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1 서호주 무계획 관측여행

 

 

#1. 바람 좀 쐬고 올께요. 서호주에서

 

#2. 별이불이 제일 따뜻해

 

#3. 피너클스와 인도양, 쪽박과 대박 사이

 

#4. 자연의 창으로 우주를 바라보다

 

#5. 별 찾는 수도승

 

 

 

2015년 1월 4일, Nightwid 조강욱

 

 

 

 

 

☆☆☆☆☆☆☆☆☆☆☆☆☆  Day 3 (24 Nov. 2014)  ☆☆☆☆☆☆☆☆☆☆☆☆☆

 

 

 

어젯밤, 어둠을 헤치고 달려왔던 그 비포장 길을 아침 햇살을 받으며 다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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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소리 들리는 해변에 뜬금없이 하얀 모래언덕은 또 뭐냐?

 

누가 일부러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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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비포장 길에 보이는 저 물결 무늬는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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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 때문에 그 엄청난 진동과 소음이 난단 말이지..

 

 

비포장 끝. 9시간 전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던 그 자리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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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Brookton에서 퍼스,

 

퍼스에서 피너클스, 다시 여기 인도양 앞바다까지 긴 하루를 생각해 본다

 

 

내 인생 최초의 무계획 여행을 하며 느끼는 것은, 완벽한 계획이란 애초부터 없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면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이자.

 

인생은 내가 계획한 대로 한 치 오차 없이 움직이지 않을 테니 말이야.

 

더 이상 필요 이상의 플랜맨은 나를 위해 관둬야겠다

 

 

 

Green Head 마을 어귀, 여기에는 물개가 많은 모양이다. 나는 별 밖에 못 봤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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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칼바리 국립공원까지 거의 400km를 이동해야 한다

 

운전에 소질도 없고 운전석에 앉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출발 전부터 맘 굳게 먹고 있어야 했다

 

우선 제랄튼(Geraldton)까지 가서 쉬었다 가자 (16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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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고속도로 졸음 쉼터에 잠시 차를 댔는데 그 앞 초원엔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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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생명체다~~

 

아침부터 사람은 고사하고 지나다니는 차도 몇 대 보지 못했더니

 

살아 있는 소만 봐도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그러나 그들은 인사도 안 하고 전원 고개 처박고 풀만 뜯고 있음

 

너네 그러다 거북목 된다고 (소 주제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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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셀카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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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체인 아니 소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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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중앙선에 앉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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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길. 그 길 위에 잠시 주저앉아 있어도 별 문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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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한참을 달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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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중간 기착지, 제랄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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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허허벌판에 웬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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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3만명이나 되는 나름 서호주 제 2의 항구 도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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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센터에서 사람 구경도 실컷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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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킹과 던킨도너츠의 짝퉁 콜라보레이션인 듯한 '도넛킹'에서

 

아메리카노 곱배기 한 잔 사서 길을 떠나려는데

 

카톡 메시지들이 도착해 있다

 

어제 오전에 퍼스에서 출발한 이후 처음 만나는 전화 터지는 곳이라

 

그간 수신 대기중의 메시지들이 도착했나보다

 

우리 원장님 말고도 필마님 하루살이님 등 여러 분들께 밀린 메시지를 화답하고

 

로밍폰 터지는 김에 칼바리 국립공원에서 할 것들을 좀 더 검색해보니

 

칼바리 가기 전에 Port Gregory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 세계에서 8개 뿐이라는 핑크색 호수가 있단다

 

시간도 많은데 핑크 호수 한 번 보고 가자

 

 

제랄튼을 넘어 더 깊은 아웃백으로 들어갈수록 마주하는 차는 줄어들었지만

 

거대한 로드 트레인들은 점점 더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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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의 기차들, 처음에는 신기했으나 그 개체수가 많아질수록

 

거대한 덩치가 위협적이기도 하고 너무 길어서 추월하기도 어려워서 점점 보기 싫어짐

 

 

길가 밀밭의 규모는 더욱 거대해진다

 

