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2. 4.(일) 오후 4시 경. 겨울 해가 지고 있었다.

청계천을 지나 가는데, 강아지 두 마리가 라면박스에 담겨져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추운 겨울 날씨에 팔리기만을 기다리며 길거리에 노출되어 있었다.

너무 불쌍해 보여서 한 마리를 샀다.  IMF 직후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갔던 것 같다.

3만 5천원이란다. 나머지 병약해 보이는 녀석도 사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다.

 

강아지를 기르다 보니 냄새가 많이 났다.

그래서 오존공기 청정기를 샀다.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수 년간 강아지 곁에 두고 틀어줬다. 뉴스를 봤다. 오존 발생기가 호흡기에 치명상을 준단다.

당장 오존공기 청정기를 폐기했다.

아직도 강아지는 그  휴유증으로 기침을 자주 한다. 강아지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

이래서 '무지를 멀리 하라'하지 않았던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물론 실험을 목적으로 강아지를 산 것은 아니었다.

처음 타이틀은 '생각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였다.

과연 하등한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이 가능한가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못 할 것도 없었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도 없다'라는 믿음으로 강아지가 언어를 습득하도록 말을 많이 했다.

알아 듣든 말든 나는 지껄였다.  못 알아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거렸다. -귀여워 죽음.

이럴 땐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해 주었다.

누가 '인간은 영유아기 때 언어를 습득하지 못하면 평생 동물적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강아지 역시 언어 습득 기간이 있는 것 같다. 좀 늦은 감이 있었다.

 

어느 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천둥과 번개, 겨울비가 요란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강아지가 간식을 먹고 있는데,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뺏어 먹는 줄 알고, 나의 입술을 물었다.

강아지의 송곳니가 윗입술을 뚫고 지나가서 너덜너덜 했다.

다행이 물어 뜯지를 않고 바로 놔 주었다. 순간 물었지만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강아지는 강아지인가 보다. 순간 본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조상말 틀린 게 하나 없다. 밥 먹을 땐 개도 건들지 말라고 했지를 않았던가.

생각했다. '저 놈을 죽도록 두들겨 패?' 한 참을 생각한 끝에 강아지를 버리기로 했다.

나도 참 못된 놈이다. 문을 열고 쫓아 보냈다.

한 참을 처다 보더니 '잘 있어. 너 아니라도 돼' 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 같더니 사라졌다.

겨울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넌 나쁜 놈이야. 정말 나쁜 놈이야. 강아지가 무슨 죄가 있어'라는 생각이 나를 자학했다.

2~3시간 후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니 끍는 소리가 맞을 지도 모르겠다.

강아지였다. 측은해 보였다. 아니 반가웠다. 비를 홀딱 맞고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예전에 놀던 산을 헤맸는지 털에는 온갖 잡풀이 엉켜 있었다.

다행이었다.

 

자아를 심어주기 위해 별도의 공간과 침대를 마련해 주었다.

내 것과 네 것을 철저히 주지시켰다.

 

어느 새벽. 잠이 깨어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갑자기 강아지가 침대에 올라오더니 나를 마구 짖밟는다.

왜 그런가 물어 봤다.

늘 그랬던 것처럼 강아지가 말을 못하니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왜? 어디 아퍼?" 반응이 없다.

" 물?" "쉬?" 역시 반응이 없었다.

"밥? 배고파?" 그렇다고 볼에다 뽀뽀를 하고 난리다.

밥통을 보니 사료가 비어 있었다.

 

강아지가 가끔 아무데나 영역 표시를 해서 물어봤다.

또 스무고개가 시작됐다. "아빠가 미워서 쉬하는 거야?" 반응이 없다.

이 것 저 것 물어 봤다. 무서워서 그런다고 한다. 본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뭐가 무서운지 모르겠다. 포식자가 올까 봐?? 아니면 길을 잃어 버릴까 봐??

그러고 보니, 집에 혼자 남겨졌거나 나들이할 때만 영역 표시를 하는 것 같다.

 

옆집에 누가 왔다.

강아지에게 물어 봤다.

"아줌마야?" 반응이 없다.

"옆집 아저씨야?" 그렇다고 손을 내민다.

 

나쁜 행동을 하는 강아지와 착한 행동을 하는 강아지에 대해 교육?을 했다..

길을 건널 때 차조심 방법과 옆집 강아지 얘기를 많이 해줬다.

알아 듣는 것 같다. 자꾸 재미있는 얘기를 해 달라고 한다.

이럴 땐 어린 애 같다.

 

요즘엔 자기 표현도 적극적이다.

본능적 욕구가 있을 땐 문을 긁는다.

오줌이 마려운가 보다.

배가 고플 땐 나를 괴롭힌다.

얼굴을 때리고 때를 쓴다.

또 다시 스무고개가 시작된다.

"치킨?" "사료?" "피자?" "황태?" "족발?"

오늘은 족발이 먹고 싶은가 보다.

 

 이상 믿거나 말거나한 일상 얘기를 주절여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