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홍 회원님이 '민들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손이 기억하는 세계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기를 좋아했다. 한 때 꿈이 만화가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오랫동안 시간이 나면 그리고 또 그렸다. 그런 내가 지금은 뇌성마비 아동들을 치료하고 뇌졸중, 뇌경색을 앓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물리치료를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리기를 통해 뇌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손의 민감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심지어는 도자기를 2년 동안 배우기도 했다. 손의 작은 움직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의 도자기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훈련하여 치료할 때 내가 원하는 손 모양을 만들어 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손이 기억하는 세계가 있다. 도자기를 할 때 처음에는 흙덩이의 중심을 잡는데 신경을 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모양을 만들지를 생각하면 저절로 그 모양이 만들어졌다. 손이 기억하여 모양이 만들어진다. 현대사회에서 문명의 이기들로 인해 점점 손으로 기억하는 세계가 사라지고 있다. 밭을 일구고, 친구와 놀이를 하고, 물건을 만들고, 세상을 어루만지며 확장되었던, 손이 기억하는 세계가 줄어들고 있다.

손이 지금의 문명을 이끌었다. 리차드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에 보면 손의 발달은 다른 동물과의 생존경쟁에서 영장류를 살아남게 했다. 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씨를 교묘하게 열매에 숨김으로써 동물은 다양한 방법을 써서 열매를 까먹게 되었다. 야자수, 호도, 파인애플, 코코아 등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정교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손을 사용하게 되면서, 또 다양한 형태의 먹거리를 먹기 위해 씹는 활동을 통해 뇌의 발달이 가속되었다.

저명한 인류학자 스티븐 미슨이 쓴 <마음의 역사>에서는 도구의 사용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을 높였으며 이로 인해 뇌의 발달을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사냥을 위해 점점 복잡한 형태의 도구를 사용하면서 집단 활동이 늘어나고 언어가 생겨나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농경문명을 일구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가상세계의 현실화가 다름 아닌 도시라고 요로 다케시는 <바보의 벽>에서 말하고 있다.

 

손을 통해 만들어지는 기억

 

최근 성인 중추신경계 치료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중추신경계를 다친 환자의 경우에 다리에 비해 손놀림의 회복이 매우 느리다는 사실이다. 손을 쓰지 못함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삶의 질이 떨어진다. 중추신경계가 손상되면서 눈을 조절하는 운동신경이 함께 다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사시다. 이 아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책을 읽거나 컵에 물 따르기 같은 섬세한 동작을 수행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이것은 우리의 뇌에 손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가장 넓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에서 올라가는 감각정보는 지도화되어 뇌에 저장된다. 몸의 감각은 뇌의 신체 지도를 통해 감각이 모이고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1930년대 케나다의 의사 펜필드와 브로드만은 뇌의 각 영역을 구분하는 연구를 했다. 몸 감각의 경우에는 뇌의 중심고랑 뒤쪽에 위치하는데 몸 영역이 17개로 나누어진다. 방광직장-발가락-아랫쪽 다리-위쪽 다리-가슴-어깨---소지-약지-중지-검지-엄지-얼굴---인두후두이다. 이 중에 팔과 손에 해당되는 영역만 8개이다. 뇌에서 척수로 보내지는 정보는 척수로라는 신경다발로 이루어진다. 이 중 전체 척수로의 90%에 해당하는 대뇌척수로는 대부분 손을 사용하는데 쓰인다.

이렇듯 뇌에서 손이 많은 부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의 뇌가 결국 손을 사용하면서 확장되었다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탄생>을 쓴 음성학의 대가 필립 리버만이 언어기능은 손 사용을 위한 복잡한 형태의 뇌 기능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인 뇌졸중이나 뇌경색 환자가 손놀림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뇌의 많은 활동이 손을 사용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소아 재활치료를 받는 아이 중에는 계속해서 손뼉을 치거나 손가락 빨기, 손 흔들기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가 있다. 이와 같은 상동행동도 우리의 뇌가 지속적으로 깨어 있으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손이 뇌에서 가장 많은 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손에 있는 감각기관을 자극하여 각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손을 통해 뇌에 들어가는 정보가 다른 감각계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은 통합된 감각에 의한 연관기억이다

 

내가 치료하던 아동 중에 거의 천재급 기억력을 자랑하는 아이가 있었다. 일반 중학교 들어갈 때 뇌성마비 아동임에도 전교 4등으로 입학했는데 수학점수는 엉망이었다. 이유를 알고 보니 수학 공식을 모두 암기하고 응용할 수 있는데 숫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점수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 동그라미 숫자를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38을 헛갈려서 문제를 틀린다.

