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9.21자 문화일보 기사에 박사님글이 올라왔습니다.


[문화] 지식카페게재 일자 : 2016년 09월 21일(水)
완벽한 대칭의 아름다움… ‘태초의 우주’가 머릿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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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송재우 기자 jaewoo@

박문호의 뇌과학 이야기 - ① 대칭성, 모듈성, 순서성 

태초에 완벽한 대칭이 있었다. 그래서 태초 이전부터 태초까지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은 부르면 응하는 자’라는 말이 있다. 태초는 아무도 부르지 않아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뭐라고 표명할 그 무엇도 가능하지 않은 상태였다. ‘태초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표현은 태초에 ‘자발적으로 대칭이 붕괴되었다’는 말과 같다.  

우주는 ‘대칭’과 ‘대칭의 붕괴’ 두 상태뿐이다. ‘대칭 붕괴’의 표현이 바로 ‘모든 존재’이다. 그래서 자연이든 생명현상이든 태초로 되돌아가서 대칭을 만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 방향성을 가진 작용을 일으키는 현상이 모두 와해돼 무엇이라 표현하는 것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자연과학은 상대성이론과 입자물리학을 바탕으로 한다. ‘대칭과 대칭의 자발적 붕괴’는 입자물리학의 주된 대상이다. 그래서 자연과학 공부의 맨 밑바탕은 ‘대칭성’이란 개념의 깨달음에 있다.

태초에서 137억 년이 지난 현재의 우주는 겉으로 드러난 대칭의 모습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주의 깊게 자연에 숨겨진 대칭을 찾아내야 한다. 물리학에서는 시간대칭과 공간대칭이 보존법칙으로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시간대칭을 보장하는 보존량이 바로 에너지이며 공간대칭에서 보존량이 바로 운동량이다. 그래서 시간대칭의 요청으로 에너지보존법칙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공간대칭의 요청으로 운동량이 보존된다. 생물학에서 대칭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다. 인간의 심장은 왼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그러나 태아의 심장은 몸의 중앙 축 상에 존재한다. 동물의 발생과정은 대칭이 깨어지는 과정이다. 

어떤 분야에서 능숙해지는 과정은 대략 두 가지로 구별된다. 축구형과 골프형의 기술 습득과정이다. 축구형은 특별한 폼 없이 그냥 공차기가 좋아서 어려서부터 날마다 공과 놀면서 실력이 늘어난다. 반면에 골프형은 혼자 자기방식으로 훈련한다고 전문가가 되지 않는다. 태권도나 골프처럼 특별한 자세가 중요한 운동은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반면에 축구나 소설을 잘 쓰는 능력은 특별한 방식보다 많은 연습량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 뇌 과학 공부방식은 골프형과 축구형 중 어느 유형에 더 가까울까? 뇌의 기능과 구조를 공부하는 과정은 골프형에 더 가깝다. 인간의 뇌는 구조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뇌는 어느 단면구조든 놀라운 대칭구조로 구성돼 있다. 뇌의 곡선은 원이나 직사각형처럼 단순한 기하학적 대칭은 거의 없고 무수히 많은 짧은 곡선의 연결이다. 직선으로 구성된 구조는 뇌에서 드물다. 생명은 곡선을 좋아한다. 

뇌의 기하학은 방향과 곡률을 예측하기 힘든 무수한 곡선이 엉킨 실타래 같은 세계이다. 그래서 신경해부학은 의대생조차도 힘들어하는 과목이다.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뇌의 구조를 그리기가 쉽지 않다. 특히 대뇌의 표면은 많은 언덕과 골짜기 형태여서 따라 그리기조차 어렵다. 뇌의 단면구조도 온통 곡선구조물이며 절단면의 위치마다 크기와 형태가 많이 바뀐다. 그러나 뇌 단면 구조를 익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뇌 구조에서 대칭성을 찾으면 된다. 어떤 뇌 단면이든 모두가 대칭축을 중심으로 완벽한 대칭구조이다. 뇌의 전반적 구조는 모듈식이지만, 단면구조는 아름다운 대칭 형태이다. 그래서 뇌의 단면구조를 반복해서 자세히 보면 머리가 편안해진다. 대칭구조는 정보량이 축약되어 뇌가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동물의 뇌는 대칭구조이며 모듈을 구성한다. 모듈은 쉽게 레고 블록 같은 형태이다. 레고 블록으로 풍차나 비행기를 조립하여 만들듯이 모듈 형태의 구조물은 조립하여 더 크고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의 뇌나 척추처럼 복합구조는 단위 모듈의 연결로 생성된다. 단위 모듈로 분해할 수 있는 구조는 대부분 골프처럼 일정한 폼이 있다. 일정한 형태 즉 모듈이 구성단위가 된다. 

