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얼마 전에 정토회의 4박5일 수련프로그램에 다녀왔다.
가볍게 휴식차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참여하였는데 예상을 벗어난 고행길이었다.
일상의 단조로운 생활에 물든 나 자신을 다시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수련중 휴식하는 동안 수련장에서 마주 보이는 희양산의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희양산을 둘러싼 여러 산봉우리는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들어 있고 산 골짜기 중간을
휘돌아 가는 구름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데는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우뚝 솟은 화강암 봉우리는 주위를 압도하는 위엄을 보이며 산과 구름을
호령하고 내 숨을 탁 막히게 하였다.
그 기세가 북한산 인수봉을 능가하는 듯하고 감히 사람의 범접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이름도 모르는 화강암 봉우리를 바라보는 순간 문득 떠으르는 한 생각이 있었다.
우리나라 화강암은 쥐라기 1억7천만년 전에 형성된 대보화강암과 백악기 9천만년 전에 형성된
불국사 화강암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배웠는 데 저 화강암도 최소 9천만년 이전에 형성되었을
텐데 저 화강암이 만들어 질 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에 관한 생각이 아니고 내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에 관한 의문이었다.
전부 다 지구에 있었을까 아니면 일부는 저 먼 우주에서 날아왔을까 등등 여러가지 의문이
머리속에서 잠시 떠나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돌이켜 보며 전 보다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진 나를 발견하였다.
저 화강암봉우리는 내가 모르는 수억년 내지 수천만년 동안 산 속 식물, 동물 , 인간들이 수 없이
나고 죽는 현장에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 할 진데 나는 100년(아니 120년)을 살아가는 동안
무얼 그리 희노애락에 젖어 짧은 삶을 허송하는 시간이 많은가 하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 생명체로서 내 삶의 100년( 사실 120년으로 주장하고 싶은데..) 은 그리 길지도 않은 데 벌써 50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 버렸음을 알기에 오늘도 나를 알아가는 공부를 게을리 하는 자신을 경책하며
이 글을 쓴다.
제 전공은 학부는 경영학, 석사는 도시계획학을 하였고, 현재 박사과정은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감정평가사로서 부동산 감정평가업무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경제적 가치에 관심이 많았고, 때로는 정서적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
보는 것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자세를 만나 자연과학을 접하고 보니 사물의 객관적 실재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어 요즘
공부하는 즐거움이 새록 새록 커갑니다.
따뜻한 배려와 사람 좋은 웃음. 서훈님이 드디어 '시작'을 하시고 있네요..
무지 반갑습니다.
몽골에서도, 호주에서도 삼행시 짓기에 열중이셨는데, 조금만 늘이면
멋진 시가 되어져 나오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더랬습니다.
품이 넉넉한 분이니 성취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
와우 세상에나,
박사님이 댓글을 다셨네요, 제 기억으로는 일전에 백북스에서 딱 한번 댓글을 달아서 그 때 그 댓글을 경매에 부쳐야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었는데,
서훈님은 이 영광을 어떻게, ㅋ 점심 사세요. ㅎ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경제적관점+정서적관점+자연과학적 관점+철학적관점=
답은 감정의 달인, 화이팅~! 글구 저녁사세요, ㅎ
정토회 수련가셔서 자연과학 훈련을 통해 멋진 수련을 하셨군요.
서훈님의 필빨이 예사솜씨가 아닙니다.
조금 더 훈련을 하시면 울고 갈 작가들이 눈에 선합니다.^^
서울 한 복판에서도 눈을 들면
화강암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무덤덤했던 회색의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이제는
지구의 거대한 포효로 들립니다
서훈님의 글을 보니
동공안에 화강암이 가득해 집니다
거대한 화강암의 무거운 움직임이 들립니다
풍장 25
황동규
희양산 봉암사에 다가갔다.
늦가을 저녁
발목이 깊은 낙옆에 빠지고
시냇물 소리도 낙옆에 빠지고
바람 소리까지 낙옆에 빠지는
늦가을 저녁.
길을 멈추면
소리내던 모든 것의 소리 소멸
움직이던 모든 것의 기척 소멸
문득 얼굴 들면
하얗게 타는 희양산 봉우리
소리없이 환한
주위엔 저 옥보라색
빛들이 몸 가벼운 쪽으로 쏠리다 맑아져
분광 그만두고 스펙트럼 벗어나 우주 속에 사라졌다가
지구의 하늘이 그리워 돌아온
저 색!
때맞쳐 하얗게 타는 산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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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바라보는 과학적 관점이나
시인의 느낌이 다르지 않군요. 결국 자연을 노래하는
다양한 측면이겠지요.
서훈님 사물을 바라보는
구체적 시선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