 털이

온몸을 폭 감싸 주는 그 느낌은 세상에서 내 침낭이 최고라고  자부한다

 

다들 알고 있듯이 박자세 학습탐사는 거의 해병대 훈련 수준이다 ^^

아직은 나이를 의식하지 않지만 하루종일 탐사 다닌 후

마지막 박사님 파워포인트 강의까지 끝마치고 또는 늦게 까지 별을 공부하고

텐트로 돌아와서 지친몸을 침낭속으로 넣었을때의 그 푸근함을 무엇으로  표현할수 있을까

 

침낭이 커서 세탁기에 못 돌리고

욕조에 넣고 발로 지근 지근 밟는데

탐사 갔을때 여러 장면들이 구름 처럼 피어오른다

 

침낭에서 자 본 것이 얼마 만인가

대학생때 방학에 MT갔을때 인가 생각도 가물한데

 

지금 이 나이에 텐트에서 침낭이라니..

낭만도 아니고, 현실이 되었다

아무튼 학습탐사를 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

 

제4차 해외탐사인 호주탐사 부터 시작이다

처음 침낭을 깔고 딱딱한 땅에 등을 대고 누었을때

불편함을 넘어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서글프고 원시인이 된 것 같았다

 

특히 비오는날 침낭속은 정말 적응이 안되고, 근처 야영장에 있는 캐빈에서

자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웠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두번째 학습탐사 부터는 스스로 놀랄정도로

몸이 그 사이  빨리 적응을 했다

불편은 낭만이 되었고,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를 즐기고, 딱딱함을 끌어 안기 시작하며

원시인이 고급 자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세번째 미국탐사에서는

침낭과 아주 오래된 친구마냥  친숙해져 있었다

 

처음 호주갔을때는 침낭을 단체로 빌려서 지금 침낭은 두번째 호주 탐사부터 사용한다

 

'서호주' 책이 나온 그 호주탐사에서는

호주의 붉은 흙을 내 침낭은 가장 먼저  떠 올릴것이다

털어도 털어도 결코 없어지지 않던 그 붉은 흙들, 서호주의 그 붉은 대지들

 

텐트속으로 밤새 숨막히게 쏟아지던 별들은

침낭속에 촘촘히 박혀 있다가 지금  침낭을 밟을때 마다

은하수하나, 남십자성 하나, 안드로메다 하나, 리겔 하나

툭툭 튀어 나오고 있다 

어느날은 황홀한 별들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밤새도록  별 따라 아스팔트를 걷다가

새벽에 하얀달이 뜨는것을 보고 텐트로 돌아온적도 있었지 

 

허브향이 가득한 그날 야영은

영화 ' Out of africa ' 를 닮았었다

그곳에서의 시뻘건 새벽일출과 야생화밭의 산책

그 새벽빛과 허브향이 지금 내 피부를 감싸고 돈다

 

무수한 개미집들과 바오밥나무들 유칼리 나무들과 철광산들

헤머린풀, 카리지니, 왈루길들, 순박하게 보였던 에보리진들

구름이 발아래로 지나가는 180도의 둥근 지평선

비오던 퍼스시내

팬티바람의 게스트하우스의 젊은 백인청년들까지... 

 

그리고 우리 대원들

서호주에서 긴 길들을 같이 달리며

투명한 파란 하늘빛의 여러 낮과

비 같이 내리던 별들의 여러 밤을  같이 했던 대원들

 

그분 눈에서는 항상 완전을 향한 光氣가 뿜어져 나온다  카리스마 박 -  박사님 ^^

은근슬쩍 위트 넘치게 말씀하심 그러나 깊은 뜻이 들어있음  -  이은호선생님

묵묵하게 자리 잡고 계시다가 굳은일 잘 도와 주심 -  이원구선생님

유머섞인 말로 자주 분위기를 환기시켜주시고 길 안내를 잘해 주심 -  이홍윤선생님

코디의 본모습이란 이런것이구나를 보여주신 책임감 넘치시던 멋쟁이- 김제수선생님

옆에 같이 있는것 만으로도 푸근함을 느끼게 해주심 - 김승수선생님

단단한 기준점같이 아무리 우리가 위험에 빠져도 괜찮을 것 같았던 든든함 -  문장렬선생님

부드러움과 배려심으로 무장하심  - 고마움이 저절고 느껴지던 신양수선생님

항상 웃는 낯으로 대원들을 친동생들 같이 돌바주시며 좌중을 책임지심 - 김기영선생님

박사님의 오른팔처럼 믿음직스럽고 무게감이 느껴지심 - 박종환선생님

조용히 그러나 여성들이 가장 쉽게 다가갈수 있게 도와주심 -  송영석선생님

한번씩은 엉뚱하게 행동하지만 학습 열정이 넘치심 -  남원직선생님

물 불 안가리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가장 젊은이 답게 열심히 일해주심 -  문상호선생님

 

우리 여성대원들

꿈많은 영원한 소녀들

그 나이에 친구들은 골프다. 드라마다. 자녀들  남편들 소재로 시간을 보낼 나이에

이 무슨 진리를 탐구하겠다고 가족들 다 버리고 텐트에서 침낭을 끌어 안고 날 밤을 새고..

