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그 때를 생각하면 군침이 돌고 몸에서 땀이 나는 듯 하다.

 

학생식당에서 이벤트가 열렸다. 이름하여 '매운 짬뽕의 국물까지 다먹기!' 이벤트인데,

매운 정도가 4단계로 나뉘어져서 각 단계별로 상품이 다르다.
1단계 보통짬뽕을 먹으면 파인애플 맛이 나는 노란색 음료수인 쿨피스를 받을 수 있고,
2단계 약간매운 짬뽕과 3단계 매운 짬뽕을 먹으면 쿨피스와 초코파이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인 4단계의 아주 매운 짬뽕을 먹으면 놀이동산 자유이용권을 받을 수 있는데,

평소에 매운 것은 잘 못먹는다고 생각하던 나는 겁도 없이 지옥행 티켓을 구입한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글감이 필요하다며 나를 밀어부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배식소 앞에서 겉으로는 무덤덤한 체 하며 말한다."4단계 주세요."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흥분이 콸콸 쏟아진다.

내 얼굴보다도 큰 사발에 시뻘건 호수가 넘실대고 그 안에서 하얀 면발들이 구불거리며 각종 야채등과 어우러져 있다. 보고 있으니 눈으로도 맛이 느껴지는 듯이 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면발 한 젓가락을 집어 입에 넣었는데,
함께 올라온 국물은 혀에 미세한 생채기를 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매운 맛은 미각이라기 보다는 통각이기 때문일까? 면발들은 줄을 지어 들어가면서 혀에 강렬한 자극을 남긴다.


면들만 건져먹고 남은 국물은 마리아나 해구만큼이나 깊어보였고 적조가 일어난 듯 아직도 시뻘건 국물은 한 치의 깊이도 들여다 볼 수 없다. 혀가 모터를 달았는지 덜덜덜 떨면서 침을 만들어 내고 있었기에 단무지를 입에 물고 혀를 달래주면서 생각해본다. '여기서 멈출까?'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기 때문에 일단 두 손으로 사발을 감싸들어 눈 딱 감고 한모금 한모금 식도로 넘긴다. 후폭풍이 찾아오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서둘러 찾아온다. 얼굴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숨을 몰아 쉬기위해 국물 마시기를 중단해야 했다. 몸에서 열이 나고 숨이 차오르니 마치 운동하고 난 다음의 몸 상태 같다. 음식을 먹으면서 체력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다.

 

그 때, 나와 함께 지옥의 맛을 체험하고 있던 후배가 화장실로 달려간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먹었던 매운카레보다 별로 안 맵다면서 자신만만해 하던 녀석이었다. 후배 녀석처럼 되기 전에 나도 더 나아갈 것인지 물러날 것인지를 선택을 해야 하는데, '못 먹어도 Go'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인지 모르겠다.

 

전반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반전 전략을 생각해보았다.신경 전달에서 신경 자극과 반응은 로그 함수에 비례하기 때문에... 즉, 매운 국물을 많이 마시거나 더 많이 마셔도 매운 것 똑같으니 이왕에 처리할 거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마시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 국물 마시는 걸 방해하는 건더기들을 치워버려야 한다. 건더기들을 전부 밖으로 끄집어내고 나니 국물의 실제 양이 눈에 보였고, 고지가 눈 앞에 있음을 확인하자 도전 의지가 생겨서 다시 한 번 사발을 잡아 든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켜 호수의 하얀 바닥을 보고야 말았다. 이 때의 기분은 마치 체력장 때 오래 달리기에서 결승지점을 통과한 기분에 비할 수 있겠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배녀석은 큰 일을 치루고 돌아와서 이미 자기처럼 일을 치루고 다녀간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화장실 바닥 여기저기에 널부러진 면발들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게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는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다가도 움직이면 위장이 뒤집어질 것 같아서 속이 괜찮아질 때까지 연구실에 돌아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인간의 감각기관과 소화체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였다. 역시 못 먹을 것을 억지로 먹으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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