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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대 미국 서남부와 멕시코의 전쟁과 자연을 그린 수작이다.

멕시코는 쿠데타와 인디언 반란에 시달리다 반란자를 처치하기 위해 미국인 용병을 고용한다. 미국인 용병들은 잔혹한 아파치 인디언 대신에 평범한 인디언이나 멕시코인을 죽이고 벗긴 머리 가죽으로 멕시코 정부를 속여 돈을 뜯어갔다.

 

소설은 묵시론 분위기로 전쟁의 화신인 판사와 폭력과 살인의 구덩이에서 성장하는 소년을 그린다.

작품은 미국 남부 사막지대의 풍광과 폭력의 현장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들이 나아가는 동안 동녘 태양이 창백한 빛줄기를 뿜어내다 느닷없이 핏빛을 뚝뚝 흘리며 평원을 불태웠다. 땅이 하늘로 빨려드는 삼라만상의 끝에서 태양은 미지의 테두리가 걷힐 때까지 거대한 붉은 남근처럼 불쑥 솟구쳐 단호히 버티고 앉아 그들 뒤에서 악의로 약동했다. 자잘한 돌의 그림자가 연필 선처럼 가느다랗게 모래 위로 늘어지고, 사람과 말의 형체가 지난밤이 떨구고 간 가닥인 양 혹은 다가올 밤으로 이끌 촉각인 양 앞으로 길게 서렸다.

 

 모자 아래 얼굴을 지우고 고개 숙인 채 나아가는 모습은 행군 도중 깜짝 잠든 군대같았다. 아침나절 또 한 사람이 죽었다. 마차의 식량 자루를 더럽히며 누워 있던 그를 묻고서 부대는 다시 길을 나섰다.”

 

“열흘 동안 네 명이 죽은 뒤 부석만이 펼쳐진 평원에 들어섰다. 시야가 미치는 그 어디에도 관목이나 잡초는 보이지 않았다. 대위는 정지 명령을 내리고서 멕시코인 길안내인을 불렀다. 둘이서 손짓을 해가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잠시 후 다시 행군을 재개했다.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분명해. 어느 병사가 말했다.”

 

“그들은 밤에도 행군을 계속했다. …… 북극성에 껴잡힌 북두칠성이 빙빙 맴도는 동안 남서쪽에서 오리온이 거대한 전기 연처럼 떠올랐다. 모래는 달빛에 푸르게 물들었고, 마차의 쇠테는 군인들의 그림자 사이로 아슴푸레 빛을 뿜으며 굴러갔다. …… 밤새 바람이 불고 미세한 먼지가 성가시게 골려 댔다. 어디나 모래였고 음식조차 예외 없이 까끌까끌했다. 아침에 오줌 빛 태양이 어스름한 먼지 유리판 너머로 형체 없이 떠올랐다. 말이 쓰러졌다. 행군이 멈추고, 장작도 물도 없는 메마른 휴식이 이어졌다. 초췌한 조랑말들이 몸을 웅숭그리며 개처럼 낑낑댔다.”

 

작품에서 미국인도, 인디언도, 멕시코인도 악의 불길에 휩싸인 비정한 무리들이다. 그들 사이의 전투는 악마들의 싸움 같다. 오직 생존만이 그들의 목표이다. 그러나 공평하게 백인과 인디언의 잔혹사를 다룬다면 결국 백인의 편에 서는 것은 아닐까?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주의 광대한 사막을 자동차로 달리면 그 땅이 그런 자들의 죽음을 안고 자라던 대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