 

하나 같이 독특한 향기를 내는 꽃들이었지

산소같이 맑은 서박사님, 포톤같이 투명하신 광자샘, 여성들의 무게 중심 현미샘

대원들의 뒷바라지의 숨은 공로 홍총무님, 열공에 푹 빠져 계시던 비단같은 목소리의 복미샘

엉뚱한 소리를 슬쩍하시고는 본인은 시치미를 뚝떼고 계심. 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던 미소천사 이 경샘  

영원한 소녀의 대명사- 순수함과 사교성으로 우리를 부드럽게 엮어 주시던 문교수님

얼렁뚱땅 하면서도 분위기를 곧 잘 만들어 주시던 향수샘 

두번째 영원한 소녀, 언제나 환한 웃음과  매사에 열정적이신  홍경화샘

막둥이 , 우리의 기쁨조, 영리하고 이쁜 아샤  이슬아

 

시간이 지났는데도

같이한 그때의 그들의 면면이 뭉게 뭉게 다시 떠 오른다

 

그리고 다시 미국 남서부의 10여일

 

미국서부에서의 야영은 ' English patient ' 의 사막과

아스라한 기억의 ' 돌아오지 않는 강' 을  떠 올리게 했지

 

LA공항에서 처음 만난,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던 건조한 바람

사막특유의 독특한 바위산이 있던 앤자 보레고 야영장

비오던 팔로마천문대. 눈날리던 키티피크 천문대  

내려오면서 본 끝없이 펼쳐진 분지와 눈덮힌 높은 산

작은 마을의 서부 개척자 박물관 , 멕시코 식당, subway 샌드위치

 아리조나주 찍고,  뉴멕시코주 찍고, 유타주 찍고, 콜로라도주 찍고

사구아로 선인장 보고, 운석분화구 보고, 규화목 보고

차코 캐년 유적지, 메사버디 유적지,  캐년랜즈와 그랜드 캐년

마지막으로 간 데스벨리

 

눈보라속을 뚫고 밤 고속도로를 가던 플래그스탭

찬란했던 과거를 덮고 있던 황량하고 쓸쓸하던 인디언 유적지들

추워서 다들 잠을 못 잔 나바호 주립공원의 야영장

그 때 나는 추워도 끝까지 밖에 나가지 않고 내 침낭을 힘껏 끌어 안고 새벽까지 잤다

등에 핫팩이 하나 붙어 있긴 했지만...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던 캐년의 바위들

그리고 데스벨리 - 광활함. brown톤의 다양한 색변화. 아름답게 삭막했지

 

짐을 잃어 버림. 추운곳에서 떨며 밤잠을 제대로 못잠 , 밤눈길을 폭설을 맞으며 운전함

천문대를 제대로 보지 못함. 여권을 잃어버림. 감기에, 치통에,  누군 열이 나고.

오랜 운전에, 시차극복에...  힘들었어도

먼저 운전하고, 먼저 식사 준비하고, 먼저 텐트 치고, 먼저 짐 나르고.

우린 서로를 격려해주었고  용기를 주었고  힘을 붇돋워 주었다

나중에 짐과 여권을 다시 찾고

비도 눈도 그치며 날씨도 더욱 청명해 지면서

매일이 다양함의 연속, 나날이 기적 같았던  미 남서부 탐사

고생이 많았기에,  사실 탐사 = 고생을 미리 각오하지만

원하던 고생이었고,  의미있는 힘듬이기에 더 깊이 각인된 탐사였다

 

 

학습탐사 속에는 공부와 사람이 같이 섞여 있다

박자세 학습탐사가  계속 되는 한

그곳의 장면들과 더불어 같이한 공부와

같이한 탐사 대원들의 사연은 씨줄 날줄로 짜여져서

박자세 대하소설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을것이다

 

지금 내 침낭이 다 마르면

나는 몽골 갈 채비를 할 것이고

또 다시 내 침낭은 몽골의 수 많은 기억들을 담아 오겠지

 

우리 우주, 우리 지구,  우리 박자세 학습탐사

알아 갈수록 더욱 더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