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눈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세상이 뿌옇게 보이고 글자가 희미하게 보여서 안과에 찾아갔더니 난시가 왔다고 합니다. 어디 있다가 이제 찾아 온 것일까 속으로 농을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본다는 것이 이리도 소중히 느껴지는 건 내 눈이 지금 보이는 세계를 더 보려고 해서가 아니라 내 기억 속에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것일 테지요.

 

뇌과학에서 본다는 현상은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작은 인간이 내 뇌에 있어서 다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렌즈를 통해 빛을 받아 들이고 모니터를 통해 세상을 구현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뇌는 영상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본다는 것은 기억을 보는 것이다.’라고 말한 프란시스 크릭(DNA 나선구조 발견으로 노벨상 수상)의 말입니다.

 

콜롬부스의 배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아메리카 인디언은 배를 파도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 번도 그렇게 큰 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주술사가 그 큰 파도를 보고 저것은 배라고 말하는 순간 모두의 눈에 배가 나타났습니다. 주술사의 말에 의해 파도가 배로 바뀐 겁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 언제나 일어납니다. 실험을 해 볼까요. 검지 손가락은 밖으로 돌아가 있고, 네 번째 약지 손가락은 안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여성의 대부분은 검지가 길고, 남성의 대부분은 약지 손가락이 깁니다. 관찰하고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눈이 아니라 기억이 보기 때문입니다.

 

본다는 것을 잘 표현하는 말로는 우리는 절대로 굴러가는 사과를 볼 수 없다. 이미 그것은 굴러가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이케가야 유지(일본의 동경대 약학박사)의 이야기입니다. 빛이 굴러가는 사과를 보고 각막을 지나 망막에 상이 맺힙니다. 그리고 외측슬상체라고 하는 뇌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다시 일차 시각영역으로 정보를 옮깁니다.

 

움직이는 사과에 대해서는 머리 윗 쪽 영역으로 색깔과 모양은 아랫 쪽 영역으로 전기 펄스를 이동시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정보를 모아서 해마로 보내고 전두엽으로 보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복잡한 시각처리 방식이 아니라 시각처리를 하기 전에 진짜 사과는 지나가 버린 후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짧다고 하더라도 시각처리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우리는 영원히 리얼한 자연은 만날 수 없습니다.

 

자페증이 있는 아이에게는 보이는 세상이 더 다르다고 합니다. 히가시다 나오키라는 자폐증 청년이 쓴 튀어 오르는 생각에서 그는 세상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는 풍경과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 산과 나무, , 건물 모두가 한꺼번에 말을 걸어 오는 느낌이 든다.”

 

세상을 구분하는 방법은 배경과 전경이라는 방식을 인간은 채택하고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기준을 통해 거리를 측정하고 보아야 할 대상과 배경을 구분합니다. 이것은 비고츠키의 마인드 인 소사이어티에 따르면 언어가 만들어지며 탄생한 것이라고 합니다.

 

언어를 통해 관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에서는 이것을 조금 더 구체화 합니다. 눈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에는 의식을 집중하는 대상과 배경의 대상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일명 사진에서 말하는 아웃 포커싱현상입니다. 배경은 흐리게 대상은 선명하게 하는 현상입니다. 이 현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보아야 할 대상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의식을 어디에 머물러야 할 지 결정하지 못하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요. 내게 들어오는 세상에 순서와 서열을 정하지 못하면 히가시다 나오키가 보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눈이 포커스를 맞춘다는 것은 눈의 황반이라고 하는 1.5mm에 불과한 망막에 빛을 모으는 현상입니다. 인간이 의식을 만들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황반은 아주 작은 크기를 가지고 있어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흔들려야 합니다. 그래서 눈동자를 가만히 있는 사람은 없게 됩니다.

 

초식동물의 시야각은 매우 넓습니다. 자신을 사냥하는 육식동물이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풀을 뜯으면서 언제나 시선은 넓은 범위를 보아야 합니다. 이에 비해 육식동물은 좁은 시야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먹이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인간에 와서 이 시야각이 극단적으로 좁아졌습니다. 바늘에 실을 꿰고 있으니 말 다했지요. 이것은 정확하게 보고 정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현상이 전경과 배경이라는 현상을 낳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우리가 의식한 방식으로 골라서 세상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는 이런 의식에 순서를 매긴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라는 공간에는 의식의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음식점, 화장실, 노래방, 오페라 하우스, 뮤지컬, 극장 등등 모든 장소에는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음식점을 들어가서는 원하는 식탁에 앉고,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한 후에 식당에서 나옵니다.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만약 의식의 순서가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대형마트에서 느닷없이 한 아이가 튀어 오더니 과자를 막 집어 먹습니다. 계산이라는 순서를 진행하기도 전이지요. 화장실에서는 손을 씻었다가 화장지를 뜯었다가 하는 아이를 보기도 합니다. 의식의 순서가 어긋나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의식의 순서는 서열을 만들고 그 서열에 따라 기억이 정리됩니다. 결국 의식은 기억이 만든 순서와 서열에 의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만듭니다.

 

눈이 가지고 있는 반응 중에는 빛반응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빛이 바뀌면 순식간에 눈동자가 돌아가 움직이거나 빛이 변한 장소로 시선을 옮기는 반응을 말합니다. 만약 의식적으로 내가 보아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조절하지 못하면 눈동자는 매 순간 변하는 자극에 의해 시선을 옮기게 됩니다.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물이 움직이거나 빛이 변하면 순식간에 눈이 그 쪽으로 향하고 관심도 바뀌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억이 내 안에서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물에 의해 기억이 불러져 오기 때문입니다. 학교 앞에 분식점이 잘 되는 이유는 아이들이 스스로 욕구를 조절하기 힘들어 분식점의 음식을 보자마자 먹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본다는 현상은 기억을 보는 것이며, 기억은 공간의 상대적 위치와 사건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억은 sequenc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