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자다가 일어나려 했으나, 침낭 속에 갇힌 몸이라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모기 물린 자리가 너무 가려워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벅벅 긁어댔다. 어제 저녁에 모기에게 물린 자리이다. 날이 밝아오자 긁힌 자리가 벌겋게 부어오른 것이 보였다.

 

저녁 무렵, 텐트를 치려고 한창 준비 중인데 날 파리 같은 놈이 날아다녔다. 그러자 우리 차들을 운전하는 몽골 기사들이 마른 소똥과 말똥을 주워 와서 모깃불을 피웠다. 연기가 피어오르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힘없는 놈이었다. 어쩌다 물리더라도 부풀지도 않고 하나도 가렵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리 모기처럼 앵앵거리지도 않고 힘도 없는 하루살이처럼 생긴 놈인데, 뒷심이 그렇게 강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몽골의 초원에서 만난 모기는 그저 잠깐 앉았다 지나가는 미미한 존재였다. 그런 놈이 문 자리가 일주일 내내 가려워서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힌다. 밤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낮에도 시도 때도 없이 긁어대야 하니 미칠 지경이다. 다른 것은 참겠는데 한 밤중에 잠에 취해 잘 시간에 꼭 한 두 번 일어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는 통에 밤마다 잠을 설쳤다.

 

살다보면, 우리 주위에 이런 모기 같은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대수롭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잊을 만하면 꺼내서 따지고, 그 일을 반복하며 끈질기게 괴롭히는 사람들 말이다. 정말로 그런 인연을 만날까 겁날 정도이다. 다행히도 모기의 상처는 일정기한이 지나면 더 이상 가렵지 않게 되지만, 사람에게 긁힌 상처는 가슴 속에 오래오래 남아 때때로 마음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평소 할 말은 서로 하고 지내는 스님이라 반짝이 무늬가 들어 있는 신을 신었기에 그저 한마디 했다.

 

“스님! 너무 야하지 않아요?”

“그려”

 

그 말 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상대방 스님은 어지간히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만날 때마다 기회만 있으면 그 말을 끄집어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다.

 

“스님 옷은 참말로 고상하네! 멋쟁이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

“누구는 내 신발이 야하다고 핀잔을 주던데, 다른 이들은 좋다고만 하더구먼.”

 

이런 말들을 하면서 나를 빗대어 빈정거렸다.

 

아니, 내가 말을 할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더니 두고두고 곱씹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 할 따름이었다. 엿가락 늘이듯이 늘여서 계속 붙들고 늘어지는데 환장할 노릇이다.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졌지만 하는 수 없이 참았다. 얼마를 지나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끌어다 말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잘못했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도 몇 번이나 듣고서야 꼬리를 내렸다.

 

우리나라 모기는 물면 금방 빨갛게 부풀어 오르면서 가려운 점이 몽골 모기와는 다르다. 또 물때도 미리 선전포고를 하며 날아드니 얼마나 신사적인가! 게다가 물린 자리는 가렵기는 해도 빨리 사그라지는 편이다. 그렇더라도 성가신 놈임에는 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말라리아니 뇌염이니 하는 병까지 옮기니 밉상스러운 존재라 사람들이 싫어 할 수밖에 없다. 모기 쪽에서야 물리지 않으려고 모기장을 치거나, 약을 뿌리거나, 모기향을 피우거나 하는 인간들이 미울 것이다. 방패막이를 해 놓으면 요리조리 헤집고 들어올 수 없으니까!

 

몽골 모기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 모기와 닮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친하게 지내는 도반 절에 놀러갔다. 방안의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다짜고짜 소리를 크게 질렀다.

 

“누가 물도 안 내리고 불도 안 껐네! 정신 줄을 어디다두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조금 전에 내가 들어가서 쓴 뒤 깜빡 잊고 그냥 나온 것이다. 땅벌처럼 톡 쏘는 소리에 속으론 뜨끔했어도 그만한 일 가지고 너무한다 싶어 입을 다물어버렸다. 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언제 소리 질렀냐는 듯이 도반 스님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녁에 뭐해 줄까? 더우니까 메밀국수 해줄까! 스님은 메밀 좋아하니까 !”

 

그 한마디에 섭섭했던 마음이 이내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 대신 속 좁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못한 내가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지인이 여동생과 함께 와서 우리 절에 머물게 되었다. 동생의 짐이 너무 불룩해서 뭐가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모기향이라고 했다. 열어보니 향을 피우는 도자기향로까지 준비해 와서 더 기가 막혔다. 한국에는 모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기향을 한 상자나 가져왔으니 가방이 묵직할 수밖에 없었다. 모기 알레르기가 있어 물리면 꼭 덧나서 병원에 가야 낫기 때문에 밤낮없이 쓰려고 많이 가져왔다는 그 녀의 변명이었다. 여기는 아직 모기가 없다고 해도 부득부득 피우더니 없는 걸 확인하고는 다음날은 피우지 않았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지나쳐도 고생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몽골 학습탐사 때는 모기가 없는 지역이라 해서 전연 준비를 안 해서 괴롭힘을 당했는데, 어떤 일을 적절하게 대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새삼 느꼈다.

 

몽골 다녀와서, 적당하게 둘 곳 이 없어 치우치 못한 모기향상자가 한편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저 걸 가지고 갔더라면 얼마나 유용하게 썼을 터인데!”

 

사람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바보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었다. 유비무환의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겼다.

 

모기에게 물린 자국이 얼마간은 남아 있더니 어느 날 감쪽같이 없어져버렸다. 마음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치유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가신 만큼 많은 가르침을 준 모기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안 물리려고 본의 아니게 때려죽인 모기의 영혼들이여! 고이 잠드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