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자연과학세계를 알게 되었고, 우주론, 천체물리학, 지구과학, 생물학, 뇌 과학을 주말마다 몰입해서 공부하고 난 후,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과 2년 전 서호주 여행에 나섰다빅뱅 이후부터 생각하는 인간현상의 출현까지 매듭 없이 설명하는 자연과학지식으로 무장하고 지구 형성초기부터 지금까지 진화의 과정에 관한 흔적을 고이 간직한 서호주의 자연 속에 스며들고 싶어서였다.

 

기존에 습관처럼 해왔던 골프여행, 사업차 다녔던 여행, 역사, 문명, 문화의 기원을 찾아 떠났던 여행, 다른 인종의 문화적 이방인이 되어 낯선 그들의 문화를 즐기러 떠났던 여행들과는 출발부터 달랐다.  초기 지구의 암석, 모든 것의 출발점이자 생명체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시아노박테리아가 35억년 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산소를 만들며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암석덩어리를 생성하고 있는 인도양 바닷가, 20억년 전 붉은 대지와 호상철광층, 지상최고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 속에 온전히 잠기고 싶었다. 이를 위해 기존 문명사회의 법칙과 습관을 모두 집어 던지기로 작정하고 일상적인 대화와 용어마저 사용을 금지하기로 서로 약속하였다. 인간의 문화와 문명에 길들여진 언어의 사용은 현재에 존재하며 자연을 느끼는 걸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서 호주에서는 지구가 반 바퀴 자전하여 우주 본래의 검은 색 어둠이 감싸면, 핵 융합하는 천체인 별들이 모래알처럼 밤하늘에 흩뿌려져, 우주적 현상의 일부인 존재로서 나를 느끼게 한다. 다시 반 바퀴 돌아 핵 융합하는 별인 태양의 빛 알갱이가 쏟아져 나와 투명한 대기 때문에 생기는 비너스벨트, 35억년 전 지구초기 암석과 스트로마톨라이트, 20억년 전 붉은 대지와 철광층, 건조한 이 땅의 주인임을 주장하는 듯이 광활한 대지위로 우뚝 솟은 채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개미제국, 딥블루의 하늘, 소실점 한 점으로 사라지는 인간이 만든 생존의 길이 환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문명과 문화의 흔적이 이처럼 드문 곳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화성표면과 비슷하다고 하여 NASA에서 화성탐사기기를 테스트하는 장소로 유명하고, 초기 지구 형성기의 암석과 대륙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전세계지질학자들이 초기 지구연구 목적으로 여행을 많이 오는 곳이다. 생명의 행성 지구에서 지구 표층환경의 진화에 획을 그은 사건을 간직하며 지구 유년기의 생명출현의 흔적을 지문처럼 간직한 곳은 많지 않다

 

싱가폴을 경유하여 퍼스에 도착한 후, 북쪽 직선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가다 보면 눈앞에 불현듯 등장하는 인류자연유산 샤크베이란 안내표지가 등장한다. 그 길을 따라 인도양으로 곧바로 뛰어들 것 같은 직선도로를 달리다 보면, 귀신이 되지 않고 아직도 살아 생존한 유일한 생명체의 조상이자 지구의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고 하는 시아노박테리아가 대기 중에 유리된 산소를 만들고,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만드는 현장인 인도양 샤크베이의 해멀린 풀에 도착한다.

 

아직도 샤크베이에서 시아노박테리아는 물을 분해하고 태양에서 오는 빛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광합성 작용을 하고 부산물로 산소를 내놓고 있다. 시아노박테리아를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든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퇴적물을 다량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볼 수 있는 곳은 샤크베이와 카리브해 뿐이다. 지금은 시아노박테리아가 거의 사라졌음에도 대기 중 산소농도가 21%를 유지하는 것은 시아노박테리아가 엽록소로 변형되어 식물의 잎 속에서 여전히 광합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억년 전에서 19억년 전 사이에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든 산소는 바닷속에 녹아 들어가 당시 바다에 존재하던 이온화된 철을 산화시킨 후 바다 밑에 퇴적시켜 호상철광층을 만들었다. 이 호상철광층은 철 함량이 높아서 현재 인류의 철 공급량의 70%이상을 제공하여 인간의 문명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샤크베이에서 더 북쪽으로 가다가 25억년 전 바다에서 쌓인 호상철광층이 지천으로 드러난 카리지니 국립공원을 만나게 된다.

 

산소는 바다의 철을 산화시킨 이후 대기에 공급되어 지각을 산화시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암석을 산화시키고, 유기물마저 산화시켜 생명이 이 산화에너지를 생명활동의 동력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산소는 생물이 탄산염이나 인산염, 키틴질과 같은 골격구조를 형성하고 몸집을 키우는데 중요한 성분을 만드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다세포 생물의 출현을 가져왔다.

