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즈막한 오후, 점심식사를 이른 시각에 한 탓인지, 위장에서는 소화할 것 좀 달라며 떼를 쓰길래

이 녀석을 달래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연구실을 나선다.

 

학교의 축제기간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에 학생들이 많다.

도서관 굴 속에 갇혀 펜 연장으로 책에서 지식을 캐던 학생들은

축제기간 만큼은 자신들이 즐기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여기저기 천막을 세워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떡볶이 떡과 삼겹살을 꼬치로 만들고 소스를 발라 파는 가게가 있다.

먹음직스런 고추장 소스는 시각신경을 자극하고 갓 구워낸 삼겹살의 내음이 후각신경을 자극하면 혀는 이미 맛보고 있는 듯 꿈틀대며 침을 만든다. 거기에 떡볶이의 쫀득쫀득한 맛이 미각신경을 상상하니 그것은 밥 먹으러 가는 나에게 패배를 의미했고 삼진아웃되는 타자가 되기 전에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치고 왜 인지 모르게 조금은 울적한 기분이 들어서 세로토닌이 부족한 탓인 것 같아 햇볕도 조금 쪼일 겸 학생식당 앞 난간에 서서 공연을 보기로 한다.

 

학생식당이 있는 건물은 학생회관이고, 그 앞에는 둥근 광장이 있다. 광장이라고는 하나  자동차 몇 십대가 들어갈 수 있는 정도여서 광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하다.

하여튼 그 광장에서 축제의 마지막 날 동아리 합동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이다.

 

동아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자신을 ‘동아리의 선캄브리아대’라고 소개했던 남자는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관객들에게 호응을 요청한다.

연예인이 온 것도 아니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무대 앞에는 3, 40 명 정도가 모여서 구경하고 있고 혹은 나처럼 전망 좋은 건물 2층 난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자는 슬슬 리듬을 타며 힙합 스타일의 곡을 부르기 시작하니 나도 절로 흥이 나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거리게 되고 한 발로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듣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별 관심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이고 서 있는 사람들도 별 감흥 없이 듣고 있으나,

무대 바로 앞에 있는 (아마도 같은 동아리 후배들일 것인) 열 댓 명의 사람들만 머리위로 손을 들어 흔들며 호응해준다.

 

그러다가 구경하는 몇몇이 저 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보여서 시선을 따라가보니 그곳엔 3층 난간에서 구경하는 젊은 여성 두 명이 있다.

그들은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고, 한 쪽 다리는 난간에 걸쳐 올린 채 무대의 음악에 맞추어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신나게 머리와 몸을 흔들고 있다.

공연자가 곡 중에 잠깐 “연영과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것을 보아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인 것 같다.

 

잠깐 설명을 덧붙이자면, 우리 학교 내에서 큰 소리를 내어 선배에게 인사하는 집단은 학군단(ROTC) 말고 연극영화과가 유일하다.

선배를 만나면 후배는 허리를 90도 굽히기는 기본이고 “안녕하십니까 ! 연극영화과 OO 학번 OOO 입니다 !!“라고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

엄격한 군기 탓에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기도 해서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의 결속력, 그 결속력이 낳은 격렬한 호응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가식 없이 순수하게 무대를 즐기는 사람으로 보인다.

 

평소 힙합을 즐겨 듣는 것은 아니지만 몸을 흔들고 싶어지게 만드는 흥겨운 무대는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의 진심으로서 무대와 호응하지 못하고 있는 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질지에 더 신경 쓰기 때문이다.

무대 앞에 호응하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손을 흔들면 덜 신경 쓰일까?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저기에 있든 여기에 있든 달라지는 건 주위 사람들 뿐.

만약 저기에서 손을 흔들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주위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보이기 위한 ‘가면’ 때문이다.

나는 ‘점잖떠는 애늙은이’로 보여지고 싶은 것일까? 소심한 애늙은이와 공감하고픈 관객, 이 중 진정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생명력 넘치는 삶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축제’다.

별의 먼지로부터 태어나 곧 별의 먼지로 돌아가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생명으로서의 지각을 가지고 삶이라는 축제를 즐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면'을 던져버리고 생명력을 마음껏 발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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