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충격"이란 책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생명은 세가지 축을 통해 진화해 왔다고 한다.

첫번째는 자연선택이다. 생명의 진화는 적응의 산물이다. 생명의 기능적인 측면이다

두번째는 우연성이다. 그것이 차선이라도 어떤 선택이 결국 진화의 행로를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수렴성이다. 복잡계 얘기처럼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떤 구조로 결과된다는 것이다.


너무 멋진 컨셉이며 해석이지 않는가?


전통적인 진화학자들은 첫번째의 지지자들이다.

스티븐제이굴드같은 진화학자는 진화가 진보가 아니라고 하면서 두번째를 강조하다. 다양성의 증가라고도 한다.

세번째는 진화에 대한 긍정성이다. 

최근의 많은 책들이 이 세가지를 통해 쓰여지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리트매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

제러미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그리고 많은 기술의 미래에 관한 책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의 미래, 기술의 미래, 문명의 미래에 대한 낙관이 가능하게 되었다.


자연선택이란 결국 시공의 사유에 관한 것이다.

우연성이란 결국 기원의 추적에 관한 문제이다.

수렴성은 패턴의 발견에 관한 문제이다.


재밌지 않는가? 

박자세 학습의 대원칙이 생명의 진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지 않는가?


살아 있는 것은 죽어 있는 것들에서 기원되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공부란 연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