 

이렇게 지표면의 모든 곳에서 물질을 산화시켜 지구순환과 생명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유리된 산소를 대기 중에 존재하도록 한 주인공이 시아노박테리아인 것이다. 그래서 시아노박테리아가 산소 호흡하는 모든 생명의 시조라고 일컬어지고, 살아있는 시아노박테리아를 볼 수 있는 샤크베이를 생명체의 성지라고 부르며,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라고 하는 것이다. 파도 없이 잔잔한 샤크베이에서 시아노박테리아의 전설을 되새기며 한나절을 보내며 생명체인 인간 역시 팍스시아노시대와 운명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낮의 열기가 수그러들고 하늘 한 켠이 석양의 붉은 빛으로 물들 무렵 낮 동안 사로잡았던 초기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담은 지각과 암석은 잊혀지고, 나의 상상은 별들 사이를 방황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밤낮이 바뀌는 시간에 눈 앞의 시각적 자극이 사라지면 뇌 속의 생각도 사라지는 걸 섬세하게 관찰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윽고 사위에 어둠이 스며들면 별, 행성, 성간 가스로 가득 찬 하늘이 온갖 빛을 발하고 눈 앞에 장대한 은하수가 전복속살 같은 미묘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지평선이 낮게 깔려 거칠 것 없는 서호주 대지 위에서면 아름다운 별빛으로 수 놓인 천구가 보호막처럼 둘러싸인 세계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 드는 인간의 감각은 당연해 보인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밤하늘 경치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서인지 별빛이 주는 시각적 자극은 이내 빅뱅초기의 우주, 시공간, 소립자의 세계, 은하, 성간가스, 행성, 생명, 생각하는 인간현상 등에 관한 무수한 질문으로 바뀌어 간다.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넘어선 또 다른 138억년 우주의 파노라마를 맛보기 위한 상상의 탐험을 시작한다. 온갖 인공 불빛이 가득한 도시에서는 우주란 무한한 공간에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상상만으로 우주의 모든 걸 채운다. 칠흑 같은 밤에 우주와 직접 마주하는 것은 어떤 황홀한 상상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주는 우주적 현상에 가까이 노출된 순간은 특별하다. 어두움 속에서 별의 소중한 정보를 담은 유일한 메신저인 빛은 나와 경이로운 우주를 연결한다. 별은 모든 빛을 방출한다. 나는 그 중에서 가시광선만을 감지한다. 만일 적외선과 감마선 등의 다른 빛을 감지할 수 있다면 밤하늘 별들은 얼마나 화려하고 경이롭게 보일까? 빛은 단순히 아름다운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주의 어디쯤에 있는 인간의 위치와 지금 대면하고 있는 우주의 과거와 미래에 관한 정보를 지문처럼 전해준다.

 

먼 옛날 지금 나처럼 끝없는 호기심과 의심 그리고 의문들에 휩싸여 똑 같은 이 밤하늘 장면을 바라보았을 인간의 조상을 상상하자 시간과 세대의 장벽이 사라진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가상세계의 정보와 지식으로 모든 호기심과 의문에 관한 해답을 마련했을 것이고, 나는 과학이 밝힌 지식과 정보를 통해 밤하늘의 장면을 해석하고 있다. 그들은 맨눈으로 나는 허블 망원경으로 우주를 바라본다. 엄밀한 측정으로 무장한 과학은 우주와 자연을 바라보는 강력하고 효과적이며 멋진 수단이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왜곡된 감각의 한계로 둘러싸인 우리들의 조상보다도 훨씬 더 자연과 우주를 잘 설명하고 느끼고 알게 되었다.

 

별자리만큼은 조상과 내가 함께 모든 걸 공유했을 거라 여겨진다. 별자리는 과학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감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초원, 사막과 바다 한가운데에서 바라보는 별자리는 가시광선만을 감지하는 인간의 시각이 만든 인간생존의 길이다. 별자리는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만든 가상의 공간이다.

 

 별이 쏟아지는 대지 위에 침낭을 덮고 누워, 밤새 별과 은하수가 지구의 자전속도에 맞춰서 시시각각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며, 별 속에서 탄생한 내가 지금 생명의 원소를 만들고 있는 별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는 경이로운 장면을 즐기는 낭만은 지구 어느 곳에서든 쉽게 주워지지 않을 것이다.

 

 서호주의 별이 그립고, 35억년 전의 암석과 대지가 그리워, 올해 6월 초에 다시 서호주를 찾았다. 이번엔 35억년에 형성된 원시지구 암석인 그린스톤 벨트와 거대한 화강암복합체가 있는 마블바를 보기 위해서였다. 암석의 폭과 길이가 100Km이상인 화강암복합체와 지구 최초의 원시 암석인 그린스톤벨트는 지구 대륙형성의 기원이기도 하다. 대륙 안에 있는 26억년 전의 해변가를 거닐어 보고, 거대한 화강암 활주로에서 달려도 보고, 나지막하게 분출한 화산암 더미에 오르기도 했고, 마블바에서 자스퍼란 보석위에서 비박을 하며 구름사이로 간간이 별을 보며 밤을 지새는 행운을 맞이하기도 했다. 서호주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도 2-3년마다 서호주를 찾을 계획이다. 서호주의 자연 앞에 서려면 자연과학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자연과 대화를 하려면 자연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야 의미가 전달되고 감동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