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호주 일곱째날
- 허브밭의 사람들
(137억년 우주의진화 제1강<입자물리학>, 제2강<핵물리학>, 제6강<열역학>, 제7강<별> 현장답사)
오늘은 바오밥나무 아래서 깨어나, 야생허브밭에서 잠이 들었다.
천 살도 넘은 할아버지 바오밥은 열여덟명이 겨우 껴안을 정도로 거대했다.
크다란 나무구멍 안에도 들어가고 가지에도 매달리던 아침나절도 싱그러웠지만
저녁나절의 야영지는 코끝부터 가슴 속 깊은 곳까지 향기로워지는 곳이었다.
호주의 하늘빛은 시시각각 새롭고, 언제나 상상의 한계를 벗어난다.
연보랏빛 고운 파스텔가루같은 일몰에 휩싸여 우리가 안착한 곳은
무인도로 보일 만큼 사람의 흔적이 전무한 야생화평원이었다.
거칠어만 보이던 야생화 사이로 들어서는 순간, 코가 제일 먼저 눈치 챘다.
이곳을 가득 채운 풀들이 전부, 허브라는 것을.
각양각색 키작은 허브의 은은한 내음이 향긋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최고의 잠자리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우리들도 덩달아 향긋해졌다.
별의 물리에 관한 박사님의 강의는 언제나 신비롭다.
성간구름에 떠다니는 분자들이 서로를 끌어당겨 슬금슬금 모이고
가까워진 분자끼리 부딪히다 뜨거워져 어느 순간 빛을 낸다. 별의 탄생이다.
별 속은 점점 뜨거워져 핵융합로가 되어 점점 무거운 원소를 만들고
철에 이르러 융합을 멈추고 쪼개지기 시작한다.
거대한 별은 눈부시게 폭발하고, 작은 별은 조용히 폭발한다.
폭발의 충격이 근처의 성간구름 분자들을 살짝 밀면
분자들은 슬금슬금 모이기 시작해서, 다시 새로운 별이 된다.
처음으로 137억년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칠판에는 별의 운명이 그래프로 그려져 있었다.
곳곳에 적색거성, 백색왜성, 갈색왜성, 초신성, 블랙홀같은 글씨가 널려 있었다.
봄이었고,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서울 하늘 아래였다.
교실 안에서 눈을 반짝이는 수많은 이들은 외계인인지도 몰랐다.
외계인들은 서울 하늘 아래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참다못해 짐을 꾸려 바다를 건넜다.
별도 사람도 동그랗게 둘러 앉았는데
김제수 선생님께서 내게,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인생선배가 있으면 말해보라 하셨다.
나는 전설의 농민운동가 김기영선생님과 최고 연장자 이은호선생님께 마이크를 넘겼다.
각자의 인생이 담긴 진솔한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별빛이 전부인 완벽한 어둠 속에 서로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있었다.
긴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박사님께서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 별을 한 번 보세요.
또, 어둠에 묻힌 돌도 한 번 보세요.
그리고, 다시 자신.
여태껏 우리는 너무, 구별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침묵이 흘렀다. 말 한 마디 없이, 우리는 각자의 고요 속으로 빠져 들었다.
-별떼의 습격
평야에서 별들은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도 있고, 옆에도 있다.
산이 없어서 하늘이 온전히 반구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눈높이 혹은 허리춤까지 내려와 있는 별들을 보면
금방이라도 나꿔챌 듯한 기분이 들어 막 달려 나가게 되는 것이다.
너무 낮게 매어달린 별들은, 멀리서 등을 들고 선 사람과 혼동되기도 한다.
사람은 스스로 빛나지 못하지만, 빛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는 담뱃불을 붙여 문 어른들을 별로 오인한 적만도 여러 번이다.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별, 사람, 사람, 사람.
이것이 서울에서 내가 만난 별의 느낌이라면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사람,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별.
이것이 서호주에서 내가 마주친 별의 느낌이었다.
너무 많은 별들에 포위되자 나는 당분간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수적 열세에 밀려 갑자기 이방인이 된 것이다.
좋게 말해야 이방인이지, 별들이 보기엔 요거 완전히 이물질이다.
