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세계

   마음이 어지러운 날, 쉬이 잠들지 못했으면서 새벽에 눈을 떴다. 
   포근해야 할 솜이불이 껄끄러워 일어났다. 멍한 채로 책상 앞에 앉았다.
   한낮에는 햇빛이 소리를 짓누른다. 
   함박눈에 삼켜져 버린 것처럼 세상은 빛과 습기로 가득 차 소리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새벽 세 시의 세상은 한낮보다 시끄럽다.

   텅 빈 새벽에 소리는 제멋대로 날뛴다. 장애물이 없으니 저 멀리 자동차 정적도 들린다.
   집 밖에서는 청소가 한창이다. 바람이 바닥을 쓸고 있다.
   간헐적으로 냉장고 엔진음이 들린다. 
   웅장하게 한 번, 다시 언제 들릴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감을 유발한다.

   시계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드럼 박자처럼 깔린다. 
   집중해서 들으면 꽤 큰 음량이지만 존재감은 그만하지 않다.
   규칙적인 박자 때문에 인식의 중심으로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다.
   한 아이가 아버지가 하는 공장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공장 안에는 바쁘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가 요란하다. 
   아이는 작은 회중시계를 가지고 놀고 있다. 
   할아버지가 집안의 가보처럼 애지중지하는 시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시계를 잃어버린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아버지가 달려왔다. 
   하지만 아버지도 시계를 찾을 수 없었고, 아이의 울음이 더욱 커졌다. 
   결국 사무실에 있던 할아버지가 공장으로 건너오셨다. 

   사정을 듣고 난 할아버지는 아이를 꾸짖는 대신 아버지에게 공장의 기계를 전부 끄게 했다. 
   직원들에게도 모두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할 것을 부탁했다.
   곧 기계와 직원들의 손이 멈췄다. 아이의 울음까지도.
   고요해진 공장 안 어디선가 가만히 

   째깍, 째깍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따라가 회중시계를 찾은 할아버지는 그것을 다시 아이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

   "때론 그저 고요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을 수 있는 법이란다."

   째깍, 째깍, 쉬이, 쉬이, 째깍, 쉬이
   곤히 자는 동생의 숨소리가 들린다.

   동생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의사가 낙태를 권유했다. 
   낳자마자 죽거나, 운 좋게 살아도 큰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께서는 그래도 낳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와 동생에게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지금 어디냐' 등의 일상 대화를 위해서 먼저 전화를 하신 적이 없었다.
   어머니께서 억지로 전화기를 가져다 대면 
   '춥다. 일찍 들어가라.' 한마디를 간신히 하시는 분이셨다.
   '아, 좀 살갑게 말 못해요!'라는 어머니의 나무라는 목소리가 항상 뒤따랐다.

   기적처럼 동생은 죽지도, 장애를 갖지도 않고 태어났다.
   아버지는 매일 밤, 몇 번씩 깨어 동생이 숨을 쉬는지 확인하셨다고 했다.
   어머니도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나와 어머니가 세상모르고 잠든 새벽, 
   아버지는 옅은 자식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숨죽이고 귀를 기울이셨다.

   쉬이, 쉬이, 쉬이, 쉬이
   내 몸에서 나는 소리도 들린다. 내 숨소리가 들린다. 숨 쉬고 있다.
   나는 왜 잠들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