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열하루째 - 코끼리 퍼즐맞추기

(137억년 우주의진화 제5강<주기율표>, 제10강<미토콘드리아>, 제11강<광합성>, 제12강<탄수화물>, 제13강<암석>, 제14강<지질> 현장답사)

 

연초록 잔디, 커다란 개, 산책하는 사람, 키 큰 나무, 가끔씩 떨어지는 빗방울, 나무벤치, 색색의 자동차, 붉은 벽돌 집, 회색 항구, 날개를 접는 갈매기, 그리고......  학생, 집중 좀 해요. 박사님의 꾸중에 모두가 나를 돌아본다. 사라지고 싶다. 여행 내내 나는 문제학생이다. 누군가 위로의 눈짓을 한다. 아무렇지 않게 으쓱해 보인다.

 

실은 아무렇지 않지 않다. 아무에게도 말 못한 문제가 있다. 나는 결코 듣기 싫어 한눈을 판게 아니다. 열이틀내내 누구보다 박사님 강의가 듣고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글자들이 한귀로 들어와서 그대로 열을 지어 빠져나갔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어느 하나 붙잡을 수가 없었다. 장애가 생긴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공원을 빠져나와 동물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나는 박사님께 솔직히 고백했다. 박사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갑자기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여서인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나는 약간의 실마리를 얻었다. 그러나 왜 유독, 나만 그런 걸까? 바다에서도, 별 아래서도, 차안에서도, 분명히 어른들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집중하고, 이해하고, 경탄했다.

 

열이틀간의 증상을 하나씩 곱씹어 본다. 첫 며칠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 앞의 풍경들에 원근감이 없었다. 나는 밋밋하기 짝이 없는 화면의 바깥에 서 있었다. 육일째 되던 날 벙글벙글에서 처음으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막혀 있던 눈과 귀와 코가 그제야 뚫린 기분이었다. 카리지니에서는 조금 더 나아졌다.  인간에게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의 사물들에 익숙한 나는 풀, 벌레, 하늘, 땅도 배경화면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무대장치일 뿐이므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다 벙글벙글에서 들판이 처음으로 저 스스로 존재하기 시작했고, 카리지니에서 화석 뒤에 쌓인 빈 지층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 위로 드러난 일각 아래에 숨은 거대한 빙산, 사물과 사물 사이의 여백, 별과 별 사이의 우주, 소리와 소리 사이의 침묵. 혼자였던 내 주위가 갓 태어난 존재들로 아우성이었다. 나는 덜컥 화면 한가운데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내게는 그 그림을 볼 줄 아는 눈이 없었다. 어른들은 그동안의 공부를 바탕으로 중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별해냈다. 명확한 형태와 선명한 색깔로 전체적인 그림을 감상했다. 내게는 정보들이 체계적으로 응집되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내 그림은 점묘화처럼 구분선이 없고 색깔이 흐릿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파편들만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박사님은 우리나라의 김삿갓계곡에 와서 통곡을 했다는 일본 지질학자 얘기를 해 주신 적이 있다. 그는 무에 그리 감격스러웠던 걸까. 평생의 연구로 수십억년 지구 역사를 조망하는 눈을 가졌던 그는, 걸어서 1분 거리에 수억년을 아우르는 지층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곳에 갔다면 그저 경치 좋은 계곡일 뿐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시력과 시야에 절망했다. 나는 제일 눈이 작은 못생긴 사람이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세상의 골격이나 핏줄은 보이지 않고, 피부밖에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오늘의 마지막 학교, 박물관으로 달린다. 아니, 탐사대에겐 세상 모든 곳이 학교다. 버스 안에서도 강의는 한창이다. 어른들은 관다발식물, 겉씨식물, 현화식물이 출현한 연대를 외우고 있다. 대체 이름도 거창한 저 나무들이 나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무관심하게 내 귀를 통과하던 모래알이 박사님의 한마디로 갑자기 뇌리에 정지한다. ‘지구의 생명은 바다에만 살았다. 육지에는 양분이 떠다닐 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물은 몸속에 물을 봉인함으로써, 육지 위에서, 살아있는 바다가 되었다. 식물의 몸을 딛고 생명은 바다 밖으로 걸어 나와, 동물이 되고 인간이 되었다.’ 차창 밖에 스쳐가는 키 큰 나무들은 모두, 우리의 말없는 키다리아저씨였다.

 

박물관에서 세 시간에 걸쳐 박사님의 강의가 이어졌다. 각종 운석, 광물, 화석... 탐사대는 박물관을 누비며 상상속에서만 만나오던 반가운 보물들을 찾아냈다. 각종 동물들의 경쟁과 공생 그리고 그로 인한 진화의 퍼즐을 맞춰갔다. 탐사대는 여러 동물들의 해골을 모아놓은 으스스한 유리관 앞에 섰다. 제일 끝에, 하얗게 빛나는 뼈다귀가 낯익은 인간의 골격을 이루어 서 있다. 인간 위에 매달려있는 길쭉한 골격을 보고 나는, 새라고 생각했다. 수평의 척추에 여러 갈비뼈가 있고, 아래로 두 개의 손이 달려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돌고래였다. 그리고 돌고래는 분명히, 가늘고 긴 손가락들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 옆에 줄지어 선 해골들을 보고 나는 모공이 더욱 송연하였다. 조금 키 작은 인간으로 보일 정도로, 인간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사님은 인간의 팔, 새의 날개, 물고기의 지느러미, 벌레의 다리는 공통의 설계이며 동물의 역사는 부속지의 혁명의 역사라 하셨었다. 공상만화같던 그 이야기는, 눈으로 보는 순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 몸의 어떤 기관도 어느 날 마술처럼 나타난 것이 아니다. 먼 옛날 물고기가 땅을 짚고 올라오면서 지느러미는 팔이 되었고, 활유어가 물을 가두어 양분을 걸러내면서 아가미궁은 머리가 되었다. 나는 오랜 기억상실증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호주에 와서 이모와 삼촌만 생긴 것이 아니었다. 물고기, 나무, 벌레, 곰팡이까지, 우리 가족의 가계도는 그야말로 풍년이었다. 나는 뼈대 있는 가문의 후예였다.

