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30대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자신의 경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자신은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일을 겪었기에 세상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경향이 그 사람이 실제로 배운 지식의 양이나 경험한 일의 종류에 관계 없이 모든 영역의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이 똑똑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능력이 비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조차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진실할 수 밖에 없다. 누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삶 위에서 두 번째로 좋아 보이는 선택을 하겠는가?

 어쩌면 이런 믿음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할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간접적 혹은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 얻은 정보들 밖에 없다. 긴 시간 동안 유사한 일들을 겪고 유사한 결과들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지식체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우리가 더욱 자신감 있게 선택을 하고 일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직・간접적으로 얻은 지식의 틀에 의해 제한된다는 것을 잊게 만들어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한다. 이 치명적인 덫은 아이러니하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성공을 한 사람들에게 더욱 달콤하게 다가간다.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브래드피트 주연의 머니볼(2011)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 너머를 보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야구 영화의 주인공 빌리는 야구 선수가 아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라는 비인기팀의 단장이다. 단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팀에 필요한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거나 발굴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클랜드 같은 비인기팀의 자금 상태는 빈약할 수 밖에 없고 좋은 선수를 사오기 어려우니 팀의 성적은 초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빌리는 이기고 싶다. 자신은 이기는 팀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것이라며 구단주에게 좋은 선수들을 사올 수 있도록 더 투자할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더 대어줄 자금이 없으니 있는 자금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는 답뿐이다. 아무리 다른 스카우터들과 회의를 해보아도 지금껏 수없이 해왔던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빌리는 같은 방식으로는 같은 다른 결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야구에는 삼박자라는 것이 있다. 먼저 공을 잘 쳐야 하고 출루를 해서는 잘 달려서 다음 베이스에 성공적으로 도착해야 하고 또 수비 시에는 수비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격, 주루, 수비의 능력을 겸비한 선수에게는 삼박자가 갖추어졌다며 훌륭한 선수라는 칭찬이 따라 붙는다. 따라서 야구계에서는 이렇게 선수들의 능력이 밸런스를 잘 갖추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사실 빌리 역시 삼박자를 잘 갖추었다는 평가를 들으며 매우 촉망 받는 야구선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팀과 대학 팀의 제안을 받고 고심하다가 프로의 길을 선택했지만 빌리는 실패하고 만다. 스카우터들의 달콤한 칭찬과 거액의 계약금에 이끌려 한 선택은 그를 실패한 선수로 만들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카우터의 길로 전향해서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단장으로서도 그는 성공했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는 여전히 게임에서 지고 있다.

 그의 집념은 결국 적은 돈으로도 이길 수 있는 팀을 꾸리는 방법을 찾게 한다. 하지만 그를 구한 것은 선수 개인의 밸런스에 대한 고민도 오랜 시간 야구를 한 사람들의 조언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기존의 가치들은 그가 이기는 팀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그를 승리로 이끈 것은 세이버 매트릭스라는 이론이었다. 세이버 매트릭스 이론은 선수들의 경기를 철저하게 관찰해서 선수들의 능력을 수학적 통계적으로 분석해 데이터화 하는 이론이다. 빌리는 예일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피터를 만나게 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이기는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을 믿고 이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만만치는 않다.

 그는 오직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선수들은 사생활이 문란하다거나 부상이 잦다거나 고령이라거나 하는 이유로 다른 팀에서는 기피하는 선수들이었고 그는 많은 비난을 받는다. 같이 일하는 스카우터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고 감독 역시 그의 설명을 믿지 못해서 그 선수들을 기용하지 않는다. 또 선수들 사이에서도 불신이 감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밀어붙인다.

 세이버 매트릭스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서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하지 못하는 스카우터들이 일을 그만두는 것을 감수한다. 또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등용하지 않자 감독이 중용하는 선수를 팔아버려서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든다. 그래도 초반에는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 실제로 이 팀은13연패를 할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고 한다. 하지만 서서히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하위권을 맴돌던 팀은 후반에 20연승이라는 아직도 깨어지지 않은 금자탑을 세우고 조 1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한다. 물론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스타들이 즐비한 팀과 시합을 하게 되고 전체적으로 높은 밸런스를 갖추고 있는 이 팀의 벽을 넘지 못해서 월드시리즈 진출은 좌절된다. 하지만 스타 선수가 거의 없이 이루어낸 이 팀의 성과는 세간의 주목을 끈다.

 빌리는 레드 삭스라는 팀의 구단주에게 엄청난 연봉을 제시 받지만 더 이상 자신이 있을 곳을 돈 때문에 결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오클랜드 팀에 남기로 결정한다. 빌리를 영입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빌리가 적용한 세이버 매트릭스 방식을 도입한 레드 삭스팀은 다음해(2003년) 1918년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하게 된다.

 빌리는 아직 오클랜드 팀의 단장직을 맡고 있지만 현재 오클랜드의 성적은 그렇게 좋지 않다고 한다. 2006년에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기도 하지만 그 이후 팀의 성적은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세이버 매트릭스를 통해 선수를 등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이미 다른 팀에서도 세이버 매트릭스 방식을 벤치마킹해서 적절하게 활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선수들을 기용하거나 배치하는데 세이버 매트릭스를 통해 분석된 자료를 참고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2002년에 빌리가 한 게임들은 단순히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야구를 보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임을 한 셈이다. 밸런스나 경험, 직감 등의 단어들로 안 보이게 포장되어 있던 부분을 수학적이고 통계적인 방식을 통해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드러내고 그 것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틀을 야구에 적용시킨 것이다. 비록 빌리의 성적은 계속 변하지만 세이버 매트릭스를 활용하는 방식은 적어도 당분간은 야구계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빌리가 한 일이 어쩌면 우리 박자세가 앞으로 보일 행보와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아직 과거의 야구계와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과정을 밸런스, 경험, 직감 등의 단어로 덮어 씌어 놓고 뭉뚱그려 이해하려고 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박자세가 자연과학운동을 하는 이유는 이렇게 과정에 씌어져 있는 블랙박스를 걷어내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해서 모두가 공유하고 적절하게 사고 해서 더 낳은 선택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 일 것이다. 만약 게임을 한다면 빌리처럼 더 큰 것을 바꾸는 게임을 하고 싶을 것 같다. 분명 그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그 쪽이 훨씬 더 흥미진진할 테니까. 그래서 박자세의 법인화를 지지하며 한 표를 던진다. 경기장 안이든 밖이든 박자세가 보여주는 경기는 익사이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