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오늘도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출근길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옆 사람을 살짝 치면서 ‘죄송합니다’, 건물 출입문을 잡아주고 있는 사람에게 ‘고맙습니다’, 작은 부탁을 하면서 ‘미안합니다’,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감사합니다’. 일하면서 작성하는 글들은 감사와 사과로 시작하거나 끝맺는다. 정확히 횟수를 셀 수 없지만, 어림잡아 봐도 참 많이 말한다. 쉽게도 한다.

  그런데 항상 쉬운 게 아니다. 이를테면 정말 미안해서 온몸이 차갑게 식는 것 같을 때, 반대로 매우 고마워서 그 사람의 이름만 떠올려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 내 입은 습관처럼 내뱉는 이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특히 늘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무엇이 고맙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몸이 굳는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말도 마찬가지다. 때를 놓친 말은 후회로 남아 몸을 한쪽으로 기울게 한다. 비뚤어진 몸이 덜거덕거린다. 




  하지 못한 말도 빚이라면, 가족을 제외하고 윤아에게 가장 많은 빚을 졌다. 윤아와의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알고 지낸 건 10년도 더 되었지만, 함께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윤아가 재수를 해서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항상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는 걸 보면, 친밀함은 살을 맞대고 있는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부모님께서 모두 해외에 계실 때 가벼운 뇌진탕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고, 다친 게 광고할 일도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혹시 몰라 윤아에게만 연락을 했다. 그녀는 곧바로 짐을 싸서 병원으로 달려왔다. 병원에서 밤새워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건지 알려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신세 지는 걸 못 견뎌 하는 내 성격을 잘 알았다. 병원에서 하룻밤 자는 게 재미있는 일인마냥 신나서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건 그녀 나름의 배려였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개인적이면서 우울한 소재가 대화의 중심이 되는 건 불편하다. 그래서 고민이 생기면 혼자 동굴에 들어갔다.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져서는 문제가 해결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나타나고는 했다. 처음에는 반년, 그다음은 1년, 그리고 마지막이 5년이었다.

  마지막은 너무 길었다. 다시 연락하는 게 망설여졌다. 가끔 윤아와 다시 만나는 순간을 상상했다. 활짝 웃으면서 마주할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제도 만났던 것 같은 표정으로 마주할까 고민했다. 무척 반갑겠지,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설레는데 덤덤하게 볼 수는 없겠다.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불안해졌다. 서운한 마음에 화내는 건 아닐까. 왜 이제야 연락했냐고, 그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화내면 어떡하지.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다 할 수는 있을까. 고민이 길어졌다.

  머뭇거리기만 하는 사이, 윤아는 끊임없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오랜만에 찾은 개인 미니홈피를 보고 알게 되었다. 내가 침묵하고 있던 5년간, 윤아는 종종 내 미니홈피에 글을 남겼다. 내 생일에,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날에, 꿈에서 날 봤다는 날에 남긴 글이 이어졌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으니, 새로운 번호로 연락하라는 글도 있었다. 내가 볼 거라는 확신도 없이, 그냥 쓴 글들이었다. 그것들을 전부 읽고 엉엉 울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여 머리가 아팠다. 




  윤아와 다시 만난 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했다. 부끄러워서 못했던 말, 혹시 실망해서 나에게 등 돌릴까 봐 못했던 말을 풀어놓았다. 너라는 친구가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고, 가끔 내가 나에게 자신이 없어질 때 네 응원으로 힘을 냈다고. 그리고 돌아보니 난 정말 못된 친구였다고. 내가 편하려고 네가 힘든 순간에 함께 해주지 못했다고. 몇 번이고 내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너를 외면했다고. 정말 미안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