이 많은 것을 대체 누가 언제 파종하고 수확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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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쟁이들.. 이게 다 빵이 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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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밀밭들을 지나면 윈도우 XP 바탕화면이 조금씩 모습을 바꿔가며 끝도 없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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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이랑 내컴퓨터 아이콘 만들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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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전에 단종되어 이젠 회사에서 보기 힘들어진 윈도우 XP 화면에 질려갈 즈음

 

차창 밖으로 핑크색이 잔뜩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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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되었던 풍경이었으나 실제로 보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이다

 

(익숙한 그림인 클림트의 키스를 빈의 미술관에서 원작으로 볼 때의 감동과 비슷한)

 

이건 사진에서 보던 핫핑크는 아니고 베이비핑크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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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쿠웨이트박 풍으로 증명사진도 한 장 남기고

(바람이 너무 세서 헤어스타일이 저렇게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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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내 어릴 적에 사우디와 쿠웨이트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신

 

우리 아버지의 빛 바랜 중동 사진에서 보았던 포즈와 선글라스, 헤어스타일과

 

너무나 비슷하다.. (나이도 내 지금 나이쯤)

 

예별이도 30년 후에 혹시? ^^;

 

 

사진으로는 고요해 보이는 호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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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차 문을 열기 힘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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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표정은 호수가 멋있어서 놀란 것이 아니라 7kg에 이르는 맨프로토 055 삼각대가

 카메라를 얹은 채로 바람에 엎어질까 깜짝 놀라는 것임)

 

 

토요타 RAV4 광고사진 한 장. 호주 아웃백에선 그냥 대충 찍어도 웬만하면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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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여기 핑크 호수, Hutt Lagoon은 저 멀리 호수 한 가운데 보이는

 

화학 공장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여성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변변한 전망대 하나 없다)

 

조류(algae) 생산이 어떻고 베타 카로틴이 생성되어~~ #$^#%@#&&^&(()$ 하는  

 

핑크 호수가 생성되는 원리에 대한 설명을 한글과 영어로 찾아 보았으나

 

무슨 얘기인지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다

 

 

다시 칼바리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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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다. 그냥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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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끝없는 울타리를 보니 여기도 누구 땅인 것은 맞나 본데

 

그 땅 주인이 자기 땅을 모두 걸어 보기는 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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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제 칼바리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니. 대단한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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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광고판을 가까이서 찍으려고 차 문을 여는 순간 파리들이 입 속으로 돌진.. 에퉤퉤

 

파리부터 나를 사랑하게 되었나 보다

 

그래도 저 멀리 인도양의 자태는 사랑해 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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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리에 거의 도착했다

 

서쪽으로는 해변가 백사장의 그림같은 자태가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호주에서 본 가장 멋진 집들이 지나간다 (사진에선 잘 안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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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지에 왠 쓸데 없는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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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리 시내의 관광 안내소에 차를 대고 가장 중요한 노숙 준비로 화장실을 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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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주에서 본 가장 깨끗한 화장실이다. 너무 깨끗해서 그런지 파리도 한 마리 없다

 

 

칼바리에는 화장실 뿐 아니라 집들도 상점도 앞바다 뒷산 풍경도 하나같이 예술이다

 

디자인서울 벤치마킹해서 디자인칼바리 운동이라도 한 거니..

 

여튼, 갈 길을 확인하고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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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입구 표지판이 너무 소박하게 붙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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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km를 더 지나쳐갔다가 돌아왔다

 

 

씩씩거리며 다시 제 길로 찾아와서 칼바리 국립공원 매표소에 도착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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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사람도 없고 바리케이트도 없고 무인 매표소에서 알아서 표 끊고 들어가는 것이다

 

뭐 그냥 쓱 들어가도 아무도 모르겠지만.. 이거 보려고 하루종일 달려 왔는데

 

차 한대당 $12의 입장료를 굳이 떼어먹을 이유도 없다

 

 

12달러 결제를 하려고 신용카드를 넣으니 결제 오류.

 

이게 뭔가 하고 다시 잘 살펴보니 이 기계는 비자랑 마스터 카드, 또는 동전만 받는단다

 

대영제국의 계열사(?)라 미국과는 친하지 않은 것인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만 있던 나는 동전이 있나 찾아 보았으나

 

현금을 쓰질 않았는데 동전이 있을리 만무.

