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둘째날

- 수상한 움직임

 

 

호주 남서부의 오래된 도시 퍼스.

다섯 대의 회색 승합차가 도시를 빠져나간다.

1호차부터 5호차까지 한 줄로 긴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꽤나 수상하다.

차량마다 보급된 무전기는 무슨 특수작전을 떠올리게 한다.

하기사 작전이라면 특수작전이 맞다.

35억년 전의 지구가 미처 숨지 못해 살짝 모습을 드러낸 곳

그 곳을 향해서라면 비포장도로도 황무지도 건널 각오가 된

스물 네명의 탐사대원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으니 말이다.

 

오래지 않아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한 줄기 길을 빼곤 인간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야생의 왕국으로, 다섯 차가 겁없이 내달린다.

정해진 날짜까지 북서부에 닿기 위해, 1호차는 점점 속력을 낸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4,5호차는 번번이 앞차보다 시속30~40km의 속력을 더 내야 한다.

몇 차례 의견 조율에도 일정탓에 몰아붙이기는 계속되고, 뒷차들은 불안감을 안고 달린다.

 

빠른 속도와 잦은 급가속으로 4,5호차는 먼저 기름이 바닥나 간다.

무전으로 다급하게 기름부족을 호소하지만, 어쩐 일인지 1호차는 묵묵부답이다.

주유소가 가뭄에 콩나듯한 이 허허벌판에서, 기름이 없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여러번 무전을 보내지만 1호차는 유유히 주유소를 지나쳐 간다. 무전기가 꺼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4,5호차는 대열을 이탈해 주유소에 정차했다.

 

한참 후에야 1,2,3호차는 허전한 뒤를 보고 당황했다.

서둘러 무전해보지만 삼십분이 지나도록 응답이 없다.

무전기는 2km 반경 내에서만 송수신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일부 대원은 사고가 아닌지 걱정하며 계속 무전기를 두드리고

나와 박사님, 이원구선생님은 컴컴한 도로변에 깃발과 야광봉을 들고 서 있다.

지나가던 차에서 홱, 무언가가 날아왔다.

내 얼굴을 강타한 물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가속도가 붙어 맥주캔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던 그 물체는 다름 아닌, 날계란.

폭주족들이 낄낄거리는 웃음을 노오랗게 흘리며 지나쳐 갔다.

금방 서러워져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려, 입술을 모로 깨물어 본다.

 

계란범벅인 옷을 주섬주섬 빨래하고 있는데 4,5호차가 도착했다.

서로에게 약간 화가 나 있었지만, 각자의 사정을 토로하며 중요한 사항들이 재정비된다.

무전기의 운용방법, 다른 통신장비의 모색, 상시 연료 게이지 체크...

시행착오를 통해, 앞으로의 탐사에 필수적인 것들을 의논하는 유익한 시간이다.

다섯 대의 차는 어둠이 완전히 깔리고야 첫 야영지에 들어섰다.

따뜻한 크림수프를 끓여 나누어 먹으니, 달뜬 마음들이 조금조금 가라앉는다.

다소 삐그덕거렸지만, 큰 사고가 없었던 데에 모두들 안도하는 눈치다.

어수선했던 첫날의 분위기가 그렇게, 차분한 밤공기를 만나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호주 사흘째

- 인도양에서 만난 조상님

   (137억년 우주의진화 제11강<광합성> 현장답사)

 

 

미묘한 아침.

바람 한 줌 없다.

우리는 세 개의 기원을 추적하려고 여기까지 왔다.

우주의 기원, 지구의 기원, 그리고 생명의 기원.

오늘 아침에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깝지만, 가장 미스터리한 하나의 이야기,

생명의 기원을 만나러, 샤크베이로 간다.

 

멀리서 본 인도양은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바다라고 부르기에는, 파도 한 겹 일지 않는 지나친 고요. 시간이 정지된 것일까.

바람을 일으킬까보아 숨도 아껴쉬며 다가선다.

애초부터 같은 빛깔이었는지, 서로의 낯빛이 서로에게 비쳐서인지,

바다와 하늘을 나누어야할 수평선이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었다.

해서, 먼 바다가 삼차원 공간으로 보이질 않고 하나의 거대한 푸른 벽지처럼 보인다.

시간도, 공간도, 이 세상 것은 아닌 것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

왠지 저 푸른 벽 너머는 세상의 끝일 것만 같은 확신이 든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최초의 생명의 지문이다.

시아노박테리아가 퇴적물과 함께 층층이 쌓이고 굳어 만들어진 바위인 것이다.

린 마굴리스에 따르면, 네 조상들이 순서대로 융합하여 식물이 되고, 동물이 되고, 인간이 되었다.

넷 다 세균이었다. 헤엄하는 세균, 산과 열을 견디는 세균, 산소호흡세균은

융합되어 하나의 개체가 되었고, 구름같이 많은 자손들을 퍼뜨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초록색 세균을 삼켰고, 이것은 소화되지 못해 몸 안에 남았다.

이 초록 세균의 이름이 바로, 시아노박테리아다.

 

지금 지구상에, 시아노박테리아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거의 엽록체가 되어 다른 세포의 기관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독립해서 사는 시아노박테리아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시체들만이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이곳에서, 살아 있는 시아노박테리아들을 만날 수 있다.

샤크베이의 염분 농도와 척박한 환경이 다른 생물을 살 수 없게 하여,

시아노박테리아들이 잡아먹히지 않고 독립적으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여기는, 최초의 조상을 귀신 아닌 생명체로 만날 수 있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곳이다.

바다를 향해 걸으며 누군가, "제사상 차려 왔습니까?" 농담을 던진다.

물 위의 나무 회랑과 조개더미 백사장을 빙빙 돌며 박사님은

이 작은 조상들이 우리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이십여명의 대원들이 박사님을 둘러싸고 귀를 쫑긋 모으고 있다.

깨알같이 노우트에 받아 적는 이, 골똘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 간간이 탄성을 지르는 이.

 

박사님의 강의가 궁금도 하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어쩐지 멍해진 나는 슬그머니 대열을 빠져 나와 바위만 빙빙 돈다.

가까이서 본 바위는 뽀글, 뽀글, 기포를 뿜으며 숨을 쉬고 있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바짓단을 접어올리고 바다 속으로 텀벙텀벙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죄송스럽게도, 조상님을 살포시 밟고 올라선다.

발가락 사이로 뭉개지며 파고드는 바위의 촉감에 나는 잠시 움찔한다.

바위는 생각보다 부드럽고, 그리고,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온다.

정말로 이 바위는,

살아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