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에 다녀온지 벌써 3주가 다 되어 간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에 입이 벌어진다. 나는 요즘 아이들 앞에서 익숙하지 않은 수업이라는 걸 연습 해보고 있다. 수업준비에 청소 지도에 상담까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매달리다보니 시간 횡하니 지나가 버린다.

 

생각해보면 미국 서부에서 보냈던 시간도 그렇게 지나갔던 것 같다.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고 그것들에 빠져 있던 사이 시간은 어느새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좁은 마음에 다른 가치관에 서운한 점도 있었고 고생도 있어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잘 다녀온 것 같다. 신선한 경험들은 시간이 지나도 내 안에 살아있다. 학습 탐사 참 잘 다녀왔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산들이 엽서 속 풍경들이었다. 단 하루만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체험할 수 있었던 도로는 참 황당 신비스러웠다. 어떻게 그렇게 시시각각 변하는지 이상기후라더니  제대로 이상했던 것 같다.  

 

미국 서부 학습 탐사의 수 많은 추억 중 딱 한 가지 추억만 뽑으라면  내게 멋진 별밤을 제공했던 데스벨리에서의 밤을 뽑겠다. 그날 내가 탓던 4호 차는 통신 상에 약간의 오해가 생겨서 다른 차들과 다른 길을 타고 데스벨리로 향했다. 서로를 찾느라 시간 낭비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외각이긴 하지만 라스베가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 지역을 다니며 많은 집들을 봤지만 참 볼품이 없었다. 대충 지어진 집들이 많았고 콘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집으로 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집들만 보다 미국의 중산층의 집을 보니 참 좋아 보였다. 미국은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밤 늦게 도착한 데스벨리 입구. 나는 어찌 들어가나 좀 걱정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미국 사람들이 입구에서 티켓을 팔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일 아침 일찍 돈을 내면 되려나 했더니 한 쪽에 입장권 자동 판매기가 있었다. 텐트를 칠 캠핑 사이트 자리는 어떻게 찾고 어떻게 돈을 내나 했더니 또 자판기가 있었다. 낯설긴 했지만 밤늦게 찾아온 여행객들에게는 참 편리한 시스템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미리 경험해보신 김병수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꽤 오래 헤매거나 다음 날이 되어서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덕을 참 많이 본 것 같다.

 

심하게 부는 바람 속에서 텐트를 치고, 오는 내내 기대하고 있던 공송심 선생님의 부대찌게를 먹었다. 참 맛있게 먹었다. 열심히 먹는데 옆에서 김병수 선생님이 박종환 선생님께 비박을 제안하신다. 좋은 포인트를 봐두신 게다.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얼른 가고 싶다고 따라 나선다. 바람 속에서 힘들게 쳐두었던 텐드를 접고 침낭을 집어들고 다시 4호 차에 올랐다. 말로만 듣던 비박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데스벨리는 뭘 보여 줄까?'

 

데스벨리의 밤하늘은 참 묘하다. 일렁거리는 별밤이다. 낮 동안 데워진 사막의 공기는 별들을 춤추게 한다. UFO의 신호 같기도 하고 미국의 공군부대 같기도 하다. 그러다 잠잠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전날 심하게 떨었던 탓에 춥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다. 걱적은 걱정으로 끝났다. 바람이 불긴 했지만 바람은 오히려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우리 3명은 같이 있었지만 조금 떨어져 각자의 밤하늘을 갖기로 했다. 비박은 조금 고독해야 제맛이란다. 두 분은 벌써 별똥별을 몇 개나 보셨단다. 눈을 부름떠야겠다. 소원 이야기를 하다가 아직 없는 내 여자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별똥별을 봤을 때 그걸 빌었다. 사실 소원이 참 많은데 다 준비하지를 못했었다. 이런~

 

밤 새 별을 다 세어 버리실 것 같았던 두 분이 생각보다 일찍 잠이 드셨다. 코고는 소리도 들린다. 이제 이 멋진 하늘을 나 혼자만 보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윙크도 하고 춤도 추는 별 밤이다. 그 속에서 뭔가 멋진 생각들을 이어나가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근사한 하늘에 마냥 기분이 좋다가 잠이 든 것 같다. 다른 두 분은 몇 번이나 깨셔서 다시 별들과 마주 하셨다는데 내 별 밤은 한 번 뿐이었다. 포근한 바람 속에서 너무 곤히 잠들어 버렸었나 보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비박을 했던 [자브라스키에 포인트]는 일출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해뜰 무렵이 되자 사람들이 사진기를 들고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사막의 일출을 보러 몰려든 것이다. 드물게 구름이 낀 사막이었다. 원래는 선명하다던 태양 자국도 그날은 좀 덜했다. 그래도 좋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바꿔가는 주변 풍경 그리고 그 풍경에 감탄하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 양쪽 허리에 개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 좋은 각도에 대해 그리고 주변기기의 사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 죽음 계곡의 아침은 의외로 분주했다.

 

여담인데 난 나중에 내가 보지 못했던 선명한 햇빛 자국을 담은 엽서도 발견했다. 당연히 그 엽서는 지금 내 방에 있다.

 

내 첫 비박은 포근하게 시작했고 분주하게 깨어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비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데스벨리에서 있었던 내 첫 비박을 대신하진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