 

아 이거 어쩌나 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다음 차가 들어온다

 

한국 같으면 빨리 하라고 빵빵대고 난리가 날 텐데

 

인형같은 애기들을 뒤에 태운 아저씨가 내려서 입장권 사려고 내 뒤에 줄을 선다

 

이름 모를 호주 아저씨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내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어 주셨다. 휴~

 

 

매표소 앞의 경고문. 무섭기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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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했던 자연의 창(Nature's Window)에 가려면 비포장 12km를 달려야 한다

 

멀쩡한 포장 도로가 이어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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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왜 반대쪽 차선에 흙이 많지.. 하는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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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비포장 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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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매표소는 표를 사던 말던 무인 운영에,

 

티켓팅을 하고서도 비포장을 십몇 킬로를 알아서 달려가야 관광지에 도착하는 대륙의 스케일.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시스템이다

 

(오이랑 막걸리 파는 노점상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야)

 

 

그나마 여기 비포장은 물결 무늬도 없고 양반이다

 

이 정도 비포장 길이면 100km도 달릴 수 있을 듯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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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목적지는 The Loop (The Loop 초입에 자연의 창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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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아까 무인 매표소에 있던 지도이다. 지금 나는 The Loop와 Z Band 사이 갈림길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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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도 옆에 있던 경고문. 무서워서 국립공원 들어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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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을 돌자 마자 저 물결무늬, 왜 안 보이나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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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먼지 폴폴 날리다 보니 저 멀리에 '거대한' 무언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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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길을 잘못 들어서 Look out이란 협곡 전망대로 먼저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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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김에 함 봐 주자.. 라고 가볍게 얘기하기엔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이 너무나 장엄하고 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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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황량한 돌덩이도 죽은 나무도 그 자체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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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무도 그냥 나무가 아닌 것 같은 포스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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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대로 길을 찾아서 드디어 The Loop 주차장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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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목적지에서, 400km 완주 기념으로 한 장.

 

어짜피 까만 얼굴인데 더 탈까봐 썬크림을 바르고 또 발라서 백인종이 되어버렸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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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핑크 호수보다도 바람이 더 세다

 

차 문을 열면 다시 닫기가 힘들 정도.

 

 

뭐가 있나 내려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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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포장 산책로를 내려가니 안내 문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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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유명한 Nature's Window가 70m 전방이면.. 너무 가까이 있는 거 아냐?

 

3박 4일은 정글을 넘고 사막을 건너야 나올 것 같이 생긴 앤데 말이야..

 

 

'자연의 창에 온 걸 환영해'라며 춤을 추고 있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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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너클스 사막과 비슷한 방법으로 이정표를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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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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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거 뭐야.. 무너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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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연의 창이 며칠 전에 무너진 걸까???

 

이거 보러 400km를 달려왔는데...

 

 

몇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나의 의혹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뒷모습만 봐도. 이건 내가 보고 싶던 바로 그 애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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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계신 분은 우리 자연의 창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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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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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진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뒤 배경으로 보이는 한없이 투명한 하늘색이 오늘 밤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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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기 위해 먼 길을 달려 온 수고가 전혀 아깝지 않다

 

피너클스의 비현실적인 풍경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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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라운 입자를 가진, 자작나무 합판같은 돌들도 만져 보고

 

아무도 없을 때 셀카도 몇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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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못 본 사람..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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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창 사진 좀 맘껏 찍어 보려는데 이탈리아 학생(?)이 DSLR 메고 오더니

 

그림같은 풍경에 죽치고 앉아서 마냥 사진을 찍는다

 

 

야 쫌.... (너 몇 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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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생은 한참을 거기 앉아서 사진을 찍다가, 서성이며 레이저 공격을 하는 내 눈빛이 따가웠던지

 

너 한 장 찍어 줄까? 나에게 말을 건다

 

예의 바른 학생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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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의 1977년 부산 태종대 신혼여행 사진 표절 포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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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창으로 바라보는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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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한 분이 가뿐 숨을 몰아쉬며 자연의 창 쪽으로 걸어오신다.

