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날이면 몸을 잔뜩 웅크리며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를 떠올리게 된다. 똑같이 26도여도 여름과 겨울의 체감온도가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 받았던 충격도 함께 따라온다. 그래, 다르지 않아. 잠깐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다시 바람이 몰아친다. 으아, 그래도 춥다!

 

  쉴 새 없이 부는 겨울바람은 또 다른 기억을 들춰낸다. 바람에 드러난 손이 건조해지면 엄지와 검지 사이가 빨갛게 부풀어 오른다. 예전에 화상을 입은 곳이다. 흉터가 남지 않았지만, 겨울만 되면 슬쩍 얼굴을 내민다. 또 올라왔구나, 하고 흉터 자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화상을 입게 된 시간으로 돌아간다.

 

  고등학교 때, 통일 글짓기 상을 받아 학교 대표로 금강산에 갔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5월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탐탁지 않아 하셨다. 고등학교 성적이 평생 간다는 말이 돌 때였다. 이후에는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학교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갈등이 생겼지만, 내가 언제 금강산을 보겠나 싶어 가기로 했다.

 

  이동 중에 틈틈이 공부하겠다는 생각으로 가지고 온 암기 수첩은 가방 앞주머니에서 한 번도 나오지 못했다. 판문점까지 가는 차 안에서는 주의사항을 입력하기도 바빴다. 주의해야 할 점이 많았는데, 지금 기억나는 건 한 가지다.

 

  첫 번째는 유리창 밖을 삿대질로 가리키지 말 것. 도로 옆에 북한 군인이 숨어 있는데, 삿대질 할 경우 총을 쏜다고 오해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진짜 총을 겨눌 수 있다는 것이다. 판문점을 지나 숙소까지 가는 길은 지루한 갈대밭이었다. 방학 때면 내려갔던 시골의 갈대밭과 비슷했다. 정말 저 속에 군인이 숨어있을까, 정말 삿대질을 하면 군인이 튀어나올까 궁금해져서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갈까 봐 이동하는 내내 양손을 다리 사이에 꼭 끼고 있었다.


  허름한 시설을 상상했는데, 숙소는 쾌적했다. 온천도 있었다. 그런데 온천물이 화장실에도 쓰였나 보다. 평소처럼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뜨겁다기 보다 끓는 물에 가까웠다. 모르고 집어넣었던 손을 황급히 뺐다. 손등이 얼얼했다.


  새벽에 통증을 참을 수 없어 깼다. 관계자를 찾아가 사정을 말했다. 병원을 가봐야겠습니다, 곧 작은 승합차 한 대가 숙소 앞에 도착했다. 북한 관계자 1, 북한 운전기사 1, 그리고 나. 세 명이 탄 차가 밤길을 달렸다. 조금만 나가면 있다는 병원은 한참을 덜컹거리며 달려도 나오지 않았다. 낮에 본 갈대밭이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반사되어 을씨년스럽게 흔들렸다.

 

  숙소에서 멀어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버스 안에서 들었던 주의사항, 엄마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나온 아침 대문 앞, 관계자에게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던 이불 속. 자동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주변은 조용한데, 나 혼자 시끄러웠다.

 

  도착한 곳은 작은 병원이었다.

  “어쩌다 다쳤습니까?”

  “화장실 세면대 물이, 그러니까 저기 숙소의…….”

  나도 모르게 올라간 손가락을 황급히 내렸다. 삿대질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당황하는 나를 보며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웃었다. 가벼운 화상이니 흉터가 남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 붕대를 감은 손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밤길은 신기하고, 새로웠다.


  여전히 북한 관련 뉴스를 보면 저 멀리 이야기 같다. 다만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빨갛게 도드라진 상처를 볼 때면 안절부절했던 그 길을 떠올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