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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헌 김기철 선생님(백자 장인) 정자에 놓아져 있는 연꽃잎 항아리. - 경기도 곤지암

 

2년간 도자기를 배웠다. 컵에서 밥그릇, 접시에 이어 가장 손이 많이 간다는 차주전자, 찻잔,

다기까지 만들었다. 도자기를 처음 만들 때는 모양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기능을 생각한다.

 더 시간이 지나면 쓸 사람을 생각한다. 더 더 시간이 지나면 도자기에 담길 마음을 생각하면서 만들게 된다.

 

 접시를 만들 때는 2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서양과 동양의 식사는 조금 다른 형태를 취한다.

 음식이 만들어져서 접시에 담기는 동양과 스테이크처럼 접시에서 나이프로 잘라서 먹는 서양의

음식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의 접시는 밑이 얇고 가볍고, 서양은 두껍다.

 

 밥그릇의 경우는 위를 오목하게 해서 온도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이게 되어 있다.

따뜻한 밥을 먹기 위한 전략이다. 심지어 잘 만들어진 밥그릇은 아래와 위의 두께가 다르다.

아래 쪽을 따뜻하게 하고 위는 식게 하여 밥의 온도를 유지면서 입으로 가져갈 때는 먹기 좋을 정도의

온도를 만들기 위함이다.

 

 컵도 마찬가지다. 차나 물이 담기는 컵에 경우 무게 중심이 쏠리기 때문에 손잡이의 위치에 따라 손에

가해지는 부담이 가해진다. 이를 위해 손잡이의 위와 아래에 엄지와 약지를 이용해 힘을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또는 오른손 잡이의 경우는 앞쪽으로 기울여서 조금의 손 동작으로도 컵을 기울 수 있게 만든다. 또 잘 만들어진 컵을 보면 입술이 닿는 부위가 입술의 선을 따라 조금 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컵을 들고 마실 때 입술에 닿는 부분에 부담을 줄이려는 배려이다.

 

 한국의 술병에 경우는 주둥이를 좁고 아래를 크게 만든다. 술을 한꺼번에 따르게 되면 막혀서 나오지

않는다. 말 그대로 병목현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술을 마시는 사람이 급하게 마시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였다.

 

 다기는 이 모든 것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적당한 차의 온도를 유지하고 따를 때의 속도를 생각해서

 다기 안에 구멍을 몇 개 뚫을 것 인지와 중간에 차가 머무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차 주전자 주둥이

아래에 물 고임부의 크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차를 따를 때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찻잔의

경우는 아래와 위의 두께를 조절하여 온도를 적당히 유지할 수 있게 설계되어야 한다. 한 번을

마실 것인지 나누어 마실 것인지를 고려해 찻잔의 크기를 선택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잘 만들어진 도자기는 배려가 숨겨진 도자기다. 밥그릇에서 밥의 온도를 생각하고,

컵에서는 차에 온도와 손의 부담을 고려한다. 술병은 건강을 생각하여 속도를 조절한다. 계영배라

불리는 술잔은 7부가 넘어가면 술이 밖으로 흘러버린다. 과음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의기이기도

하다. 제나라 환공은 계영배를 곁에 두어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 국보가 된 조선의 막사발이 있다도자기에 흐르는 유약에 따라 자연스러운 문양을

남긴다. 그 자연스러움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막사발이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온도의 유지에 있다.

차를 담으면 차의 온도가 유지가 되고, 국을 담으면 국의 온도가 유지가 되어 맛을 보존한다. 차가운 것을

담으면 차가움을 유지하는 것이 막사발의 특징이다. 두께에 그 비밀이 있다. 조금은 무겁고 투박한

모양이 온도를 유지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사람의 크기를 그릇에 비교를 한다. 마음의 크기를 그릇이 크냐 작냐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중에

영원 불멸의 신의 사랑을 받는다면 당신은 얼마만큼의 그릇을 내어 놓으시겠습니까라는 이외수의 말이

있다.

 

배려의 값어치가 도자기의 가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생각해보았다. 그릇이 크네 작네하는 사람의 평가는 무엇일까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다 그것이 생각의 깊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까지 깊이

생각하느냐가, 배려를 얼마만큼 하는가가 사람의 크기가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홀로 사는 오두막에 차를

펑크를 내고 대문에 자물쇠를 망가트리는 동네의 건달의 행동에 대해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그것은

그날 내 삶의 과제라고 말하는 법정스님처럼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 생각의 깊이며 배려이다.