 

"힘드시죠? 이것 좀 보세요. Really really amazing이에요"

 

마치 내가 만든 작품인 듯 손을 쨘 하고 펼치고

 

그 독일 할머니에게 뿌듯하게 떠들며 자연의 창을 보여 드린다

 

 

쟤 뭐야 하고 쳐다보던 할머니도 내 손길을 따라 자연의 창 앞판을 보시고는

 

금세 만족한 웃음을 지으신다

 

독일 부부(아래 사진 빨간티 할아버지)에 이어 동남아계로 보이는 가족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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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창이 갑자기 북적거린다

 

이 타이밍에 자랑질용 증명 사진이 필요한 것은 전세계 공통인 듯.

 

한참동안 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 찍고 찍어주기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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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필요 없이 눈빛으로 서로에게 카메라를 건네 받고 셔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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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창 꼭대기에 붙어 있는 사자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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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거북 바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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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창 바로 옆,

 

아래 사진 상단의 저 능선 따라서 10시간 짜리 트래킹 코스를 도는 것이 이 곳의 메인 루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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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자연의 창에서 증명사진 찍기에 바쁘고,

 

그 협곡 순환 트래킹 코스(The Loop)에 지나 다니는 사람은 결국 만나지 못했다

 

 

자연의 창문 틀. 샤시가 오래 되어 좀 낡긴 했지만 뭐 그래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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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그냥 시원한 낭떠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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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덥다.. 파리는 또 어찌 그리 달라붙는지.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니 차에서 쉬다 다시 오자

 

 

초속 10m의 강풍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주차장.

 

차 문을 닫고 있으면 너무 덥고

 

열고 있으면 문짝이 떨어져 나갈 것 같고

 

그래 창문만 열면 되지

 

창문을 여는 순간, 호주 애기 아빠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획득한 입장권이

 

강풍에 떠밀려서 창 밖으로 휙 날아간다

 

입장권은 1일권으로, 차 앞유리에 보이도록 놔둬야 한다

 

혹시라도 Park Ranger가 돌아다니다가 무단 출입 차량으로 걸리면 골치 아플텐데..

 

바람에 날리는 입장권을 쫓아서 허겁지겁 달려가는데

 

바람에 펄럭이며 광속으로 날아가던 입장권이 절벽 바로 앞 나뭇가지에 턱 걸렸다

 

휴.

 

영화에서나 보던 행운이 나에게..

 

지옥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입장권을 스카치 테잎으로 차 앞유리에 아예 붙여 버렸다

 

(그때 붙인 테잎이 아직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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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유리가 날아가기 전에는 무사하겠지 ;

 

 

강렬하던 태양이 드디어 서산으로 넘어가려 한다

 

이제 자연의 창에서 노숙하러 출발할 시간.

 

혹시라도 ranger한테 걸릴 수 있으니 노숙 티를 내면 안 된다

 

삼각대도 텐트도 의자도 생략하고 가방에 쌍안경과 옷가지들만 챙겨서

 

6시 35분 자연의 창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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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협곡에 빠르게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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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창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는 이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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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길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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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47분, 석양에 물든 자연의 창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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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방문객은 1시간 전에 이미 이 곳 주차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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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자연의 창에는 나와 파리들 뿐.

 

몸에 파리가 열 마리 넘게 붙어 있다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 영상에 보면

 

얼굴에 붙어 있는 파리를 왜 쫓아내지 않는지 답답했는데

 

여기 와 보니 파리와 친해져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

 

뭐가 어찌 되었던, 여기까지 왔으면 할 일을 해야지.

