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몽골을 처음 여행 할 때는 몽골의 너무도 광활한 대지와 하늘,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하늘로 용트림하는 능선들을 보며 놀라고 방향 감각을 잃어 버렸었다. 지금은 정겨움을 느낄 만큼  차분함이 좀 생긴다. 그러나 뭉게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넓은 초지와 푸른 하늘, 완벽한 곡선을 그리는 아름다운 구릉 들은 여전히 경이롭다.

 

몽골에 온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사연이 있었지만, 아무튼 간에 결국 비행기 정비에 문제가 발생해 이륙이 지연되어 예정 보다  늦게 울란바토르에 도착 하게 되었다.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폐관시간이 가까워져 박물관 관람을 포기하고 장을 본 뒤  초원으로 나가 야영 할 텐트를 치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다들 모이세요라는 박사님 호출이 있었다.

해 질 녘 황도대에 안타레스, 화성, 토성이 동시에 빛나고 있습니다. 텍스트북에 나오는 그대로인데 보기 드물지요. 운이 좋습니다."  아침나절에는 비행기 때문에 운이 나쁜 줄 알았는데 운 좋게 끝나는군요.

오늘은 보름이 갓 지난 때라 달이 밝다. 달이 높이 떠오르기 전 아직 별빛이 성성할 때 별자리를 보아야 한다. 저녁으로 컵 라면을 먹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있을까 할 정도로 초원에서 먹는 라면은 맛있다. 달빛이 내리는 초원은 정말 좋다. 지극히 아름다운 밤이다. 마음은 맑아지고 우리를 깨어 있게 한다. 교교하고 청명한 이 밤이 이대로 멈춘다 해도 좋겠다.

다음 날 풀들엔 찬 이슬이 맺혀 있고 능선을 따라 들어오는 햇살로 먼 산마루가 붉어졌다. 하얀 둥근 달은 태양 맞은편에서 아직 고고함을 잃지 않고 있다. 밝아 오는 하늘에 해와 달이 마주보고 떠있는 초원은 빛과 어둠의 농도에 따라 부드럽고 다양한 빛깔을 띤다. 고요 속에서 깨어나는  이른 아침 모습이 무척 신비롭다. 초원의 신성함이여...

 

흉노, 선비, 유연

투르크, 위그르, 키르키즈

거란, 여진,

남방의 한족 정치가들은 북방의 유목민들을 끊임없이 분열시켜 왔다. -서로, -북으로, 이이제이 전술로... 유목민족들의 세력 결집은 지배당함을 의미함으로... 유목민들은 되풀이 되는 이들의 전술을 잘 알고 있었고, 후손을 위해 돌 비문에 새겨 전했다.

적들은 너희들의 탐욕을 이용하여 이러 저러 하게 분열시킬 것이며, 이렇게, 저렇게 너희들을 오만에 빠뜨릴 것이며, 그래서 마침내 흩트리고 죽게 만들 것이다.’

, 그러나 훈계는 소용없는 일이 되고 인간의 탐욕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같은 함정에 빠트리며 부침을 거듭 하는구나! 무너져 내리는 1200년 전의 위그르 성벽, 잔해... 백년간의 부귀와 영광은 신기루였나. 드넓은 초원엔 고요만 가득하다.

 

지금 이곳은 여름이 끝나 가는가, 이미 가을이 왔나? 해가 지면 북 풍의 냄새를 담은 찬바람이 일고 추위가 느껴져 겨울용 파카를 입어야 한다. 북방의 가을은 얼마나 짧은 걸까? 우리는 시간에 쫓겨 항가이 산맥을 가로 질러 갔다. 몽골알타이 산맥의 복드 산을 가기 위해서다. 이천 사백 미터 산 중턱에서 늪에 빠져버린 버스를 세워 두고 야영을 했다. 바람 소리 차갑고 텐트 안 침낭에선 뒤척이기 무섭게 체온이 빠져나가 추위가 엄습했다. 웅크린 채 밤을 넘기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주변에 온통 서리가 하얗다. 내뱉는 입김도 하얗다. 불침번이 피웠던 모닥불이 아직 타오르고 있었다. 가슴을 데우는 불...

 

고개고개 버스는 굽이치는 깊은 산맥을 넘어갔다. 이곳은 일 만 년 전엔 1000미터나 되는 빙하로 덮여 있었단다. 빙하가 남겨 놓은 지형의 흔적들을 보았다. 산맥이 길고 높으니 하천도 넓고 많았다. 큰 강의 발원지가 되는 듯하다. 셀렝게 강이 될까? 오르콘 강일까? 그야 말로 수륙 양용으로 움직이는 버스를 타고 물길이 막으면 물을 건너며 산 넘고 물 건너 우리는 나아갔다.

