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탐사

벌써 두달이 지났다. 옛 기억같이

 

탄성,

내뺨을 스치던 홍조,

선택된 시공이 주는 울림,

의식 밑바닥에 번지던 이름없는 간지러움,

그리고 참깨같이 고소하던 우리들의 얘기 얘기들 마저도

<137억년>강의를 곳마다 때마다 덧칠해

입체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애뜻한 노력까지도

 

일상에 묻혀.. 가고있네.

아, 이렇게 흔히들 지나가는가?

나 또다시 스냅사진 같은 기억  한장 붙들고 어쩡쩡하게 서 있는 건가

참 그렇네

 

몇 년간의 강의, 책, 학습탐사, 여러가지 활동들을 하면서

쌓이는건  

나의 앨범에 바래가는 몇 장의 사진만이라면

참 그렇겠네

 

잊기위해 생산한 시간이 아닌데

애처로워 못 봐주겠다.

 

그래

이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역추적하기.

지금 학습하고 훈련하는 사항들에 거꾸로

옛기억들을 불러들여 매순간 촘촘히 링크하고 해석하기.

 

기억은 항상 현재적 사건이다.

아니면  사라진다.

끊임없이 사라지려는 기억을 매순간 불러내어

접속하고 색칠하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잊지않게 되고, '의미가 깊이의 차원을 갖게 된다'(박사님)

박사님이 말씀하신 '장기기억을 작업기억처럼 쓰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것이 안 되는 걸까?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기억만 하나?.

이것은 거의 비슷한 문제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학습관점에서 보자면 별 의미없는 자잘한 일상의 접점들과 

대개는 부질없는 감정의 반복에  쓰고 있다. 

 

연속극, 핸드폰 만지작대기, 수다, 인터넷 서핑,

크고 작은 감정의 부침들, 그밖의 줄줄 흘리고 다니는 시간들.

이게 바로 늪과 같이 벗어나기 힘들고

무제한으로 우리를 결박하고 있는 놀라운 일상의 힘이다.

중력이 물질에 작용하듯

폭포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그렇게 일상의 힘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그런 일상의 기억(?)들이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이 들어설 틈이 없게.

 

그런데 '학습'하고 '훈련'한다는 것은

이를 거스르고 맞서 저항하겠다는 것이다.

자잘한 것들 치우고 기둥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의미의 차원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왜 어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우리의 노력 또한 

참으로 드물고 소중하지 않은가?

일상의 힘에 맞서 학습하고 기억을 훈련한다는 것이.

 

다시한번, 

기억은 현재적 사건이다.

기억은 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의 반복적 인출과

기억의 각인화  과정이 바로 훈련이다.

 

내가 만약 이 훈련을 잘 마친다면

아마도 내 손에는

몇 장의 빛바랜 스냅사진 대신에

한폭의 멋진 풍경화가 들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