 

오늘도 미의 여신 비너스를 맞이하러 서쪽 산등성이를 향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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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이제 슬슬 불이 붙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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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건 밤이건 변함 없는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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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들은 야행성인가? 피너클스에서도, 여기서도 해가 진 뒤에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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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찾아보면 '그 녀석' 들이 있음)

 

 

조용히 불타는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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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비너스 벨트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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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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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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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나니 바람이 잦아들었다 (그러나 파리는 잦아들지 않는다)

 

보고 싶던 월령 2일의 달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얇은 달이 출현하는 순간도 보고 싶어서

 

동쪽(달)으로 서쪽(비너스벨트)으로 분주하게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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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 벨트가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확대해서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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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동안 한껏 달궈진 돌판 위에 앉아 있으니 전혀 한기를 느낄 수가 없다

 

출국 직전 인준 형님이 노숙으로 자연의 창을 추천해 준 것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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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군데 다녀 보진 않았지만 서호주에서의 노숙엔 자연의 창이 단연 최고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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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10분, 서쪽 하늘에서 비너스의 절정이 지나고 나니

 

동쪽 하늘에서 달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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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렇게 얇은 달은 처음 봐.

 

 

어제 피너클스 사막에서 Day 1 달을 보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려면 어때.

 

 

7시 21분, 달 주위의 하늘이 보랏빛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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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능력으로는 사진으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색이라

 

폰을 꺼내서 터치펜으로 눈으로 보이는 색을 그대로 표현해 본다

 

[ Day 2 달의 등장, 자연의 창에서 갤럭시노트2에 터치펜 (조강욱) ] 

Day2_1.png

 

 

자연의 창 넓은 돌판에 드러누우니 천정에 별이 하나 보인다. 아마도 포말하우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나 보던 그 곳에 혼자 누워서 박명을 기다리고 있다

 

이게 진짜 꿈은 아니겠지

 

며칠간 비현실적인 일들을 너무 많이 겪어서 이제 좀 무던해질 만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달은 시시각각으로 색깔와 지구조를 바꿔가고 있다

 

[ Day 2 지구조, 자연의 창에서 갤럭시노트2에 터치펜 (조강욱) ]  

Day2_2.png

 

(7시 51분과 8시 3분, 10분 단위로 두 장을 그렸는데  두 번째 그림은 App 오류로 실종. 그 지구조 색이 정말 예뻤는데...)

 

그 경이로운 색의 향연을 넋 놓고 보고 있으니 저녁 8시쯤, 어느새 박명이 내렸다

 

옆에 놓은 내 가방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겨우 Day 2 달인데 그 빛은 너무나 밝다

 

박명이 지났는데도 별들이 숨을 죽인다

 

8시 17분. 달 본체에 이어 지구조까지 일몰 완료.

 

그에 맞추어 파리들도 자연의 창에서 전원 퇴장하고

 

여기엔 나와 별들 뿐!

 

 

최고로 어두운 곳에 가면 산 능선을 분간할 수 없다는 말은 비논리적인 얘기인가보다

 

세계 각지의 오지에 여기만큼 어두운 곳은 많겠지만

 

여기보다 '더' 어두운 곳은 세상에 별로 없을텐데

 

박명이 내린 지금, 사방의 능선과 하늘의 경계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궁수 쪽에 뿌옇게 황도광이 올라오긴 하는데 그리 선명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밤하늘 자체가 그리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일까?

 

결국 의문을 풀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얼마 전 인준 형님과 통화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해답은 태양의 고도와 관계 있는 것인데..

 

북반구의 동지는 남반구에선 하지이다.

 

쉽게 얘기하면 동지 무렵엔 호주에서 태양이 높이 뜨고 낮게 지는 것이다

 

 

11/24일 기준으로 태양의 고도가

 

최대로 내려가 봤자 겨우 여기쯤 (지평선 아래 고도 -40도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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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까지 왔는데 좀 더 내려가 주면 안 되겠니?

 

※ 지평선 밑으로 태양의 최저 고도는 12월 -33도, 7월 -78도까지 내려간다

    진정으로 까만 하늘을 만나려면 우리나라 기준으로 여름에 원정을 가야 한다는 결론.

 

 

학교 다닐 때 하던 놀이, 페가수스 사각형 안의 별 개수를 세어 보았다

 

페가수스.jpg  

 

 

하나 둘 셋.. 13개까지 찾았다

 

집에 와서 성도를 찾아보니 13개면 딱 6.0등급 까지다

 

태양 고도의 문제인지 너무 성의 없이 찾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거꾸로 뒤집혀 지고 있는 궁수 주전자 밑바닥을 쌍안경으로 훑어보니

 

메시에급 대상들이 무수히 지나간다

 

뭐가 뭔지 뭐가 중요해.

