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고향이 어디세요? 라고 묻자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했다.


 "자고 일어나면 토끼랑 발 맞대고 있던 동네"


그 말 한 마디에 하얗게 눈이 내린 산골의 집이 그려졌다. 타다도모의 하이쿠가 떠올랐다.

 

"이 숯도 한 때는 흰 눈 얹힌 나무가지였겠지."

 

일본의 옛날 전통집은 집 한 가운데 모닥불을 지피는 구조다. 나무로 만들어진 벽은 얼기섥기 엮여져 있어서 겨울 바람이 파고든다. 배고픈 시인은 주린 배를 부여잡고 조금이나마 추위를 피하려 나뭇가지에 불을 피운다. 타들어가는 나무를 본다. 그 나무의 생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생에 한 장면인 흰 눈 얹힌 장면에 머문다.

 

나무에서 떨어진 씨가 새싹이 되고 나무가 된다. 새싹 위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있다. 작은 산새가 지나가고 다람쥐가 새싹 옆에서 도토리를 심고 있다. 불룩한 볼에 도토리가 몇 개나 들어 갔을까 장면에서는 살짝 웃었을 것이다.  나무 그늘 밑에 이끼가 자라고 이끼가 품어내는 질소가 땅을 적시고 또 그 기운을 받아 나무는 한껏 기지개를 펴며 솟아 오른다.

 

가을이 되어 쏟아지는 낙엽에도 몸살을 알았을테고 그 위로 흰 눈이 쌓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고 햇살이 쏟아지고 비가 떨어지고 바람이 스쳐지나는 그런 시간이 수 없이 지나 큰 나무가 된다. 

 

그리고 공간 한 점 남기지 않고 흰 눈 내리던 날 작은 나뭇가지 위에 소복히 쌓인 눈을 못 이겨 나뭇가지가 투둑~~~~떨어진다.

 

겨울나기를 하려는 등이 굽은 사람에게 쥐어져 불이 짚여진다. 그 불길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비춰지는 시간은 공간을 꿰 뚫는다. 불이 피워지는 동안 빗방울이 바람이 햇살이 다람쥐의 발걸음 소리가 나무가 자라 오르는 공간을 채우는 꿈틀거림이함께 피워 오른다.

 

잠시 추위를 피한 시인은 그 사이에 몸을 웅크려 잠이 들고 나무는 조용히 하얗게 사그라든다. 길 잃은 산토끼가 나그네의 발에 숨어들고 숲 속의 작은 오두막엔 눈이 조심스레 내린다. 하이쿠 한 조각 물고 있는 동안 내게도 하얀 눈이 내리고 눈을 털지도 못하고 누운 토끼가 내 발에 작고 하얀 발을 맞대고 있다. 

 

모기에 물리다니, 아 나는 아직도 살아 있구나 한다. 늘 그렇게 나는 혹은 너는 존재보다 생존을 더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