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소비자들의 이것(?)을 끌어내기 고군분투한다. 기업들은 이것의 영향을 믿기에 많은 돈을 광고에 투자한다.

"나 가수다" TV 프로그램에서가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이것을 청중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첫 인상은 바로 이것(!)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것에 좌지우지되면서 하루를 보낼 것이다.

나아가서 이것은 문명, 문화, 철학, 문학, 과학, 예술, 전쟁~~을 일으키고 발전시키는 막강한 힘의 주체자로서, 한 사람의 운명을, 국가의 운명까지도 결정한다. 『스피노자의 뇌』에서 이것은 “우리가 잠들었을 때만 멈추는 가장 보편적인 선율의 허밍과 같다. 우리의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할 때 이 허밍은 소리 높여 부르는 환희의 찬가가 되고, 슬픔에 사로 잡혀있을 때에는 비장한 진혼곡이 된다.”

자 그럼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답은 느낌입니다.

 

벌써 한 해가 지나 2010년 어느 날 『스피노자의 뇌』를 만나게 되었다. 37차 천문우주뇌모임에서 『스피노자의 뇌』를 발표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를 기억하면 딱 떠오르는 기억의 느낌은 설사와 미안함이다. 대사(!)를 앞두고서도 습관대로 게으름을 피우다가 대사 7일 전부터 걱정과 부담감으로 수면을 줄이고 커피의 양을 늘리자, 몸에서는 교감신경 작동중이라는 신호가 계속 올라오면서 발표 일에는 설사가 터지기 시작했다. 뇌에서만 신경전달물질과 호로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위장 내에서도 뇌에서 발견되는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로몬이 거의 모두 발견되어 혹자는 “위장에도 또 하나의 뇌가 있다”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 때 뱃속상황은 뇌가 위장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위장이 뇌를 지배하기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위장의 이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과의사이면서 뇌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임상사례(전전두부 손상)와 뇌영상, 생물학과 뇌과학, 철학을 넘나들며 감정적인 신체상태와 뇌의 변화가 느낌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즉 마음은 신체와 분리되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마지오는 "느낌"에 대한 가설들을 3부작 시리즈를 통해 설명한다. 느낌의 3부작 시리즈는 『 데카르트의 오류』정서와 느낌이 의사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 『 사건에 대한 느낌』 느낌과 정서가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 스피노자의 뇌』에서는 느낌이란 무엇인지, 느낌은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밝힌다.

다마지오는 『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의 오류들을 밝히면서 느낌이 왜 신체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뇌』에서는 스피노자의 심신동일론을 차용하면서 다마지오는 놀랐고 경이로웠다고 한다. 300여년전의 오늘은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이 주류(종교,철학)였던 시기이면서 뇌나 신경생물학적 정보가 부재한 상태였다. 스피노자가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정서와 감정의 본질, 마음과 몸의 관계를 사유한 스피노자의 심신동일론은 지금의 뇌과학과 생물학적 결과를 예측한 것 같다며,

 

『스피노자의 뇌』를 읽으면서 다마지오가 극찬한 스피노자의 철학도 같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다마지오는 책에서 단순한 단계부터 복잡한 단계까지의 자동적 항상선 조절은 면역반응 기본반사, 대사조절에서 통증 및 쾌락 행동으로, 충동 및 동기로 이어지면서 정서로, 드디어 느낌이 탄생되는 과정의 생명의 찬가는 흥미와 전율로 경탄으로 이어진다. 300여년전에 이미 사유한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나 정념을 만나면 또 한 번의 전율은 절정을 이룬다.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컴퓨터에 비유하면 몸은 하드웨어, 머리는 소프트웨어, 그리고 생각은 뇌에서 나오고, 몸은 ~, 비로소 그 막연했던 나의 생각들, 나의 기분, 그리고 지금 글을 쓰면서 올라오는 뭐라고 딱히 표현할 수 이 느낌들은 결코 몸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음을,  뇌도 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음을, 그래서 컴퓨터의 하드웨어는 절대로 몸이 될 수 없어서 인공지능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스피노자의 뇌를 통해, 스피노자의 철학을 통해 생명의 찬가를 들은 지금 이런 깨달음을 준다. 몸을 애지중지(건강한 몸), 감정을 애지중지(건강한 감정) 할 수밖에 없다. 왜나하면 몸은 지금 이순간도 외롭게 눈물겹도록 외줄타기를 하며 생명현상을 이어가고 그 위에 감정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느낌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바로 “소중한 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중한 나의 느낌들은 나를 만들고 세상을 만들어간다.  느낌을 따라 나를 주시해보고 세상을 주시해 볼 일이다. 여기서 과학자와 철학자는 몸과 마음, 환경은 개방체계라고, 생명현상에서 어는 한 곳도 개방체계 아닌 곳이 없다. 왜나하면 개방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개방체계는 행복의 느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