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삼년전 여름 어느날 아침, 신문에서 황동규 시인의 “걷다가 사라지곳 싶은 길-울진 불영계곡 소광리”을 보았다. 한 편의 시가 선명한 풍경으로 되살아났다. 그 해 여름 거의 두 달 가량 그 시의 영상을 가슴에 담고 지냈다. 살다보면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25년 전 군 훈련소 신병훈련 기간 내내 안소니 킨 주연의 “길” 주제 음악이 하늘 저위에서 풀어 흩어지며 가슴 아리게 했던 것이 기억난다.
황동규 시인의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은 10년 전부터 서가에 있었지만, 서너편 읽다가 책을 내려놓고 하기를 몇 년간 되풀이 하다가 그만 잊어버린 시 세계였었다. 그 땐 느낌이 잘 스며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 아침 황동규 교수님의 시가 확연한 느낌으로 홀연히 나타났다. 기억속의 자연풍광이 감성을 연결했다. 우연한 입구를 찾은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를 울진군 살았기에 학창 시절 기억의 배경엔 파도소리와 불영계곡 소나무들이 있었던 것이다. 모든 미지의 세계는 입구가 가려져 있나 보다. 그 후부터 생소한 분야를 만나면 항상 “들어가는 문을 찾아라”라고 속으로 되 뇌이곤 했다.
그 해 여름 연이어 시집 “풍장”을 읽었다. “읽었다”가 아니라 스스로 “풍장”이 된 것처럼 가슴 휑하니 바람이 스며들었다. 살아서 죽어가는 세계, 천천히 무생물화 되어가는 삶의 천이과정을 14년간 72편의 연작시에 담은 “풍장”은 늦가을 홀로 정진하는 늙은 수행승의 기침소리와 같은 그런 세계였다.
시인은 풍장 연작을 끝내면서
“초월은 결국 초월을 하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14년이 걸렸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책을 내려놓고 망연했었다. 그 후 시인이 펼친 풀어져 무연해진 소식인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와 “꽃의 고요”에서 초월에서 평범으로 전환된 세계상이 편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 시인의 시 세계를 만난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 환해지는 것.
(옛 글 다시 옮김니다.)
예전 포항공대 대학원에서 저는 7번 국도의 황태자였습니다.
다른 국도보다 약간 넓고 동해안을 낀 해안도로가 7번국도죠.
아마도 울진에서 삼척까지가 융기지형이기도 해서 절경이죠.
그 도로를 정말 많이 달렸습니다.
지역택시들이 저를 따라오지 못할만큼 달렸죠.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하도 달려서 저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어쩌다 불영계곡이란 곳으로 들어가 본 기억이 납니다.
거기서도 달렸는지 풍경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박사님~ 저는 초월을 못하고 추월은 정말 많이했습니다.
불영계곡과 초월이란 단어를 보고 그냥 떠오른 생각입니다.
시를 읽는다는것은 정말 평범한 일상이 환해지는 일.
비가 많이 내리는 요즘, 이성미 시인의 '비'를 읽고서 저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전문을 옮깁니다.
담장과 담장 사이
넝쿨과 넝쿨 사이
그의 어깨와 그녀의 어깨 사이
뭐라 부를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지는 비
고개를 뒤로 꺾고 보는 날
첨탑 옆에는 무엇이 떠다니는지
전깃줄은 어디로 달려가는지
발가락이 젖어 알게 되는 날
아스팔트 길 어디가 꺼져 있는지
진흙 땅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그동안 잠자코 있었지
창문 밑엔 버려진 자동차
양철 지붕 위엔 미루나무
안 가본 데로
비의 손가락을 따라다니는 날
물웅덩이만 잠시 기억할 뿐
사라지는 세계
오즈의 마법사의 최고의 마법은 세상을 순식간에 빨갛게도 노랗게도 파랗게도
만들어 깜깜한 세상과 밝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뭐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선글라스'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것, 벗어난 다는 것은 결국 내가 다른이의 관념 어린 시선을
통해 바라봄을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돌아온 그곳은 썬글라스를 벗어 던진 내가 있을 것입니다.
빵장수 야곱의 글 '세상이 모두 보이는 언덕위에서 나는 나를 지키려 벽돌을 쌓았고
시간이 지나 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 그것 깨닿고 다시 벽을 무너트렸을 때
세상은 거기에 있었던 거야. 난 다시 아이가 될 수 있었어.
'"초월은 결국 초월을 하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14년이 걸렸다”
글을 읽는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부끄러워지기 시작합니다.
'한 시인의 시 세계를 만난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 환해지는 것'
~!
오늘 저녁은 이 느낌을 곳곳에서 찾아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