이 아이의 치료는 이렇게 진행된다. 초등학교 1학년 아동용 공책을 준비하고 띄어쓰기를 하도록 숙제를 내준다. 지속적 반복을 통해 정확하게 글을 읽고 숫자를 쓴다. 이 훈련을 한 후로 아이의 수학점수는 올라갔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글씨로 쓰게 되면 감각 지연이 일어나면서 글자에 대한 정보를 한층 세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책을 잘 못 읽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띄어쓰기를 시키면 집중력이 향상되고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보통 우리는 오른손으로 커피를 마신다. 어떤 커피든 상관이 없다. 반대편 손으로 바꿔서 마셔보면 마술을 부린 것도 아닌데 맛이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니면 밥을 먹을 때 손을 반대쪽으로 바꿔서 먹어보면 금세 느낄 수 있다. 맛을 구성하는 조건에는 혀에서 느껴지는 감각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향기, 음식의 색깔, 이빨에서 느껴지는 질감, 식당의 분위기, 누구와 식사를 하고 있는지까지 모든 조건이 포함된다.

중추신경계가 손상된 환자 경우에는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손을 사용하지 못하면 평소에 보았던 세계까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다른 느낌을 만든다. 심지어는 말을 하는데 더듬거리거나 생각이 이어지지 않기까지 한다.

몇 년 전에 나온 옥스퍼드 논문 중에 기저핵의 뇌 지도에 관한 논문이 있다. , , 눈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서로 겹쳐 있다는 것이다. 손과 눈으로 문자를 쓰고, 눈과 입으로 표정을 만들며, 입과 손으로 대화를 한다. 이야기를 할 때 손을 사용하지 않고 해보면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의 경우는 말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 마치 중추신경계 환자가 손을 쓰지 못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뇌에 입력되는 정보는 한 가지 감각이 아니라 연합된 감각이 모여서 입력됨을 알 수 있다.

감각이 모여 기억이 된다는 사실에서 손을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우리의 뇌는 하나의 감각만을 구분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억은 하나의 감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합된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 연관기억이다.

 

손으로 기억하는 학습

 

손으로 글을 쓰면 손에 쥔 펜의 종류에 따라 글씨가 조금씩 달라진다. 손으로 글을 쓰면서 여러 종류의 펜을 사용하면 노트 전체에 표나 그림을 어떻게 채울지를 생각하게 된다. 글쓰기를 할 때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때때로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이야기의 흐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되도록 정자체로 예쁘고 가지런하게 쓰려고 노력하면 글씨를 쓰는 동안 집중력이 높아진다. 거기다 펜으로 글을 쓰면 생각보다 손이 훨씬 느리게 움직이는 지연현상이 일어나 글에 대해 더 심사숙고하게 된다.

손을 사용해 공부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그리기이다. 책에 있는 글의 대부분은 이미지를 글자로 전환해서 적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선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같다. 저명한 심리학자 루리야가 기억술사 S30년 동안 관찰하여 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보면 기억하는 방법이 나온다.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이미지에 기억을 얹는 방법을 쓴다. 이를테면 어렸을 때 거리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거기 우체통에 기억해야 할 내용을 대입시킨다. 이런 방법이면 그림 하나에 모든 정보를 포함시킬 수 있다고 한다.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이란 단체에서 진행되는 특별한 뇌과학수업은 뇌 그림에서 시작해서 뇌 그림으로 끝난다. 나 같은 경우도 중추신경계 환자를 15년 가까이 접하고 있어 뇌과학이 필수 사항이었다. 그런데 뇌과학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은 특별한 뇌과학강의를 듣고서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전에는 눈으로 책을 보았다면, 특별한 뇌과학을 접하고 나서는 손으로 그려서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언제나 부착점이 필요하다. 지도를 그리면서 지명을 익히면 더 잘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뇌에 관한 이미지를 100개 이상 외우고 났더니 모든 지식이 그 이미지 위에 덧씌워져 함께 기억되기 시작했다. 일종의 연관기억이다. 어느 날 낯선 카페에 들어가서 손을 씻을 때 맡은 쑥향기에서 어린 시절 멱감을 때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귀에 물들어가지 말라고 쑥을 뜯어 귀를 막았기 때문이다. 쑥향기가 하나의 기억을 불러오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처럼 하나의 기억이 다른 기억을 불러온다. 이것을 연관기억이라고 한다. 내가 쓰는 기억은 바로 이미지를 통한 기억의 연결이다.

