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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가 주인공 인도 소년이 처한 골치 아픈 상황이다.

구명보트의 한쪽은 주인공 파이가, 반대쪽은 벵골 호랑이가 누웠다.

보트 아래로 바다거북과 상어와 수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친다.

 왜 호랑이와 구명보트에  타게 되었느냐고? 사연은 복잡하다.

 

파이가 처한 고통은 이중적이다. 표류를 극복해야 하며, 호랑이가 자신을 잡아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227일간 태평양을 떠다니는 게 가능할까?

 

표류 이야기가 책의 중심이지만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동물원과 파이의 다중 종교 생활도 흥미 있다. 어린 파이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힌두교를 모두 믿게 되는데 이 종교적 다원주의자의 어른스러운 철학과 그를 인도한 스승들의 종교관이 흥미 있다. 이런 스승들만 있다면 세상에는 평화가 넘실거릴 텐데.

 

이 소설은 실화가 바탕이 되었다. 작가는 이 실화를 인도 여행 중에 듣게 되며 그 주인공을 만나게 되었다. 그야 말로 우연이다. 그 때 작가가 처한 상황은 심각했다. 출판한 장편 소설은 주목을 받지 못했고 쓰고 있는 다음 작품은 터덜대다가 멈춰버렸다. 집필 중인 작품을 생각하면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작가 노트에서 말한 그의 고충을 들어보자.

 

“테마도 좋고, 문장도 좋다. 인물들은 어찌나 생생한지 실제 인물로 여겨질 정도. 플롯은 웅장하면서도 단순하고 매력이 넘친다. 조사도 다 해 놓았고, 소설을 진짜처럼 보이게 할 자료 - 역사, 사회, 기후, 식문화 - 도 다 모아놓았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긴장을 깨준다. 지문에는 색과 대조와 세세한 묘사가 넘쳐난다. 정말이지 이 소설은 멋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한데 이 모두를 합하니 별 볼 일 없는 글이 되어버린다. 이야기는 감정적으로 죽어버렸다. 그걸 알면 영혼이 와르르 무너진다.”

 

작가는 실패한 소설 노트들을 우편으로 부친다.

시베리아의 가짜 주소로. 반송 주소로는 역기 가짜 볼리비아 주소를 적는다.

그는 소설을 살해한 후에 치유를 위해 인도 남부로 여행을 떠난다.

그 곳의 커피 하우스에서 그는 백발의 노신사에게서

 “내 이야기를 들으면, 젊은이는 신을 믿게 될 거요.” 라는 말을 듣게 된다.

작가는 “무리한 요구네요” 답하며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사건은 이천년 전 로마 제국의 외진 곳에서 일어난 일도,

7세기에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몇 년 전 인도 남부의 폰디체리(구글지도에는 퐁디셰리로 나온다)에서 시작되어

 캐나다에서 끝난 사건이었다. 노인과의 만남이 작가가 이 소설을 창작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소설은 실화에 기초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로 넘쳐난다.

곳곳에 유머가 흘러 소설에 윤기를 더한다.

작가노트와 파이 소년이 육지에 도착해서 입원한 멕시코 병원에서

일본 운수성 직원과 나눈 3부의 대화는 멋있는 마무리다.

 육식 섬이라니 그런 게 어디에 있단 말인가?

3부는 이 소설이 다큐멘터리인지, 아니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준 소설인지 애매하게 다리를 걸친다.

 

파이 이야기는 2002년 부커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였다. 한국에서도 꽤 팔렸다.

 나는 우연히 서면의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그 매력에 빠져버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 책의 특이한 표지가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좋은 책과의 인연은 이렇게 이어진다.

먼저 서두의 작가 노트를 펼쳐 보시라. 이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