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어느 늦은 밤에 알콜기 가득한 목소리로 후배 녀석의 전화가 왔다.

 

' 형!. 고양이 세포가 죽었어.'

 

라고 밑도 끝도 없는 말을 지껄였다. 

 

그 말에 난 이 녀석이 다시 외로워 졌구나. ' 외로워'의 전쟁이 시작 됬구나 했다.

 

' 죽긴 뭐가 죽어. 그냥 두어라. 다 그것도 너다.'

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 녀석은

' 형 말대로 고양이 세포가 나였나 봐.  내가 죽을 것 같아.'

그리곤 내 대답은 듣지 않은채 전화를 끊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물었었다. 왜 사랑을 하다가 헤어지면 그렇게 아프게 되느냐구.

 

딴에는 신경과학 발표 시간이라 가르치는 입장에서 답을 했었다.

 

그 때 내가 한 이야기가 '고양이 세포'다

 

후버와 비젤의 고양이의 눈을 이용한 실험에 관한 이야기 였다.

여러 책에는 '할머니 세포'라는 내용으로 나오는데 그러면 20대가 대부분인 듣는이에게는

거리가 떨어지는 듯 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 사람의 기억이라는 건 실제로는 뇌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현상이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 한다는 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내게 들어 온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특유의 표정, 숨결, 어루만짐, 속삭임,

나를 고요히 바라보던 눈빛, 그 사람이 자주 애용하던 향수의 내음, 억양, 그 뿐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한 모든 기억되는 사건들. 수줍은 고백에 대한 떨림, 설레임, 두근거림, 이 모든 것이

내 속에 세포가 된다. 그 사람에 대한 세포가 내게 생기는 것이지. 이것이 고양이 세포다. 뇌에서 일어나는

뉴랄 네트워크의 한 주축이 생기는 거지. 같은 시간에 생기는 사건들은 일련의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그것을 기억이라는 형태로 남기게 된다. 그래서 우린 헤어질 때 그 사람을 잊어야지라고 한다는 것은

결국 그 세포를 죽이는 결과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죽도록 아픈 것이다. 내가 내 세포를 죽이는,

결국 자살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죽도록 아픈 것이다.

 하지만 그걸 굳이 죽일 필요 있겠니, 잊을 필요 있겠어?. 그 세포가 살 수 있게 두는게 더

아름답지 않니?. 그 세포로 인해 다른 사람의 세포가 더 편하게 자랄 수 있게 두는 것도 좋은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처음이 지난 이후론 사랑한 경험으로 다른 사랑을 알게 되는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니?'

 

라고 시각 형성에 대한 연합감각과 관련한 내용을 주절였었다.

 

물론 그 내용이 이렇게 젊은 우리 초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후버와 비젤이 생각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해를 돕겠다며 말한 내 이야기가 후배 녀석의 가슴 달램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복잡하게 얽히고 섥혔다고 생각되는 감정의 고리들이 기억이라고 하는 체계를 확고히 하기 위한

언어로 재탄생 될 때 마음을 달래거나, 삶의 이유라는 형태의 추상 세계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때론 고양이 세포를 운운하는 후배 녀석처럼 가끔은 가슴달램으로 구현되어 그 땐 좋았지 하면

나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후배의 새로운 고양이들이 주변에 숨쉬고 있고, 나의 고양이 또한 '무슨 바쁜일이 있길래

전화를 안하는 거냐.'며 나를 옥죄고 있다. 내 안에 고양이들이 만든 아름다운 현상이 지금이라는

기억을 탄생시키고 있다.

 

슬픔이 눈물을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슬픔을 낳는 것이라면 일단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아 젠장. 오늘도 너무 즐겁잖아!!!'를 외칠 일이다. 어금니꽉 깨물며 말하는 내 이야기가 약간 맛없는

식사에도 ' 아 맛있다.'라고 말씀 하시는 박문호 박사님의 배려어린(?) 외침처럼 주위를 기분좋은시간으로

이끌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스티브 잡스가

'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말한 것도  아름답지만

 

 '언젠간 좋은 날이 생길거야. 하지만 그 날이 오늘일지 몰라. '

 

라고 한 내가 사랑하는 형님의 말이 더 와 닿는 걸 보면 난 판타지를 꿈꾸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고 나를 만난 사람이 나로 인해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만난 사람과 나를 만난 사람들의 고양이가 잘 자라기를 바래 본다.  

 

아침에 일어나 칫솔을 들고 욕실에 거울을 보며

'후회하지 않아. 후회하지 않아.' 보다는 ' 아 정말, 오늘도 지긋 지긋하게 아름다운 인생이야.'를

외칠 때 신영복 교수의 말

'선택이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버려나가는 작업이다.'라는 말이 될 것이다.

 

시인 박노해가 말 한 것처럼 '누구보다 먼저 좋은 세상사는 사람이 되십시오.'는

이 고양이 세포를 아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지금은 후배 녀석의 고양이가 한 마리만 되기를 바란다.

 

두 세마리는 힘들것 같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