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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면 이 큰 덩치가 하늘을 오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비행기가 정확하게 공항에 착륙하는 모습도 놀랍다. 공항 부근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내리며 이륙하는데 그 혼잡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하다. 자동차처럼 슬쩍 차선을 옮길 수도 없지 않은가?

 

비행기 기장이 쓴 이 책은 그런 궁금증을 다소 풀어준다. 책의 부제가 ‘조종실에서 바라본 세상, 그 특별한 이야기’이다. 특별한 이야기가 맞다. 이런 글은 그 분야를 속속들이 파악한 장인 급이 아니면 내놓기 어렵다. 비행기 뒤쪽에서 바람이 불 때(배풍) 착륙하는 기술인 서클링에 관한 글을 누가 쓰겠는가? 나는 이런 특별한, 전문가가 자신의 영역과 경험을 펼치는 이야기가 좋다. 자신의 세계를 장악한 사람은 그에 걸맞은 색다른 거리를 끄집어내기 마련이다.

 

이 책은 9장으로 나눠져 있다. 모두 흥미진진하다.

2001년 9. 11 사태 당시 뉴욕을 향하던 B747 여객기가 캐나다 시골 마을에 비상착륙하는 사건 (5장 사냥)이 특히 재미있다. 무장한 FBI 요원이 둘러싼 가운데 영문도 모르며 손을 높이 든 부기장은 죽을 고비를 넘긴다.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없을 만큼 박진감 있다.

 

1999년 4월 상해 공항에서 대한항공 화물기가 추락하면서 저자는 친한 선배를 잃는다. 국제선 항공기가 운항 중에 사고를 당하게 되면 세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다. 사고가 일어난 나라, 사고 항공기를 만든 나라, 사고 항공기를 운영한 나라가 그들 세 나라다. 사고가 일어난 나라가 사고 조사를 주관한다. 그 나라가 ‘이 사고의 원인은 이것이다’라고 결론 내리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

 

중국은 조종사의 고도 착각에 따른 잘못으로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대한 항공은 여러 문제를 들어 소송으로 끌고 갔는데 추락하기 직전의 비행경로가 판결의 열쇠를 쥔 이슈였다. 대한항공 측은 비행경로를 추정을 하기 위해 서울대 교수와 MIT 교수를 찾아간다. 그런데 그 둘의 자세와 방법이 너무 다르다. 인상적인 내용이라 책을 인용한다.

 

“우리는 서울대를 찾아가 비행경로 분석을 의뢰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비행경로 추정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들어야 했다. 가지고 있는 데이터가 빈약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수개월 동안 시뮬레이션을 해야 분석할 수 있으며, 비록 수개월 연구한다 해도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척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우리는 같은 자료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한 MIT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항공사고 분석에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경험 많은 물리학자였다. 그는 우리가 제시한 빈약한 자료를 훑어보고는 자신 있게 중국의 조사가 틀렸다고 했다. 그리고 대략적인 비행경로를 그려 보여주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비행경로를 추정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슈퍼컴퓨터가 아닌 종이와 펜뿐이었다.

 

그는 노란색 리걸 노트 패드에 물리공식 열 가지 정도를 연필로 적었는데, 익숙한 ‘F=ma’와 같은 기본적인 공식도 있었다. 필요한 공식들을 나열하고는 곧 바로 빠른 속도로 빼곡히 계산을 해나갔는데, 그 흔한 계산기조차 쓰지 않았다. 얼마 전 슈퍼컴퓨터를 말하던 한국 학자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 더구나 한국 학자의 경우 첫 미팅 이후 실제적인 분석 작업 과정은 모두 젊은 조교들에게 맡겼지만 미국 학자는 직접 모든 것을 연구하고 분석해주었다.”

 

이런 글을 읽으면 미국 대학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느낌이 온다. 그리고 미국은 역시 미국으로 쉽게 망하거나 몰락하지 않을 거라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공감을 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어머니 대자연’이다. 그는 번개와 폭우가 치는 날, 태국 공항에 내린다. 화난 선더스톰은 끊임없이 번개를 지상에 내리꽂았다. 비는 계속 내리고 비행기는 춤을 춘다. 비행이 아니라 거친 파도를 항해하는 것 같다. 정밀 유도 접근인 ILS 접근을 할 때는 최종 2백 피트(60미터) 지점이 결심고도다. 이 고도를 통과할 때 활주로가 분명히 보이고, 안전한 착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면 착륙을 계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착륙을 중단하고 고어라운드 해야 한다. 죄측풍 12노트로 비행기가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막 고어라운드 하려는 순간, 기울어진 항공기가 용을 쓰며 다시 중심을 잡았다.

 

그는 믿게 된다. 대자연은 순응하는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대자연 속에서 날개 달린 기계는 너무나 약하고 하찮은 존재다. 날개 달린 기계는 진정으로 자연을 존경하고 순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의해 날려 보내져야 한다는 것을.

 

비행기 유리창 밖은 영하 50도에 초속 100미터의 와류가 덮친다. 책의 마지막 ‘닫는 글’은 자연이 던져 준 가느다란 동아줄 한 가닥을 붙잡은 채 어머니 자연에게 생명을 맡긴 조종사의 현실에 대한 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