저 괴상하게 생긴 것은 뭐길래 우리를 올려다보지?
왜 쪼끄만게 우리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자신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어라, 막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네.
이 와중이라면 별 보러 왔다는 내 멋진 꿈은 이미 죄 물 건너갔다.
별을 보기는 커녕, 별떼들에게 관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별들이 수천억개의 눈을 뜨고 끔뻑끔뻑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자칫하면 두런두런 속닥속닥 소리마저 들릴 것만 같다.
멋쩍음을 무릅쓰고, 나도 눈을 똑바로 뜨고 한 번 올려다 본다.
은하수가 무지개처럼 정확히 반원을 그리고 있다. 저걸로 줄넘기도 할 수 있겠다.
마냥 바라보면 은하수는 희뿌연 것이, 밤하늘에 낀 먼지이거나 구름같다.
그러나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
멍하니 은하수구름을 치어다보고 있는 내 눈 앞에 누군가 망원경을 들이밀었다.
무심코 망원경을 들여다 본 나는 가슴이 쿵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망원경 속에서 희뿌연 구름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신 그건 한 알, 한 알, 알알이, 별떼로 변해 있었다.
밤하늘 중 은하수에 특히 별들이 몰려 있는건
우리 은하가 아주 납작한 원반 모양이고, 우리 태양계가 그 원반 속에 있기 때문이다.
원반 속에 사는 우리가 그 원반을 바라보면,
원반의 높이 쪽을 볼 때에는 길이가 얼마 안되서 많은 별을 볼 수 없지만
원반의 지름 쪽을 볼 때에는 원반 속의 거의 모든 별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아, 안되겠다. 다른별은 쳐다본다 쳐도, 저 엄청난 별떼는 도저히 볼 엄두가 안 난다.
조금 더 만만한 별떼가 있다.
우리 원반 바깥, 아득히 먼 곳에 있는 또 다른 원반들이다.
지구상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세 개의 성운,
대마젤란, 소마젤란, 안드로메다를, 서호주의 하늘에서 모두 볼 수가 있다.
내가 간다면 대대손손가도 닿지 못할 그 곳에서부터
빛이 대신해서 오랜 시간을 달려와 내 눈속으로 투신하고 있다.
그 공로로 나는 지금, 너를 보고 있다.
영원히 관계맺지 못할 뻔한 두 사물이 그렇게 처음 대면하고 있다.
이것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을 기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를 가장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은하수 한 가운데 새카만 주머니다.
찬란한 은하수의 가운데에는 검은 구멍이 벌어져 있다.
꽤 오랜 세월 천문학자들은 그곳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곳은 빈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별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성운인 것이다.
밤하늘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많은 아기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어나고 있다.
그러니까 그 검은 주머니는, 우주의 자궁인 것이다.
나는 우주의 자궁 그 비밀스런 속으로 자꾸만 눈이 갔다.
태아의 초음파사진처럼 신비하기만 한 얼룩덜룩한 은하수.
그곳으로부터 자꾸만 태아의 심장 고동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내 심장도 덩달아 자꾸만 뛰었다.
- 별밤텐트에서의 하룻밤
탐사대의 일곱개의 텐트 중에는 단 하나의 별밤텐트가 있다.
사방이 온통 망사로 되어 있어서 바람이 좀 숭숭 들어온다는 점과
자는 사람 얼굴이며 자태가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약간의 단점을 빼면,
반대로 안에서도 밤하늘을 환히 올려다보며 잠들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을 가진 텐트다.
김승수 선생님이 별을 보며 잠들겠다는 일념으로 들고 오셨으나
하도 인기가 좋아 본인은 딱 하루밖에 잠들지 못했다는 바로 그 텐트다.
오늘밤 내 차지가 된 별밤텐트 안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곤
뭐지, 별이 잘 안보이는데? 했던 나는
침낭을 끌어당겨 덮고 누워 랜턴을 딸깍 끄는 순간,
다시 발딱 일어났다.
두근두근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니
베개맡에 열십자로 놓인 남십자성.
내 발가락에 걸려 바둥거리는 백조자리.
배꼽을 가로지르는 은하수.
