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9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이른 아침 지하철은 기계적으로 사람들을 토해내고 다시 삼켰다. 뱉어진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장 뚫린 계단을 향해 바삐 걸어갔다. 앞선 사람 한둘이 뛰면 뒤따라 가던 사람들이 무리 지어 뛰었다. 나도 뛰었다. 여유롭게 출발해서 뛸 이유도 없었고, 앞선 사람이 왜 뛰는지 이유도 알지 못하면서 따라 뛰었다. 

  도착했을 때, 환승 열차는 아직 전전 정거장에서 출발하지 않은 상태였다. 먼저 뛰었던 사람, 따라 뛰었던 사람, 이전부터 있던 사람들이 뒤섞여 문마다 줄을 섰다. 짧은 줄을 찾아 조금 돌아다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발이 멈춘 줄 맨 뒤에 섰다. 

  9호선은 급행과 일반열차가 번갈아 들어왔다. 전광판에 급행은 빨간색으로, 일반은 초록색으로 표시되었다. 처음에는 한 정거장 거리만큼 일반열차가 앞서 있었다. 그런데 초록색 열차가 미적거리는 사이, 깜박, 깜박 빨간색 열차가 앞질러버렸다. 빨간색 열차의 코가 전광판 모서리에 닿았다. 열차가 들어오기 직전. 무언가를 하기도, 하지 않기도 애매한 짧은 기다림의 시간이다. 




  나는 몸이 느린 사람이다. 남들 밥 한 공기 먹을 때, 세 숟가락 겨우 입에 문다. 보통 반나절이면 후다닥 해치울 일을 몇 날 며칠을 붙들고 있다. 알아차리는 일도 몇 박자 늦어, 소중한 사람을 알아보는 데 10년이 걸렸다. 내보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귀한 꿀단지 마냥 가슴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해묵은 감정들을 정리하는 일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느린 사람이면서, 원하는 바를 ‘빨리’ 얻으려 했다. 대학교도 얼른 졸업하고, 바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타고 난 몸을 바꿀 수 없으니 전략이 필요했다. 속도를 내는 데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과정을 생략했다. ‘내가 왜 사는지’ 같은 근본적인 삶의 질문들을 던지는 일은 우선으로 제거되었다. 드러나는 결과에 비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기초 공부’는 대충 넘겼다. 부실한 ‘삶’이 하늘만 보고 올라갔다. 

  자체적으로 설정한 시간제한 때문에 항상 몸에 힘이 들어갔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잘하려고 바짝 긴장한 몸을 움직였다. 그럴수록 잔 실수가 늘었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쓸데없는 힘은 무엇보다 수험생활의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해마다 공부의 양은 늘어나는데, 시험 성적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밀물의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처럼, 부지런히 용을 썼지만 조금도 전진하지 못했다. 

  내가 쩔쩔매는 사이, 사람들은 무심히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앞서 가는 사람들의 등이 점점 멀어졌다. 미련으로 붙들고 있었던 수험생활을 정리하던 날은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내가 뒤처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거운 공기를 찢는 벨이 울리고 열차가 들어왔다. 멈춰 선 열차는 이미 가득 찬 상태였다. 문이 열리고, 약간의 사람들이 내렸다. 그 틈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밀며 들어갔다. 내 순서가 되었을 때, 열차는 내가 들어갈 만큼의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앞에 있던 사람들은 딱 자신이 들어갈 공간만큼의 힘을 주고 들어간 뒤 단단한 벽이 되었다. 벽에 부딪혀 힘없이 튕겨 나왔다.

  열차는 약 올리듯 세 번 문을 여닫은 뒤, 이내 꾹 입을 다물고 사라졌다. 조금 전, 계단을 뛰어오르던 게 떠올랐다. 은근슬쩍 내 앞으로 새치기하던 여자의 얼굴이 흐릿하게 스쳐 갔다. 울컥 짜증이 솟아올랐다. 안전문 유리창에 일그러진 내 얼굴이 비쳤다. 




  긴 수험생활을 정리하고 한동안은 감정 곡선이 요동을 쳤다. 막막해지면 눈물이 났고, 답답하면 짜증을 냈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고, 이렇게 약해빠진 내가 싫었다. 이 감정들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을 더 힘들게 했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기력이 다 빠져 마른 나뭇가지가 된 것 같았다.


  일반열차가 더딘 몸을 이끌고 뒤따라 들어왔다. 열차 안은 한산했다. 자리를 잡고 서서 나의 오래된 감정과 방금 일었던 그것을 나란히 두고 바라보았다. 열차는 느리게 갔다. 역마다 들러 멈춰 섰다. 책을 꺼내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읽었다. 출근 시간에 딱 맞게 사무실에 도착했다. 온종일 마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