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jpg


  책을 펼치면 흑백사진 몇 장이 나타난다. 앙상하게 말라서 죽기 직전처럼 보이는 아프리카 어린이와 미군에게 사살된 베트남민족해방전선 병사 모습이다. 톱에 잘리는 고문을 당하는 중세 시대 순교자 그림도 있다.

  

  그 사진들 앞에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라는 큰 글귀가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문제의식이다. 우리는 매일 신문 1면에서 대형 사진을 본다. 잡지와 책에도 사진 이미지는 넘쳐난다. 손택은 대규모로 이미지가 소비되는 현대사회를 면밀하게 관찰한다. 그 관찰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에워싸였다. 

 

  그러면서 현대인은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 타인의 고통은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타인이 겪은 고통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진다. 그러면서 진지하지 않게 그 고통을 다룬다. 여기서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보내는 연민은 우리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린다.


  손택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사진 이미지를 정의한 글을 보자.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며 재현될 수도 없다. 기억이란 것은 그 기억을 갖고 있는 개개의 사람이 죽으면 함께 죽는다. 우리가 집단적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기하기가 아니라 일종의 약정이다.”


  “즉,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이것은 중요한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라고 우리의 정신 속에 꼭꼭 챙겨두는 것이다. 가령 원자폭탄 실험 뒤에 생긴 버섯구름 등은 중요한 사건들의 핵심을 전달해 주는 시각적 등가물이다.”


  책 뒤에 실린 몇 개 연설문과 에세이가 흥미있다. 에세이 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인 손택이 어떤 지식인인지 한 눈에 보여주는 글이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빌딩을 공격한 테러에 대해 손택은 통렬하게 애국주의 광풍을 불러일으킨 미국정부와 지식인을 비난한다.


  “부디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역사를 조금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9월 11일이 미국 사회에 던진 충격을 고려하면 작가이자 지식인이 이런 글을 발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손택은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사회에 글을 던졌다. 그 후 미국 역사는 손택이 예언한 대로 흘러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신문 1면에 오른 사진 두 장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2011년 8월 20일자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1면 오른쪽 상단에 크게 실린 사진이다. 미국 부통령 바이든이 데려간 미 농구팀이 베이징에서 친선경기를 하면서 중국팀과 집단 난투극을 벌인 사진이다.

 

  중앙일보 사진에서 미국 선수는 두 명이다. 중국 선수는 네 명인데 그 중 한 명이 쓰러진 미국 선수에게 발길질을 한다. 다른 미국 선수는 억울하다는 듯이 양 손을 내밀고 말리려는 제스처를 보인다. 중국 선수는 모두 공격적인 포즈다. 사진만으로 판단하면 누구나 미국 선수가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다고 생각 할 것이다. 중국은 공격하고 미국은 공격당한다. 중국은 미국 부통령이 데리고 온 친선경기 팀을 파렴치하게 난타한다. 

 

  한국일보 사진은 다른 이미지다. 미국 선수 세 명과 중국 선수 세 명이 서로 머리를 잡아당기고 얼굴을 밀친다. 시합 중에 흥분한 양쪽 선수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이다.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중앙일보 사진 출처는 [베이징 로이터 = 연합뉴스]다. 한국일보는 [베이징=AP 연합뉴스]다. 둘 다 연합뉴스가 제공한 사진이다. 그 날 일간신문 1면에 오른 사진은 모두 이렇게 특정한 사실과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선택되었다.


  사진 이미지는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다. 사진은 어떤 선택된 사실을 보는 사람에게 강요한다. 그 사실이 진실인지 아니면 진실의 한 면인지, 그도 아니면 악당이 선전용으로 교묘하게 연출한 사진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 사진이 만들어진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니 진실도 당연히 멀어질 밖에 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