오랜만에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 밤부터 새벽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꿈결에 긴 목의 백조와 오래도록 은하수를 헤엄치다
문득 눈을 뜨면 별들의 위치가 엉큼하게 바뀌어 있었다.
나는 밤을 하얗게 새우며, 능청스런 별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다.
별을 보기는 커녕, 별떼들에게 관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별이 라이트를 켜고 우리를 지켜보는 것이지
우리가 불을 비춰서 별을 보는 것은 아니네요
예전에는 어지간하면 별 볼일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요즘은 의지와 능력이 필요하군요
우유를 뿌려놓은 듯 희뿌연한 우리 은하수!
새벽이면 눈앞에 가까이 덩어리진 별무리 대마젤란, 소마젤란!
눈이 나쁜 사람은 상상으로 어림짐작해야하는 안드로메다은하!
온갖 신화와 사물의 모양을 담은 별자리들!
이 모든 별들은 인간의 감각적 능력의 산물이자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별들의 세계임을 알았습니다.
우주가 균질하고, 등방적이다! 라는 말은 인간의 뇌와 감각을 벗어나면 진리처럼 다가옵니다.
과학의 힘을 빌려서 조금이라도 배율이 높은 망원경을 눈에 들여대면 자명하게 느껴집니다.
별자리와 별무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텅빈 공간마저도 무수한 별들이 있습니다.
마치 먹물속에 녹아있는 시커먼 돌가루보다도 더 진한 밀도로 우주공간에 존재하는게 별들입니다.
그런 밀도로 별들이 존재하는데, 별과 행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머나먼 공간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우주의 크기는 제 머리속의 상상으로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많고 넓은 우주에서 별들의 의미와 우주를 상상하려 하는 인간이라는 생명현상이 신비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세계를 창조하고 다시 만들어진 세상에 갇혀사는 뇌에 대하여 무한한 호기심이 생겨났습니다.
멋진 글솜씨로 다시금 그 날의 그 현장 그 생각속으로 생생하게 안내해 주신 아샤님!
고맙습니다.
탐사 떠나기 전 까지만해도 파리떼 걱정에 다들 노심초사 하시던 모습이
생생한데, 파리떼가 아니고 별떼,,,,
아샤님의 표현에 한동안 멍한 시간 보냈네요.
저도 운좋게 그곳에서 별을 본적이 있는터라 한구절 한구절 와 닿는 느낌이
남 다름니다. 멘토님의 '우유 뿌려놓은 듯 희뿌연한 우리 은하수!'
정말 그렇죠.^^
우주의 크기를 지구의 크기로 축소하면 1광년이 1mm가 안됩니다
50mm 만 가보면 달의 1/2크기의 다이아몬드로 된 별이 있고요
며칠전에 4미터만 가면 지구의 5배 크기의 다이아몬드 별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4미터 말고 5센티만 갔다 올 그런 기술 없나요
지구를 걸어서 여행하듯 우주를 걷는 느낌으로 여행하려면
광속의 157억배의 속도로 이동해야한다는 ...
벌써 30년이 훨씬 더 지났지만
고수동굴 근처
차 두대가 지나칠 수 없어 기다려야 하는 좁은 낭떠러지 길이 있던 곳
그래서 물도 너무나 맑아 모래무치가 모래들 들쑥이는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곳
그런 곳에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칠흑같은 어둠을 보았고
내 모습조차 느낌으로만 알 수 있는
그 어둠이 두렵기도 하지만
손에 들고 있던 랜턴을 끄고
투명 옷을 입은양 그렇게 밤하늘을 쏟아지는 별들속에 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늘의 점점히 놓인 그렇게 밝게 빛나던 별들, 셀 수조차 없었던 그렇게 많았던 별들
그리고 숲속에서 깜빡깜빡이는 또 다른 쌍둥이 별
무서움에 어둠에 싸인 랜턴을 더듬어 켜고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려갔던 기억
나와 같이 흔들대던 땅위의 동그란 별 하나를 따라 허덕허덕 뛰던 기억
눈 앞에 손을 가져가 보려해도 보이지 않던 칠흑의 공간까지도 기억이 납니다..
호주도 가보지 못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별자리 이름들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요 ㅎㅎ
별 보러 호주 가고 싶게 만드는 글입니다.
책 내면 대박 예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