모듈성이 확립된 대표적인 예가 화폐이다. 돈의 단위가 100원, 1000원, 만 원처럼 십진수 단위로 되어 있어 단위성 즉 모듈성을 갖게 되면 동일 화폐권 내에서 교환이 가능해진다. 모듈성은 교환 가능성뿐만 아니라 조작 가능성을 갖는다. 모듈적 속성은 단위성과 조작성 그리고 교환성을 동반하게 된다. 돈을 저축하거나 이자가 발생하는 현상은 화폐의 모듈성에 의한 부가적 이득이다. 요약하면 어떤 구조나 형태가 대칭성과 모듈성을 가지면 모듈끼리 교환과 조작이 가능해진다. 

대칭성을 갖는 큰 단일구조가 구성모듈로 분해되면, 그 구성요소들이 시간과 공간에서 순서로 배열될 수 있다. 모듈성 구성요소가 시간순서로 배열된 현상이 사건과 사물의 전개과정이 된다. 생물학에서 구체적 모듈은 바로 포도당과 아미노산 분자이다. 단당류인 포도당의 중합으로 다당류인 녹말이 되며, 아미노산의 연결이 단백질이다. 생명현상은 단백질의 구성블록과 에너지원인 다당류의 상호작용이다. 생물학에서는 분자형태가 주로 모듈의 구성단위이고 화학에서 모듈은 주기율표의 원자 그 자체이다. 

생체정보를 담당하는 DNA도 전형적인 모듈식 구성이다. DNA는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의 염기와 리보스, 그리고 인산기의 구성 모듈이 중합되어 생성된, 대칭구조를 갖는 모듈형 거대분자이다.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그리고 유전정보인 DNA의 상호작용인 생물학적 현상은 모두가 모듈과 모듈의 순차적 연결이자 대단히 긴 반복일 뿐이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모듈의 단위성과 교환성이 더욱 자명하다. 그래서 우주의 4가지 힘을 중력, 강한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 전자기 상호작용처럼 ‘강력’보다 ‘강한 상호작용’이란 표현을 더 많이 쓴다. 그것은 입자물리학에서 힘이란 본질적으로 힘을 매개하는 입자인 보존을 입자 사이로 교환하면서 생긴 현상이므로 ‘힘’보다 ‘상호작용’이 더 의미가 깊다. 즉 힘은 교환가능성에서 나온다. 우주의 4가지 힘을 매개하는 입자에는 중력자, W입자, Z입자, 그리고 광자가 있다. 빛 알갱이인 광자가 바로 전자기 상호작용을 매개해 준다. 그리고 생명의 이야기는 전자와 광자와 양성자의 상호작용이 엮어내는 교향곡이다.  

태초의 대칭이 붕괴되어 전자기 상호작용이 출현했으며 전자기 상호작용이 지구라는 행성 표면에서 기적처럼 엮어낸 드라마가 바로 생명현상이다. 생명현상이란 전자기 상호작용이 지구 표층에서 전개되는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 뇌에 의한 가상세계의 출현은 생명현상이 보여주는 새로운 차원의 전개과정이다. 문화와 역사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화폐와 언어의 교환가능성으로 경제와 문화현상이 출현했듯이 화폐와 단어의 모듈성에서 생겨나는 교환가능성에서 경제력과 문화의 힘이 출현한다. 생명과 뇌 구조의 바탕에도 모듈성의 원리가 있다. 척추동물의 몸 구조는 척추라는 마디, 즉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대칭성과 모듈성 그리고 순서성은 우주와 생명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드러내는 본래 모습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뇌 과학 공부는 뇌 구조의 대칭성을 주목하면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뇌 구조가 대칭이므로 모듈식 구조의 연결에 익숙해지자. 신경해부학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경핵이 바로 뇌의 구성 모듈이다. 그리고 그 신경핵들의 상호연결을 살펴보면 시각과 청각 그리고 체감각의 일차, 이차, 삼차의 순서화된 신경정보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대칭과 모듈과 모듈의 연결순서에 뇌의 진화가 담겨 있다. 그래서 신경해부학 공부는 뇌 구조에서 대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척추동물이 자연에 적응하면서 5억 년 동안 무수히 반복 실행한 생존과정의 결정체가 바로 인간의 뇌이다. 그 바탕에는 자연의 대칭이 인간 뇌의 구조 속에 아름다운 대칭구조로 새겨져 있다.  

기억의 법칙도 바로 대칭성, 모듈성, 순서성에서 나온다. 대칭과 대칭의 붕괴로 세계가 출현했고, 세계는 태초의 대칭을 그리워한다. 대칭의 요청으로 우주의 네 가지 힘이 출현했다. 결국 대칭의 아름다움이 바로 힘의 근원이다. 아름다움은 대칭에서 나온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미국 텍사스 A&M대 전자공학 박사 △‘뇌 생각의 출현’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 등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