 

여러 도자기가 가지는 숨겨진 수 많은 배려가 내 행동에 풍겨나기를 소망한다. 배움을 준비하는 내 그릇이 커지길 바라면 책자를 바라보고 있다 IMGP5890.JPG

    

    배려 깊은 도자기를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내 안에 배려가 쌓이고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는데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내 안에 담긴 것에 온기가

    간직되기를 바란다.

 

     자연과학 공부를 하면서 가르침을 받는데도

     배려가 있어야 함을 배운다. 복습을 해야하고

     관련된 책을 알아야 하고 질문을 깊이 간직해야

     한다. 배움에서의 배려는 기다림이라고 생각한다.

     간절히 기다리고 가슴 끝까지 차오르는 질문을

     안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 질문이 숙성하며

     지식의 그릇이 커지는 것이라 믿는다. 

 

      137억년 우주 진화 강의가 벌써 10강을 넘어가고

      있다. 배우려는 맘이 새로움으로 나를 이끌어 간다.

      조선 막사발에 담기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듯이

      내 배움의 모습 뒤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평온한

      가슴 만들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커지길 소원한다.

 

 

 

 다음 강의를 불가마에 들어가는 도자기의 마음으로 기다린다.

 

 

 

참고

 

일본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도자기 10만 점을 계약하고 화총과 화포를 제공 받았다. 전국시대가 끝날 무렵이라 전투 병력의 소진과 더 많은 화총을 받기 위해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러한 계기가 만든 전쟁이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은 어떤 면에서는 도자기를 보급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조선 도공이 2천여 명이 넘게 일본으로 넘어갔다. 그 후로 광혜군 때는 종묘제례에 쓰이는 도자기가 없어 제사를 치르기가 어렸웠을 정도이다.

 

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사무라이들은 포상으로 토지, 다완, 차를 담은 상자를 받는다. 교토의 다이도쿠지에 소장되 있는 다완 한 점이 있다. 460년 전 전국시대에 유행했던 이도다완이다. 세계적으로 100여개 밖에 없다. 도자기 안의 모양이 우물을 닮았다하여 이도다완이라고 부른다. 다완 중에는 1천 억원에 해당하는 다완도 있다고 한다. 이 천문학적 단위가 일본과 다완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1500년대에는 다도가 큰 유행을 하였다. 차 스승을 따로 두고 다도를 즐길 정도였다. 이 때 최고의 다완을 조선의 다완이었다고 한다. 사무라이들이 쓰는 다도의 다완은 대부분이 조선의 다완을 썼다. 심지어 다완을 자신의 성을 바꾼 영주도 있었다고 하니 그 가치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도자기의 위대성은 음식의 다양성을 만든 것에 있다. 다양한 음식은 다양한 그릇이 만들어낸 양상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음식이 자기 그릇을 찾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왕조에서의 종묘제례는 제기의 크기까지 정해져 있다.

 

마음을 다해 나오는 것이 행동이라면 행동의 양식이 마음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행동의 양식을 정하면

마음을 보이는 노력이 된다. 그래서 이름난 귀족이나 왕가에서는 그들만의 행동요령을 가르친다.

 

행동이 마음이라면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은 마음이 담기게 된다. 도자기에 담긴 배려는 삶, 그 자체에

담김이다. 밥을 따뜻이 먹기를, 물을 급하게 마시지 말기를, 과음을 하지 말기를, 음식을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맘이 담긴다.  

 

1300도에서 구워지는 도자기는 한 때 그 가격이 같은 무게의 5배의 금을 주고 샀다고 한다. 심지어

대항해시대에 남아메리카를 정복하여 나온 은화가 중국의 도자기를 사는데 쓰여졌고 그 은화는

만리장성을 쌓는데 들어갔으니 도자기가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흰색을 숭상한 몽골족의 미학이 백자를 탄생시켰다. 도자기의 흰 색깔을 내기 위해 영국에서는

소의 뼈를 갈아 도자기의 표면에 입혔다. 그래서 본 차이나가 탄생했다.

 

흙에서 나온 도자기에 음식이 담기며 인간의 문화가 발전했다. 그릇에 담기는 음식이 사람을 다시

바꾸고 있다.  

 

도자기의 가치는 배려에 있다. 많은 도공이 꿈꾸던 도자기는 모두 자기를 담기를 바란 것이다.

 

비가 갠 푸른 하늘을 담는 청화자기, 무엇보다 깨끗한 마음이길 바란 백자 등은 모두 사람이 꿈꾸던

마음을 닮으려 노력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를 불가마에 담겨 구어지고 있는 도자기인지도 모른다. 힘든 삶 속에

넘실대는 불길을 맞으며 아름다워지고 있는 도자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