 

멀리 작은 게르가 보인다. 게르는 초원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친환경적이란 이런 것이다. 울란바토르나 다른 도시의 집들은 게르에 비교한다면 얼마나 추하고 거칠었는가. 게르 입구로 들어서니 바닥은 자라고 있는 풀로 향기롭고 깔끔했다 여러 가지 사진들로 장식된 장, 가지런히 꽂혀있는 칫솔들, 냄비와 팬이 정갈스럽게 걸려있는 부엌, 그 집안의  큰 어른이 앉는다는 상석,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따뜻함을 주는 중앙에 위치한 난로의 환기통은 천정 밖으로 빠져나가 있다.  천정을 통해 푸른 하늘이 보이고 맑은 햇살이 비치고 있다. 차가운 하늘에서 나풀거리며 몇 개의 눈이 날아 들어왔다. 여닫을 수 있는 개폐식이란다. 몽골의 강한 자외선으로 그은 잘 생긴 안주인이 손님 대접을 했다. 말린 요구르트, 치즈, 우유로 만든 따끈한 수태차를 내 주었다. 여름 철의 주식이란다. 약간의 전통 주가 한 순배 돌자 초원의 노래가 나오고 우리 일행 중에서 답 시를 읊었다. 몽골의 자연을 묘사한 내 고향 아름다운 몽골이여!’로 끝맺는 시였다. 몽골 시인이 쓴 몽골 찬시를 읊어 주자 주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예측 못한 반응이었다.

자연환경이 만만치 않은 몽골 고원이 수 천 년 세월 동안 유목민들의 떠나지 못하는 고향인 이유가 궁금했었다. 이곳이 이들에겐 어떤 의미일까? 가축 떼를 데리고 초지를 따라 이동하면서 30분이면 게르를 짓고 간소하고 소박한 단순한 생활을 하는 이들, 살아 숨 쉬는 초원을 느끼며 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자연 앞에서 겸손할 줄 알고 불필요함을 거부하는 합리성을 몸에 익혔고 자족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삶을 배웠으리라. 우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그 신성함을 몸에 배게 했을 것이다.

지난 20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인간이라는 징기스칸이 우연히 나오진 않았구나. 몽골 대 자연의 품에서 연마되어 배출된 영웅이었네... 구릉 ,초원, 안개, , 바람, 천둥, 번개, 무지개, 그리고 혹독한 추위... 자연 속에 사는 그들은 순수하고 아름답고 또한 강인하다. 초원의 요정들이다.

 

우리는 때로는 게르에 사는 사람들의 자기 일처럼 돕는 도움을 받아 가며 오프로드를 갔다. 차창으로 보이는 구릉이 야트막한 초지엔 가축들이 윤기 흐르는 털을 입고 다부지고 살찐 모습으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야크들이 지나가는 버스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잠시 바라본다. 우리 일행은 보기 드문 이상한 동물의 이동임에 틀림없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가축처럼 살찐 풍성한 구름이 초원에 구름 그림자를 만든다. 매끈한 말은 날렵함이 넘친다. 관운장의 적토마가 어디쯤 있을 법도 하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남방의 정주민들은 경계 할지어다.

 

화강암 토르(tor)가 능선을 지키는 장승처럼 자주 나타난다. 항가이산 깊은 곳을 지났다. 풀 뜯는 가축들도 보이지 않는 정적이 머물고 있는 이곳에 항가이 산의 숨겨진 보물 인 냥  작은 물 웅덩이가 보인다. 맑고 잔잔한 물속에서 물고기 떼가 유영하고 있다. 고요하게 헤엄치는 이들에겐 두려움을 모르는 평화로움이 있고 투명하고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조화로움, 아름다움이란 존재가 자연 속에서 부족함도 넘치지도 않는 상태로 있을 때 받게 되는 감성인 듯하다. 드디어 우리는 몽골 알타이 산맥 복드 산을 앞에 두고 있다. 안개 장막에 가려져 있는 복드 산은 실루엣만 아련했다. 시간이 없는 우리는 산 발치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길을 찾았다.

 

그러게...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목표란 이렇게 허망한 걸까. 그래서 일상의 매 순간이 중요한 거라고 말했던가? 예정된 여행도 끝나간다. 이 평원을 줄기차게 7시간 정도 달려 400km 떨어진 도시에 예약된 저녁을 먹고 밤 비행기로 돌아가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기약 없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다양한 빛깔의 초원, 야생화, 대기에 날리는 향기, 가축들, 몽골 사람들, 저물어 가는 석양의 비너스 벨트, 별 가득 한 밤하늘, 작은 곰 자리의 끝 별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별자리들... 그래 이젠 별들의 좌표를 알았고 누구에게 물어 볼 것인가를 안다. 북두칠성에게, 오리온에게, 카시오페아에게, 페가수스의 창을 통해 어디 있는지 물을 것이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다시 오지 않더라도 북풍에 스며있는 그리움으로 찾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