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뭐 길래

      

세상에는 별별 이름이 많다. 그 중에 호적상의 이름은 안타깝게도 본인의 의사와는 별개로 지어지는 게 보통이다. 애초에 지어준 이름이 맘에 들면 좋으련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아무튼 이름 때문에 울고 웃는 인생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출가해서 중이 되니까 이름이 하나 더 생겼다. 법념法念이라는 법명이다. 노스님들이 법념이라는 발음을 잘 하지 못해 범냄이, 법님이, 범년이등으로 멋대로 불렀다. 비슷한 법명이 여럿이면 누구를 부르는 건지 헷갈려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어감이 딱딱해 향곡큰스님에게 바꿔달라고 청했다가 혼만 났다.

허 참, 기가 매키서. 봐라 법념아! 다 뜻이 이싸서 지은 기라. 바꾸마 성불한다 카드나.”

호된 한마디에 주눅이 들어 머리가 자라목이 되어 뒷걸음쳐 나왔다. 좀 더 부드럽고 쉽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말씀드렸다가 된통 야단만 맞았다.

지금은 가고 안계시지만 법명을 지어준 향곡香谷큰스님께 엎드려 감사드리고 싶다. 처음엔 법명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아 뜻은 재처 두고 바꾸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은 깊고 오묘한 뜻이 마음에 들어 법명대로 살려고 애를 쓴다. 법명을 풀이하면 법 법자法字 생각 념자念字이고 거꾸로 하면 염법念法이다.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실천하라는 깊은 뜻이 있기에 지금은 정말로 마음에 든다. 덧붙여서 법이란 글자는 삼수변三水邊에 갈 거라 물 흐르듯이 쉼 없이 부처가 되는 길을 가라는 뜻도 있다. 이제 철이 들고 보니 좀 부르기 어려운 게 무에 그리 대수라고 바꾸려고 한 어리석은 행동이 너무나도 부끄럽다.

절에서는 법명으로만 불린다. 가끔 호적이름인 박영주라고 부르면 내 이름이 아닌 것 같다. 운전면허를 따러 학원을 다닐 때이다. 실기시험을 치르고 합격여부를 기다릴 때였다. 합격자 명단을 들고 나와 박영주라고 몇 번을 외쳐도 멍하니 서있었다. 시험관이 아무래도 이상타 싶어 곁에 다가와 스님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그제야 알아차리고 대답한 일이 있다.

예전엔 여자 애들의 이름 뒤에 보통 자자子字가 붙었다. 누가 자야라고 부르면 열 명 중에 아홉 명이 뒤돌아볼 정도로 많았다. 다분히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남긴 영향이리라. 초등학교 때 한반 친구에 배신자裴信子라고 있었다. 또래의 머슴애들이 이름자와 발음이 같은 배신자背信者라고 놀리며 괴롭혔다. 친구는 집에 가서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다며 펑펑 울었지만 부모들이 모른척해서 더더욱 슬펐다고 말했다. 지금 세상에는 이름 바꾸는 것이 아주 쉽지만 예전에는 재판까지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관청사다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높이 올라가야 하는 두려운 존재로 생각할 때라 감히 엄두도 못 낼 때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이라 딸아이 이름 따위로 재판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이름 때문에 떠들썩한 사건이 일본에서 있었다. 갓 태어난 아들에게 악마惡魔라고 지어 아기 아버지가 신고하러 간데서 부터 문제가 일어났다. 놀란 구청직원이 왜 그런 이름을 지었느냐는 질문에 특별하니까 누구나 기억을 잘 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난처한 직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은 출생신고를 해주었다. 아기의 부모는 동네서 스낵바를 운영했으나 악마를 낳은 집이라는 소문이 붙어 결국은 문을 닫고 말았다.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취재기자들도 들락거리고 사람들도 흥미를 보였지만 자식에게 악마라는 이름을 부쳐준 사람의 집이라 정나미가 떨어졌던 게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부처가 된다고 믿는다. 그런 연유로 임종을 당해 새로이 이름을 받는 풍습이 있다. 사찰에 가서 고명한 스님들께 개명改名해달라고 부탁을 하면 돈의 액수에 따라 좋은 뜻을 가진 이름으로 길거나 짧게 내려준다. 그러나 돈이 없는 천민계급인 부락민部落民이 가면 하잘 것 없는 이름을 지어준다. 예를 들면 동물에게나 부쳐주는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지듯 주었다. 글도 모르니 감지덕지로 받아 묘비명에 새긴 것이 지금도 남아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그것도 종교인이 그럴 수 있느냐는 등 한동안 시끌시끌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일이 없는 줄 알고 일본사람을 대놓고 비방하였다. 그러나 문헌을 보니 우리나라에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 일이 있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의 한 단면이다. 조선시대는 양반계급들이 노비奴婢를 많이 거느리고 살았다. 인구 중에 오분의 일이 노비였다니 입이 딱 벌어진다. 부리는 종이 많다보니 부르기 쉬운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등으로 부르다가 나중에는 개똥이, 소똥이, 말똥이도 등장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종들의 값이 가축보다 쌌다. 소나 말만큼 일을 추슬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가축새끼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셈이다. 그도 모자라 가축 똥을 이름으로 불렀으니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다는 증거다. 요즘 세상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건만.

이전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름의 종류도 다양했다. 열거해보면 아명兒名, 관명冠名, , , 아호雅號, 시호諡號 등으로, 아명, 관명, , , 아호 등은 웃어른이나 본인이 짓고, 시호는 임금이 내렸다. 아호를 이백 여개나 사용한 멋진 옛사람이 있다. 추사 김정희다. 서화에 능한 이어서 다양한 아호를 본인이 지어 작품에 따라 멋스럽게 사용했던 것이다.

요즘 들어 어찌된 영문인지 유명한 작명가의 집 앞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름이 좋아야 팔자가 늘어진다고 거금을 들여 받아온다. 어리석게도 이름만 바꾸면 팔자가 핀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상이다. 이름이 간판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간판이 좋아도 속이 부실하면 빈 깡통에 불과하다. 좋은 이름보다 나 자신을 가꾸는 일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이름 따위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스럽다. 남들이 부르면 대답할 이름만 있으면 족하지 않을까. 김춘수 시인은 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읊었다. 이름이란 이런 것이거늘.

이름은 없어서도 안 되는 내 분신과 같아 소중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름에 매달려 살 순 없지 않은가. 이름이 뭐 길래 자기 인생을 거는 걸까. 이름자체는 실체가 없는 것을. 법념아 부르면 라고 답한다. 이것을 이름이라고 부르지 뭐 별다른 게 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