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리는 말이 아닌, 새기는 글은 언제나 대하기 어렵다. 글 앞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하다. 쭈뼛쭈뼛하면서 주변만 어슬렁거리다 좀스러운 심보와 무지만 절실하게 느낀 채 터덜터덜 발걸음을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함부로 덤비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오래가지 못한다. 조금만 기운을 차리면 분기탱천하여 ‘내가 반드시 널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며 또다시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만다.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글쓰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평생 끝나지 않을 전쟁. 최근에는 국지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편의 글은 여러 개의 문단이 모여 이루어지고, 문단은 문장이 모여, 문장은 단어가 모여 이루어진다. 단어는 글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작은 의미단위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칼날은 글의 모서리, 단어 끝과 끝 사이를 향한다.


  옹골차게 의미를 품은 단어는 고유의 색을 띤 채 다른 단어와 관계를 맺는다. 각각의 단어는 연결로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데, 그 자체로서 글이 되기도 한다. 단어는 글이라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사용되는 모듈이다. 글은 다시 단어로 분리되어 모듈화하고, 하나의 단어는 또 다른 결합의 단계를 거쳐 새로운 글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글쓰기란 단어를 조립하는 과정, 즉 분해된 것을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