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여덟째날

  - 아담과 이브들

     (137억년 우주의진화 제11강<광합성>, 제13강<암석> 현장답사)

 

시간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의심할 여지라곤 없을 만큼 당연하게 여겨지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화들짝, 그런 녀석이 정말 있는가 싶은 것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접하고 나면 녀석은 한층 더 물렁물렁해진다.

서지미박사님이 상대성이론의 공식이 쓰인 티셔츠를 입으시는 바람에

오늘 아침 강의에서 박사님은 우리를 놀라운 상대성이론의 세계로 안내하셨다.

서박사님은 137억년강의를 이년간 듣고 200장의 티셔츠를 만들어 나누어 주신걸로 유명하다.

달리기 선수를 바라보는 정지한 사람의 시계는 선수의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

시계 보는 이의 시선을 떠나 존재하는 객관적인 시간의 잣대는 없다.

일반상대성이론까지 오면 더 뒤죽박죽이 된다.

물질이 있는 곳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엿가락처럼 휘어진다.

이 물질이란 놈은 다시 시간과 공간이 머리를 맞대고 결정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모든 게 한통속이다.

마침내 과거가 되어버리면 시간은 더 의심스러워진다.

희미해진 기억은 어쩌면, 어느날 밤의 생생했던 꿈의 한 장면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는 습관이라곤 없는 나지만, 요 며칠은

도로를 달리면 불쑥 스쳐가는 야생동물들처럼, 유년의 기억들이 엄습하곤 하였다.

다 닳아빠지도록 보던 동화책부터, 초등학교에 갈 때 넘던 작은 동산까지.

이유를 모르겠다하자, 박종환선생님은 지구의 유년을 보았기 때문일지 모른다셨다.

오늘은, 그 회상의 길이가 걷잡을 수 없을만큼 길어졌다.

35억년 전 지층의 일부만이 변성되지 않고 지구 세 곳에 남아 있다.

캐나다 순상지대, 남부 아프리카, 그리고 이곳 서호주 필바라. 

장롱 속에 곱게 개켜 놓은 이불들처럼, 기나긴 세월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입구의 박물관에서 이곳의 지질구조, 암석, 생태, 원주민들에 대한 강의를 듣고,

우리는 꼭대기에 서서 아찔한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2011년에 두 발을 딛고 서서, 35억년 전을 굽어보았다.

그리곤 거의 수직으로 내려선 가파른 등산로를, 한 줄로 걸어 내려갔다.

계단을 한 발, 한 발, 내려갈 때마다 일억년, 이억년, 시간이 깊어져 갔다.

지금보다 조금 털이 많고 못생긴 인간들이 살던 신생대를 지나,

공룡들이 쿵쿵거리며 이리저리 걸어다니던 중생대를 지나고,

식물이 바다에서 올라오고 동물이 처음으로 육지에서 벌떡 일어선 고생대를 지나,

베도비온트, 스프리기나 혹은 시아노박테리아가 숨쉬던 선캄브리아기로 접어들었다.

 

박사님은 지층의 생성과 구조와 이동에 대해 설명하신다.

처트는 이산화규소의 아주 작은 결정이 맞붙어 생긴 단단한 물질이다.

처트는 지각변형을 견딜만큼 단단하고, 액체로부터 내용물을 지킬만큼 투과성이 낮다.

그래서 처트 속에 있으면 물질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다. 생물도 예외가 아니다.

처트는 옛 지구의 환경을 비추어주는 고생물학의 랜턴이다.

처트에는 시아노박테리아의 유기분자가 지문처럼 남아 있고,

초기의 바다에 가득했던 산화철의 붉은 띠가 들어 있다.

이는 철로 출렁이던 옛 바다와 대기에 산소가 거의 없었음을 보여준다.

지구가 광물의 행성에서 생명의 행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산소혁명이라는 가장 큰 숙제를 제출해야 했다.

결코 풀어낼 수 없을 듯 산처럼 쌓여 있는 숙제와

결국 그 해답을 찾아낼 똑똑한 학생들, 시아노박테리아.

그 숨막히는 대결을, 우리는 눈 앞에서 목격하고 있다.

참으로 성실하게 쌓아올려진 지층케이크를, 저마다 손 끝으로 쓸어내려 본다.

 

손 끝으로, 시간의 알갱이들이 전해주는 감촉이 느껴진다.

그동안 나는 지층을 보면 화석부터 찾곤 했다.

화석이 하나의 사건이라면, 지층은 배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니, 지층은 단순한 배경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텅 빈 지층은, 특별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시간의 기록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무위도식의 시간이 아니라, 치열한 싸움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지나간 과거가 되어 기억이 가물어진다 해도, 존재했던 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의 시간은 유전자 속에 정보로 간직되고, 나무의 시간은 나이테로 몸 안에 새겨지고,

지구의 시간은 지층으로 차곡차곡 기록되고, 우주의 시간은 시시각각 공간으로 만들어진다.

 

얼마나 걸었을까, 바닥에 닿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태초의 웅덩이였다.

깊이도, 나이도 가늠할 수 없는 신비한 진초록의 웅덩이가 거기 있었다.

풍덩, 말릴 새도 없이 김향수 선생님이 웅덩이로 뛰어드셨다. 제주도에서 오셨다더니.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줄줄이 입수하기 시작했다.

더러는 옷을 입은 채로, 더러는 팬티만 덜렁 입은 채로.

젖는 것을 싫어하는 나도, 한 치 망설임 없이 퐁당 뛰어들었다.

초록빛 물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악어가 사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아마 우리는 지구의 품 속을 믿었나보다.

그렇게 우리는 어린아이가 엄마 품 안에 달겨들듯,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훌훌 모두 벗어버리고 원시의 자연에게 안겼다.

35억년 전의 세상에 누워, 2011년의 벼랑을 올려다보며 배영을 했다.

다소 소란스런 아담과 이브들이었다.

 

물 밖으로 나와 보니, 주머니의 동그란 카메라뚜껑을 빠뜨린 것 같다.

잠깐 나를 바보라고 생각다가, 바보 중엔 그래도 야무진 바보라고 생각했다.

카리지니 계곡에 빠뜨렸으니,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 나보다는 오랜 세월 남아있을 것이다.

혹 지층에 묻히기라도 한다치면, 원반화석인 척하여 고생물학자들을 괴롭힐지 모른다.

수 년 전에 나는 대서양 앞바다에 진주목걸이를 흘리고 온 적도 있다.

해양생물학자들도 곤혹스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