 

 

8시 반, 자연의 창문 너머로 뒤집힌 오리온이 보인다.

 

이건 필시 꿈이 아닐거야....

 

자연의 창 위로는 마젤란이 이미 높이 솟아 있다

 

(Sky Safari 캡쳐 후 자연의 창 사진 합성)

자연의창_오리온_편집.jpg  

 

다시 동쪽을 보니 뿌연 황도광이 궁수를 지나 염소까지 뻗어 간다

 

그래 인정. 내가 인정해 줄께. 별 좀 보게 빨리 들어가면 안 되겠니?

 

 

남쪽 왕관자리(CrA)는 남쪽 비니자리로 불러야겠다

 

남쪽비니.jpg   

 

비니.jpg  (비니는 30대 이상은 잘 쓰지 않는 모자 종류임)

 

 

망원경 자리는 포터블 망원경인가보다

 

포터블.jpg

 

 

흠.. 맘에 안 들어. 대체 누가 만들었나 찾아보니 망원경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 중에 하나인 프랑스 천문학자 라카유가

 

175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원정에서 만든 13개 별자리 중 하나다.

 

39세에 만들었으니 내 또래에 우주에 흔적을 남겼구나.

 

라카유도 메시에 시절 사람이니 망경은 그렇게 소구경 굴절일 수 밖에 없었겠지만..

 

내가 보기엔 라카유가 별자리들을 너무 대충대충 만든 것 같다

 

내가 같이 갔었으면 훨씬 더 멋진 애들을 만들었을텐데 말이야.

 

돕소니안 자리 성도 자리 암등 자리 스케치북 자리 원장님 자리 등..

 

뭐 사실 나도 우주에 흔적을 남겨 보고 싶어서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자연의 창에 앉아서 마시면 맛이 기가 막힐 것 같아서

 

맥주도 세 캔이나 가방에 담아 왔는데,

 

이 멋진 밤에 혼자 있는데도 이상하게 술 생각은 잘 나지 않는다

 

(결국 밤새 반 캔으로 끝)

 

 

 

황도광은 집에 가래도 쉽게 가지 않는다

 

궁수를 지나 염소로 향하던 황도광은 9시가 넘으니 물병까지 이어진다

 

아름답진 않아도 신기하다.

 

 

 

낮에 운전을 오래 했더니 오늘은 일찍부터 피곤이 몰려 온다

 

이리 저리 하늘을 휘저어 보고 있다가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어느 틈에 자연의 창틀 넓고 따뜻한 돌판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

 

자정을 지나 12시 10분.

 

추위에 잠에서 깼다

 

돌판 삼겹살의 그 돌판처럼 후끈하던 창틀은 이미 차갑게 식었다

 

아마 그 찬 기운이 내 체온도 같이 빼앗아 갔나 보다

 

 

하늘에는 오리온이 높이.. 그런데 별이 이렇게 많을 수도 있나?

 

비정상오리온.jpg

 

 

마치 예전 TV에서 방송이 끝나고 지직거리는 화면 나오는 것과 비슷한,

 

noise.gif

 

 

무서울 정도로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 이건 뭐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니 하늘은 다시 정상으로.. 아까는 뭐였을까?

 

정상오리온.jpg

 

 

쌍안경을 꺼내서 오늘도 LMC로 향한다

 

어제는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먹고 있는 멧돼지였는데

 

오늘은 고개를 쳐들고 있는 용 한 마리가 보인다

 

lmc.jpg

 

뭐가 정답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

 

 

SMC에선 침낭에 들어간 사람이 보인다

 

smc.jpg

(출처 : http://www.mreclipse.com/Astrophoto/SSSP/SS97/97SS30w.JPG)

 

 

저 사람도 나처럼 추운가보다....

  

뭐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체력 고갈로 너무 춥다.

 

추워서 주변을 뛰어다니려니 계속 돌부리에 걸려서 중심을 잡기 어렵다

 

여기 자연의 창 주변은 모두 낭떠러지인데..

 

안되겠다.

