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

 

 

 

올해 광주 비엔날레의 문화행동 프로젝트는 죽은 이나 고통 받은 이들에 대한 구원과 치유를 의미하는 달콤한 이슬(甘露)-1980 그 후이다. 불교에서 모티브를 따온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를 씻는다는 단순한 목적만은 아닐 것이다.


불교에서 감로, 감로탱甘露幀 등은 감로와 같은 단 이슬을 중생들에게 베풀어 그들의 몸과 마음을 길러주어 해탈시킨다는 의도에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이 행사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폭 넓은 메시지를 전하게 될 것 같다.


물은 뭇 생명을 길러주고 살려준다. 그러니 생명 그 자체이다. 감로는 하늘이 상서祥瑞로 내리는 단 이슬이다. 이 달콤한 이슬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간절하게 마시고 싶은 물, 즉 생명수와도 같기 때문에 더욱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광주 비엔날레의 의의가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감로수를 찾으러 기림사로 향했다. 기림사 일주문 밖에 석종모양의 율암대사 부도비가 축대 위에 덩그마니 놓여있다. 부처의 나라로 들어가는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함께 흐르는 물소리가 속세에 물든 나의 귀를 씻어준다.


기림사祈林寺의 옛 이름은 임정사林井寺 또는 임정사林淨寺이다. 숲과 샘물이 있는 정토淨土라는 뜻이다. 절터 또한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형상인 영귀음수형靈龜飮水形이라 역사적으로 물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사찰이다.


예전의 임정사는 이름에 걸맞게 다섯 가지 물맛의 오종수가 오방에서 샘솟았다. 또 이 물로는 오종화라 불리는 오색작약을 피우고 오색수인 이아가나무를 키워 법계도法界圖처럼 도형화 하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지상의 안락정토를 꿈꾸는 절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기림사는 옛 모습을 거의 찾을 길이 없다. 역사적인 자취만 일부 남아있을 뿐이다.


임정사의 오종수는 별본기림사사적에 따르면 석가모니불 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연원을 가진 샘이다. 이 때의 다섯 가지 샘물은 청량淸凉, 만결滿潔, 옥계玉溪, 감로甘露, 우동遇童으로 가장 오래된 이름이다. 현재는 명안수明眼水, 화정수和靜水, 감로수甘露水, 장군수將軍水, 오탁수 烏啄水로 명칭이 변했으며, 위치도 바뀌고 방향도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북쪽의 감로수만이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걸로 보아 오종수를 대표하는 우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기림사의 감천은 조선의 유학자 성대중成大中이 제시한 동도칠괴東都七怪의 하나로 다섯 번째에 나온다. 여기에서 말하는 감천은 감로수를 말하는 것이다. 이 물은 단맛이 난다고 감천甘泉 또는 우유 빛이 돈다고 유천乳泉이라 불렀으며, 차를 끓이면 최고로 맛있는 차가 된다고 전한다. 멀리서도 차를 달이려고 이물을 뜨러왔다고 할 만큼 유명한 찻물중의 하나였다.


바로 북암北庵으로 향했다. 감로수를 찾기 위해서다.

현재의 감로수 터는 돌로 만든 텅 빈 수조만 덩그렇게 놓여있다. 기대를 안고 간만큼 이만 저만 실망을 주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아래쪽의 작은 못에는 물이 고여 있어 감로가 나오던 우물의 흔적만 보인다. 물은 항상 흘러야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데 고인 물은 썩은 물이 아닌가. 달콤한 이슬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돌아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북암에서 내려오다 약사전에 들렀다. 약사전에는 차와 관련된 벽화가 있기 때문이다. 건물 안쪽의 왼쪽 벽에 사라수대왕이 광유성인에게 헌다하는 그림으로 안락국태자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이 헌다도獻茶圖는 차의 성지라고 알려진 대흥사 일지암보다 150년이나 앞서 그려진 그림이다.


차의 중흥조라 불리는 초의草衣도 삼개월간 기림사에 머물었을 때 이 벽화를 보았을 터이다. 그는 헌다도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헌다도를 보자 나는 불현 듯 감로수에 차를 달여 한 모금 머금고 차를 음미하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십 여 년 전, 기림사의 헌다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었다. 차를 우려 부처님께 올리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자리였다. 그 땐 차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어 그저 그렇게 하는가 보다고 관심 없이 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광유선인에게 헌다하던 의식을 죽 이어 해마다 올렸다고 한다. 무식이 죄악이라더니 참으로 부끄러운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진즉에 기림사에 대한 차의 역사를 알았더라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을…….


그러나 얻은 것이 더 많았다. 헌다에 올린 차를 맛본 순간이다.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미묘한 맛이 혀끝에 와 닿았다. 그때 깨달았다. 물맛이 차의 맛을 좌우한다는 것을.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정수기의 물로 차를 우린 맛과는 참말로 비교가 안 되었다. 아아, 이 맛이 바로 감로로구나. 직접 체득한 것이다.


일본의 어느 찻집에 들어서니 차의 한자를 풀이한 액자가 걸려있었다. 읽어보니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의 한자는 합하면 백팔이다. 그러니 차를 한 모금 마시면 백팔번뇌百八煩惱가 다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의 초두艸頭는 이십이고 그 밑의 나머지 글자는 팔십팔八十八이니 모두 더하면 백팔이다. 정말로 일본인다운 발상이긴 하나 이보다 더 차의 효능을 잘 표현한 글이 있을까. 이 말인즉슨 차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최상의 물, 즉 감로라는 말과 상통한다.


이런 역사적인 근거를 토대로 수 년 전부터 기림사 도량 곳곳에 차밭을 일구어 놓은 곳이 보인다. 이렇듯 차의 도량다운 면모로 일신하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거기에 감로수를 재정비해서 다시 샘솟게 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바늘에 실 가듯이 차와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차의 성지로서 손색이 없는 도량이 될 것이다.


차의 성지로 다시금 태어나는 것은 아직 걸음마단계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떡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인지 몰라도 마음은 벌써 감로를 마시는 기분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그렇게 되리라는 기대를 걸어본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요즘 들어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고 힐링이라는 말을 부쩍 많이 쓴다. 광주비엔날레는 일회성 행사여서 끝나면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기림사는 다르다.안락국태자경安樂國太子經에 나오는 임정사처럼 오종수, 오종화, 오색수를 갖추어 지상의 정토가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힐링 도량으로서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약사전을 나와 걸음을 옮긴다. 나오다보니 종무소 옆에 다실이 보인다. 사찰에서 오가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장소이다. 누구라도 들어와 마음 편히 쉬어가라는 팻말도 있어 스스럼없이 문을 열었다. 잘 정돈된 정갈한 다실이다. 수각에서 물을 길어와 차를 우리니 감로가 따로 없었다. 모처럼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져다 준 힐링 체험이었다.


일주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기림사는 현대인의 힐링 장소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어서였다. 어디선가에서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그 옛날 이아가나무 숲에서 실어 보낸 바람인가. 상상은 자유롭게 마냥 날개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