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제 강의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기분입니다.
토요일에 외할머니 생신 기념으로
외가 친척들과 안면도 펜션에 놀러갔었는데
일요일에 강의 들으려고 혼자 먼저 첫차로 올라왔어요.
역시나 감동적인 강의였습니다.
아래는 봉사활동 하던 중에 쓴 시 한편이예요 ^^;
활동 중에 장례식장에 많이 가게되는데
유난히 정이 들었던 환자분이 돌아가시고
안타까운 마음에 쓰게 되었어요.
역시 시를 올리는건 매번 부끄럽네요 ^^;;
이번주는 매일매일 우요일이라고 해요.
아침에 비가 오지 않더라도 항상 우산 챙겨 나가세요!
<죽음의 탄생>
이 슬 아
그 날 오후
병마가 도입되었다.
작은 몸집의 사내였다.
환자란 아호를 지어 주었다.
최초의 증상으로 환자는
걷기능력을 잃어 버렸다.
마음을 지탱하지 못해
다리가 대신 무너져 내렸다.
걸음마가 전처럼 균일하지 못했다.
정지에 익숙해질 무렵
환자는 씹기능력을 잃었다.
삶은 소화하기에 딱딱했다.
아내가 속 깊은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먹였다.
잠자기능력이 슬며시 자취를 감추자
환자의 밤들이 파랗게 깨어졌다.
깨어나지 못할 아침은 모서리가 많아서
아내는 밤새도록 자장가를 불렀다.
말하기능력과 이별한 후엔
진심이 비켜가는 날들이 생겨났다.
어금니 사이로도 의미가 새어 나가서
오요우유으 옹알이를 했다.
똥싸기능력을 상실한 어느 부끄럽던 날
똥오줌도 못 가리는 환자는
울면서 기저귀를 찼다.
꿈 속에도 노란 얼룩이 졌다.
환자는 마실 길을 잃었고
투명한 탯줄이 삽입되었다.
영양분이 먼 곳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유년처럼, 편안해 했다.
오랜 산고의 끝,
환자는 숨쉬기능력을 잃었고
사람들이 그것을 슬픈 일이라 가정했다.
우렁찬 울음소리에
환자는 눈을 떴다.
태초의 뱃 속이었다.
짧지만 읽는 사람의 가슴을 울려주는 시 이네요..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 입장에서 본 것일 뿐... 행성지구의 관점에서 본다면 단지 원자들이
조건에 따라 뭉쳤다 흩어지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언젠가의 박사님 강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시간에 따라 언젠가는 변화될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죽음도 새로운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의 자연스런 하나의 현상이며, 또 다른 상태의 새로운
시작 일 뿐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의 탄생>이란 제목이 가슴에 와 닿는 아침입니다...
아샤님,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나의 육체적 삶은 다가오는 죽음이 만든 경이로운 선물이다"
"우리의 뇌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것은 생식세포와 체세포를 분리하기로 결정하고 죽음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렇다.의미가 있다. 죽음이 없는 성은 단세포 해조류와 균류를 만든다.
죽음은 나무,조개,새,메뚜기가 되기 위해 치른 댓가이다"
人生의 生老病死.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아침 이었습니다.
아샤님께서 그 환자분께 느꼈던 애정이 시에서 온전히 묻어 납니다. '죽음의 탄생'이라는 제목과 전체적 시어들이 합일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봉사활동하시는 맘 착하신 아샤님, 글도 잘 쓰시네요. 감상 잘 했습니다.
저도 요새 닉레인의 생명의 도약을 읽으며
'죽음' 파트를 제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진핵생물이 세균으로 부터 카스파제 효소를 물려 받지않았다면
그렇게 성공적인 다세포 생물로 멋지게 진화할수 있을지는 흥미를 자아내는 의문이지만....(중략)
세포내에서 충돌하는 신호를 통합하고, 잡음을 제거하고 마침내 필요하면 죽음의 방아쇠를 당긴다.
예 죽음은 또다른 탄생이 맞는것 같습니다
인간현상이란게 얼마나 간신히 유지되는 눈물겨운 현상인지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육신과 죽음을 앞에두고 실감하셨을 것같습니다.
우주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건강하게 살아서 인간현상을 잘 유지하는
우리모두는 엄청난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소극적으로 누리는 삶은 우주가 준 행운을 애써 버리는 행위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적극적으로 행운과 행복을 마음껏 표현하고 즐기며 누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