 

12시 40분, 퍼스에서 사 온 작은 랜턴에 의지해서

 

20분여를 더듬더듬 걸어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은 저 아래 협곡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2시까지만 좀 자야지....

 

 

 

........

 

눈을 떠 보니 오늘도 여전히 3시.

 

왜 꼭 3시에만 눈을 뜨는 걸까? 하다가 다시 비몽사몽....

 

운전석에서 다시 한참을 졸다가 새벽 3시 20분,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내가 언제 또 여길 오겠어.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마차부부터 외뿔소 - 오리온 - 큰개 - 고물 - Vela - Carina에 이어 남십자까지,

 

겨울 은하수가 이미 완성되었다

 

겨울은하수.jpg

 

 

내가 언제 또 다시 보겠어.

 

두 눈알 안에 (주로 왼쪽 눈에) 그 별빛들을 가득 넣고 넣고 또 쑤셔 넣는다

  

 

M46 & 47

 

2010년 이화영님의 80mm 굴절로 얻어 보았을 때는

 

이중성단보다 더 충실한 이중성단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쌍안경으로 보는 46 / 47은 꼭 미녀와 야수를 생각나게 한다

 

m46m47.jpg

(출처 : http://www.astroarts.co.jp/alacarte/messier/images/numajiri/m46m47.jpg)

 

  

3시 45분, 호주에서의 마지막 밤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의자에 앉아 70mm 쌍안경을 견착하고 남천의 보석들을 마지막으로 모두 훑어본다

 

삼각대에 쌍안경을 연결하려다가 그 세팅 시간도 아까워서 그냥 보기로 한다

 

차에서 세월아 네월아 잘 때는 언제고..

 

 

LMC는 식사 중인 멧돼지에서 용의 비행으로, 이제는 날개 달린 천사로 3단 변신 중이다

 

lmc.jpg

 

 

석탄자루는 보면 볼 수록 매력 덩어리.

 

밤하늘보다 더 까맣다. 아 너는 참.. 북쪽으로 둘러메고 가고 싶다

 

coal_sack2.jpg

(출처 : http://www.capella-observatory.com/images/DiffuseNebula/Barnard92.jpg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내어 폰으로 김광석 폴더의 노래들을 랜덤 재생으로 틀었다

 

첫 곡은 '바람과 나'

 

하늘위로 구름 따라 무목 여행하는 그대여 인생은 나.. 인생은 나

 

칼바리까지 와서 이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을 김광석 아저씨는 알고 있을까

 

무목(無目) 여행하는 내 인생.

 

 

곧 날이 밝을텐데 3532와 에타카리나의 미모는 변함이 없다

 

밤하늘에 얘네들보다 더 강력한 콤보가 있을까?

 

81 82도 안되겠고 46 47도 6939 6946도 5298 5302도 35 2158도...

 

그 중에 869 884 정도가 대적해 볼 수 있을 듯.

 

 

 

NGC 3114

 

바로 옆에 3114번 성단이 보여서 쌍안경으로 잡아 보았다

 

원래 이렇게 밝았나? 3532 못지 않다

 

3114.jpg

(출처 : http://www.surastronomico.com/galeria/Sergio_Eguivar/SE_NGC3114_1.jpg)

 

꼭 쭈꾸미 다리같이 생겼다

 

쭈꾸미.jpg  

 

 

4시가 넘으니 은하수가 조금씩 옅어진다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에리다누스도 눈 안에 머리에 가슴에 꾹꾹 눌러 담는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불행아'가 흘러나온다

 

 

깊고 맑고 파란 무언가를 찾아 떠돌이 품팔이 마냥

친구 하나 찾아와 주지 않는 이곳에 별을 보며 울먹이네

이거리 저거리 헤메이다 잠자리는 어느 곳일까

지팡이 짚고 절룩거려도 어디엔들 이끌리리까

(중략)

홀로 가슴 태우다 흙속으로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아~~아~~ 하고 혼자 신나서 흥얼거리다 보니

 

카노푸스가 동쪽 산 위로 이미 높이 올라왔다

 

5139 찾아보자.