 

인간다움으로 이끄는 손의 세계

 

물리치료학은 실제로 움직임에 대한 공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리치료사는 움직임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관절을 이루는 뼈의 모양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한다. 특히 보행에 관한 것을 더 깊이 공부한다. 공부를 하다보면 발 뼈의 모양과 움직임에 관한 공부를 하게 되는데, 책은 2차원이라 3차원 형태의 발 뼈를 상상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손으로 직접 발 뼈를 지우개로 깎아본 것이다. 손으로 섬세하게 깎아보니 조그마한 돌기 하나도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뇌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손이다. 모든 감각은 연합적으로 모여서 입력된다. 뇌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손을 사용하는 것이 기억의 효율성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게 한다. 결국 신경세포를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쓰고, 그리고, 만지고, 조작하고, 조각하기 같은 활동으로 손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한다.

 오랜 훈련과 수련으로 손의 움직임이 자동화되어 움직이게 된다.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 나오는 달인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밥알의 개수가 항상 같은 초밥의 달인, 떡의 크기가 같은 떡의 달인, 옆 사람과 수다를 떨면서 화장품 뚜껑을 1분에 50개 이상을 닫는 뚜껑의 달인 등이다. 손으로 기억된 세계가 있다.

우리가 아는 손이 기억하는 세계는 대부분이 무의식의 영역이다. 현관문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모르다가도 그 앞에 가면 손이 저절로 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손이 기억하는 세계, 그 세계가 확장되었을 때 창의성도 발휘할 수 있다. 기억이 만든 세계가 우리의 삶이라면 그 기억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것은 손을 통해서이다. 생각하는 것을 글이나 이미지로 현실에 구체화시키는 것은 손을 통하지 않고는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손이 기억하는 세계가 우리를 인간다움으로 이끈다.

 

손이 기억하는 세상이 있다. 밥을 먹으면서 수저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쓸 때 볼펜을 어떻게 쥐고 움직여야 하는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옷을 입을 때 어떤 옷이던지 보는 순간 손이 알아서 옷을 내 몸에 입혀 준다. 전구를 갈아 끼울 때 어떻게 세 손가락으로 잡아야 하는지, 다섯 손가락으로 잡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손은 자판의 부호가 어떻게 되는지 잊은지 오래다. 영문 자판을 두드릴 때는 자판에 어디가 무엇이 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손이 기억하고 있는 세계가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무심코 하는 행위 너머에는 의식을 통해 만들어진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한다. 처음에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세계이다. 한글 자판을 처음 배울 때 손가락 하나 하나에 자판의 부호가 어디 있는지 한 참을 헤매게 된다. 글자를 쓸 때도 또박 또박 연필이 부러져라 쓰고 또 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런 의식적 단계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글자를 쓸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의미가 내려앉는다. 더 많이 만지고, 더 많이 조작하고, 더 많이 두들기고, 더 많이 손을 사용할 때 손이 기억하는 세상이 확장된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내어 놓은 피렌체의 전설은 모두 도제 교육을 통한 손의 반복 학습을 통해 이루어졌다. 손을 사용하여 확장된 공간에 기억이 머물고, 생각이 머물고 창의성이 솟아난다. 몸이 가지는 감각의 세계를 통해 문화가 만들어 졌다. 모방과 학습은 모두 몸을 통해 태어난다. 손이 기억하여 만든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