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힘은 들었지만 참으로 행복했던 순간들 -
I Shall Go Back / Edna St. Vincent Millay
I shall go back again to the bleak shore
And build a little shanty on the sand
In such a way that the extremest band
Of brittle seaweed shall escape my door
But by a yard or two; and nevermore
Shall I return to take you by the hand.
I shall be gone to what I understand,
And happier than I ever was before.
The love that stood a moment in your eyes,
The words that lay a moment on your tongue,
Are one with all that in a moment dies,
A little under-said and over-sung.
But I shall find the sullen rocks and skies
Unchanged from what they were when I was young.
나는 돌아가리라 / 밀레이 (1892- 1950 )
나는 돌아가리라 쓸쓸한 바닷가로
거기 모래 위에 조그만 집을 지으면
작은 해초 덩굴 문 앞에 한 두자씩 자라나리니
너를 맞으러 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내 좋아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니
잠시 동안 그대 눈 속에 비쳤던 사랑
잠시 동안 그대 혀 위에 속삭이던 말
잠시 동안의 모든 것 다 사라졌다
말은 너무 박했고 우린 지나치게 기뻐했거니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저 서글픈 바위와 하늘을 나는 찾아가리라
* 비와 눈이 섞여 오는 화요일 오전 시를 한편 읽는다
어제 저녁 서래마을 사무실모임에서
우리는 '자연과학 문화운동'을 하고 있다
- 좋아한다고 했을때에는 책임을 져야한다
그래서 말은 함부로 하는것이 아니다
( 이 단계에서 울 참석한 회원들 다 찔끔 ㅋㅋ ) -
따라서 우리는 ' 규칙 '이 있다
운동은 그것을 실행하는 개별 구성원이 있다
핵심은 quality 이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적으로 1인당 GDP 2만오천달러 곧 3만달러가 된다고 하는데
문화적으로는 내세울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래서 우리가 과학운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계적 단체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못 할것이 무엇있는가
개인이 가진 quality 가 아무리 높아도 ' so what ? ' 무슨 소용이 있나
전달이 중요하다 왜? 우리는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에.
내용은 넘쳐난다
표현을 안하는것은 없는 것과 같은것이다
형태가 있어야 전달 가능하다
특별한 form이 있어야 한다
형식만이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frame 으로 다시 나와야 한다
공부한 것을 글로 형태를 남겨야 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책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가장 중요한것은
' 그냥 하자 ! '
하다 보면 그때 부터 길이 생기고
그 길이 역사가 된다
'자신의 역량을 결정짓는 것은 Presentation뿐이다.
내가 느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Presentation하는 게 중요하다.'
'Presentation'도 훈련의 대상입니다. 노출되고, 익숙해져서 몸에 쫙 달라붙게 해야겠습니다.
탈무드에 말보다 행동이 소리가 더 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집 가훈이 '하고 따져라.'입니다.
요즘 조금 틈이 나면 비고츠키의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를 보고 있는데 4살짜리 아이가 말을 익히게
되면 선반 위에 놓인 캔디를 얻기 위해 ' 저기 캔디가 있네, 손을 뻗으면 닿을려나, 아니야 의자를
가져다가 올라가야해, 팔이 안 닿는데 어떻게 하지.' 그러면서 자꾸 자신을 시뮬레이션 한다고 합니다.
말로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행동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분명히 4살짜리
아이의 경우입니다. 이런 기능이 커가면서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고 시뮬레이션 한다고 생각합니다.
닥쳐 올 미래를 충분히 준비한다면 좋은 시뮬레이션이지만 대부분 걱정과 불안에 쌓여 살아가는게
우리네 삶인지도 모릅니다.
선각자의 말을 따르는 것은 내 행동의 예측을 넘어선 시뮬레이션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사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 중에 박사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 줄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 금전적이든, 열정이든, 노력이든 투자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내어 놓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그 사람들을
대하는 철학이다'라는 말씀이십니다.
늘 생각해 봅니다. 제가 느낀 박자세는 그 모습이 가득한 모임이며
운동이었습니다.
나 또한 내게 치료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신문 기사에서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가능성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려한 그것을 따르는 것
그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하자!의 의미 너머엔 내가 모르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느끼신 바를 'presentation'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resentaion 하지 않으면 그것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박사님 말씀 깊이 공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