 

 

NGC 5139

 

全하늘 No.1 구상성단 5139는 의외로 찾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그 동안 수 차례 망원경으로 5139를 관측했지만 내 손으로 찾아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10배율 만으로도 압도적인 그 자태는..

 

5139_이건호.jpg

(2010년 호주 원정, 이건호 사진)

 

 

5139야.. 널 어찌하면 좋으니!

 

나는 2012년의 두 번째 호주 원정 이후

 

全하늘 No.2 구상성단인 NGC 104에게 매료되어 있었는데

 

5139의 거대하고 풍만한 자태는

 

중심부에 집중되어 있는 104보다 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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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호주 원정, 조강욱 그림)

 

 

한 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스피커에선 '그 날이 오면'에 이어 '그 날들'이 흘러 나온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아니 랜덤 재생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새벽 4시 20분, 이젠 밝음이 어둠을 내몰고 있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 이어 '혼자 남은 밤'

 

어둠이 짙은 저녁 하늘 별빛 내 창에 부숴지고

외로운 밤을 홀로 지샌 내 모습 하얀 별 나를 비춰주네

 

 

아니 분명히 랜덤 재생인데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착착 맞는다

 

분명히.. 김광석 아저씨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박명_KKS.JPG

 

 

4시 34분, 박명이 끝났다.

 

집에 가자.

 

 

짐을 정리하고 국립공원 주차장 한 켠에서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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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쯤 뜰 예정인 수성을 한 번 봐 주고 가야겠다

 

(5시 10분 수성 고도 3도)

수성.jpg

 

 

96년에 지하철 종점(대화역)으로 관측 갔다가 얼떨결에 한 번 본 뒤로는

 

이상하게 인연이 닫질 않는다

  

 

수성을 기다리며 깨알 같은 자사제품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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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들 고생 많았다. (레벨박스 블루투스 스피커, NX200 미러리스 카메라, 갤노트2)

 

 

5시 20분이 되도록 수성은 뜨지 않는다

 

대신 하늘이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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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묘한 색을 폰그림으로 그렸는데 역시 이유없이 파일이 실종.. 스케치북 App 나빠요)

 

 

차 한 대가 주차장에 들어오더니

 

어떤 백인 아저씨가 자연의 창 방향으로 황급히 뛰어 내려간다

 

아.. 자연의 창에서의 일출이 멋지다 했지!

 

나도 가 볼까?

 

오늘 퍼스에서 비행기 출발 시간이 17시 30분이니

 

14시 30분에는 공항 도착해서 렌트카 반납하고 수속 해야 하고

 

여유있게 14시 도착하려면 몇 시에 출발해야 하나?

 

쉬는 시간 포함해서 9시간 정도 운전을 해야 하니..

 

이미 새벽 5시에 출발했어야 빠듯하게 맞출 수 있는 시간.

 

 

일출 보러 갔다 오려면 시간이...

 

너무 욕심내지 말자

 

넌 일몰을 봤잖아.

 

 

흔한 아침 Venus B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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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원래 매일 아침 보이는 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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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수성이 뜰 때가 된 것 같은데 소식이 없다

 

그 대신 수풀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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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급해서, 메시에 마라톤 새벽에 30번 찾듯이

 

쌍안경으로 무턱대고 태양 주위를 바삐 휘저어 보지만

 

수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거 비싸네 참..

 

뭐 어쨌든, 자연의 창 말고 근처 주차장에서도 일출은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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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8분, 마지막 관측을 마치고 칼바리를 출발하여 퍼스로 향했다

 

어떤 위해와 협박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차 안에 무임 승차한 파리 50마리와 함께!

 

 

 

  

 

☆☆☆☆☆☆☆☆☆☆☆☆☆☆☆  4편 끝  ☆☆☆☆☆☆☆☆☆☆☆☆☆☆☆
 

 

 

 

 

#1. 바람 좀 쐬고 올께요. 서호주에서

 

#2. 별이불이 제일 따뜻해

 

#3. 피너클스와 인도양, 쪽박과 대박 사이

 

#4. 자연의 창으로 우주를 바라보다

 

#5. 별 찾는 수도승

 

 

 

 

 

                    Nightwid 無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