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이미지와 서사가 뭔지 제대로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 저런 이미지와 서사로 소설을 써야 할 텐데 하는 감정이 뭉클 달려온다. 영화는 그리스 희곡 오이디푸스 왕처럼 음산한 추리에서 시작한다.

 

  캐나다에 사는 엄마 나왈 마르완은 딸 잔느와 아들 시몽에게 엄청난 유언을 남긴다. 아버지와 형을 찾아 편지를 전해주기 전에는 무덤 비석을 세우지 말고 영원히 세상을 등지도록 얼굴을 땅을 향해 묻도록 요구한다.


  사건이 터졌으면 형사가 해결해야 하는 법. 딸 잔느는 그 유언대로 엄마 사진 한 장을 달랑 들고 레바논이나 팔레스타인 땅 어디쯤을 향해 긴 추적을 떠난다. 그야말로 잔느를 가르치는 수학교수가 말한 풀 수 없는 문제가 다시 낳는 풀지 못할 문제를 향한다. 그 과정에서 학살과 감옥 현장을 찾고 엄마 나왈 마르완이 감옥의 75번 죄수, 노래하는 여인임이 밝혀진다.


  기독교 민병대가 이슬람인들이 탄 버스를 공격하는 장면이 강렬하다. 백 마디 말보다 몇 분의 영화 이미지가 모든 사실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그 사건 후로 나왈 마르완의 삶은 달라진다. 결국 나왈 마르완은 오이디푸스 왕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재현이 되고 만다. 


  영화를 보고 나니 온 몸 근육이 당긴다. 용을 쓰며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 운명을 다룬 그리스 비극을 보면서 느끼는, 스릴러나 액션영화를 보는 것과 다른, 카타르시스가 담긴 뒤틀림이다.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예술전용관인 8관의 좌석은 많지 않지만 예술영화와 독립영화가 그 공간을 채우기는 쉽지 않다. ‘그을린 사랑’은 보기 드물게 관객이 거의 다 찼다. 관객 3만 명을 돌파했다는 입소문 탓이다.


  영화를 함께 본 우리들은 청사포 장어구이 집에 앉아 과연 엄마가 자식에게 그런 유언을 남기는 게 가능할 까 하는 얘기를 길게 했다. 영화는 신화와 역사와 전쟁과 사랑과 가족을 한 솥에 버무렸으니 그런 현실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할까 싶기도 했다. 영화 원작은 레바논계 캐나다 작가인 와이드 무아와드의 연극이라고 한다. 감독은 드니 빌뇌브, 캐나다 영화인데 불어로 녹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