 

 

호주 열이틀째 - 나무가 되는 꿈

 

호주에 오면서, 난생 처음 등산화란 것을 사 보았다. 싸구려 신발을 사는 바람에, 탐사 중 새 운동화에 쓸려 내 발목은 생채기 투성이였다가, 딱지가 덕지덕지 앉았다가, 아예 나무껍질처럼 벗겨져 나가는 중이었다. 호주에서의 마지막 밤에 나는 해괴한 꿈을 꾸었다. 발 뒤꿈치가 하염없이 벗겨지는 오싹한 느낌에 내려다보았더니, 글쎄, 복숭아뼈까지 이미 나무줄기가 되어 있었고, 종아리에까지 이파리가 기어 올라 있었다.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어난 나는 혼자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옛날, 어느 옛날에는 나는 나무를 닮고, 나무는 나를 닮아 있었겠지. 분명, 그러했겠지. 아마도 호주에서의 열이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무의식까지 흠뻑 적시어 놓았나 보다. 나는 다시 긴 꿈에 빠져든다.

 

옛날옛적에, 우주에 물질이 있었다. 물질들은 단단히 뭉쳐 별이 되었고, 별 속에서도, 별 위에서도, 끈기있게 조립과 분해를 반복했다. 조립체는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지다가, 그만 자신의 모습에 반해 버렸다. 세포가 자신에게 반해 전체를 잊으면 암세포가 되듯, 인간은 자기로 인해 고통스러워졌다. 인간의 잘못은 아니었다. 한 점이었을 때 우주는 스스로를 잊을 수 없었지만, 이제 우주는 기억하기에 너무 넓고 오래되고 듬성듬성해졌다. 물질은 기억할 수 있는 크기까지만 스스로를 기억하게 되었다. 물질은 중력에 의해 수축하듯 자꾸 자기 안으로만 향했다. 인간이 다른 생물, 다른 행성과도 같이, 우주에 흔하디흔한 물질들의 조립품이라는 것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인간은 단지 하나의 방식이었고, 과정이었다. 그래서 유한했다. 무거운 별은 일찍 분해되고, 가벼운 별은 천천히 분해되지만, 어떤 별도 영원히 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분해된다. 영원하기 위해서는 조립되지 말았어야 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조립되어야 했고, 그것은 곧 유한하다는 뜻이었다. 인간은 존재하기 위해서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인간은 물질로 물질보다 특별해질 줄 알았다. 한 인간이 조립되기까지 걸린 137억년의 시도와, 자신의 설계도를 남겨놓고 분해되어 간 수많은 생물과, 그 설계도의 해설서를 한 줄씩 쓰다 분해되어 간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조립품이었다. 전 우주적 공로로 만들어진 자신이라는 조합에 감동하고, 유일한 조합인 어떤 이와의 관계 속에서 더 소중한 조합을 창조해내며, 물질의 총합 그 이상 가는 기쁨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스스로 분해되어야 더 많은 기쁨을 만드는 재료가 됨을 이해해냈다. 다행히도 우주는 자신을 기억할 실마리를 남겨 두었다. 인간의 DNA에 새겨진 진화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남았다. 인간은 다른 생물의 몸 속을 뒤져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기 시작했다. 다른 별들을 뒤져 지구의 기억을 찾아주기 시작했다. 급기야 우주의 어릴 적 사진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사랑으로 자신을 넘어서 바깥을 향했고, 언어로 과거의 인간들과 연대했고, 이성으로 다른 생물, 다른 행성, 우주 전체로 가계도를 넓혀갔다. 우주, 지구, 생명, 자신을 관통하는 장엄한 풍경화를 그려냈다. 인간은, 우주가 스스로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인간은 물질이 조립되는 방식에 불과했지만, 달리 말하면 이는, 희소식이었다. 인간은 분해되어 물질이 된다. 물질은 영원히 팽창하는 우주 속을 떠돌아 다닌다. 인간은 영원히 존재한다. 매 순간 새로운 방식으로.

  

- 지구의 문신

 

멀어질수록 더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 비행기가 땅 위를 달릴 동안에는 볼 수 없는 활주로의 전경은, 하늘로 솟구치는 순간에 비로소 한꺼번에 펼쳐진다. 결코, 없었던 길이 생겨나거나 있었던 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존재했던 것들이,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도록 또렷한 풍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호주대륙을 힘껏 박차고 올라 푸른 하늘 속으로 뛰어들자, 열이틀동안 지나온 길들이 지구의 피부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너무 가까운 곳에, 너무 한복판에 서 있어서, 오히려 꿈결같이 느껴지던 풍경들이 일제히 또렷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곳을 떠나더라도, 세월이 흐르더라도, 나를 잊지 말라고. 벙글벙글에서 우리가 얼굴을 마주했던 순간과, 샤크베이에서 너의 발바닥에 전해지던 나의 온기, 카리지니에서 네가 마음 놓고 뛰놀던 내 품 안을, 잊지 말아 달라고, 지구가 나를 보며 속삭이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나지막하지만, 또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