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요일이라는 나바호 인디언이 있다. 어느 날 그는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며칠이나 걸리는 백인의 마을을 찾아 간다. 온 몸에는 사막의 먼지와 말을 달리며 흘린 콧물이 먼지와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을을 발견하고 식료품을 사러 식료품 가게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이 잠겨 있다. 인디언은 문을 두드려 주인을 부른다. 한 참을 쾅 쾅 거렸을 때 주인이 나오고 주인은 문을 열 수 없다고 한다. 내일 오라고 말을 하는 주인에게 인디언은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다. 먼 길을 왔는데 또 기다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십여 명의 인디언이 폭동을 일으키는 줄 알고 식료품 가게 주인은 민병대에 연락을 하고 근처에 있던 민병대가 마을을 둘러싸며 일촉측발의 상황이 일어난다. 민병대의 대장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인디언 통역과 함께 인디언을 찾아간다.

 

인디언의 주장은 먼 길을 찾아 왔는데 왜 문을 열지 않느냐는 내용이다. 주인의 말은 일요일이기 때문에 문을 열 수 없다고 말한다.

 

민병대의 대장은 인디언에게 일요일은 가게의 문을 열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준다. 그러나 인디언은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디언에게 일요일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저 사건은 인디언에게 물건을 팔고 다음에는 일요일에는 팔지 않는다고 하고 사건은 마무리 졌다. 그 사건 때 가장 먼저 식료품 가게에 들어선 작은 인디언을 작은 일요일’, 그 뒤에 들어온 키가 큰 인디언을 큰 일요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한 참을 고민했다. 일요일이 없는 사람에게 일요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어떤 인디언 마을에는 오늘만 있고 내일이 없다. 단어에 내일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1년 후에 일을 생각하기 보다는 오늘 해가 질 때까지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그들이 가진 가치이다.

 

문제는 그들만 살 때 일어나지 않는다. 나바호 지역에 댐버 댐을 건설하는데 인디언의 노동력이 필요로 했다. 내일이 없는 인디언 부족은 일을 하다가 마을로 돌아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집을 짓기 위해, 가축을 돌보기 위해...등등 그 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하기 위해 댐 공사를 내버려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요일이 없는 세계, 내일이 없고, 일년 후가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 그 세계는 내가 살고 있는 문명과 다른 세계이다. 공자가 도를 추구한 이유를 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다. 길이 없는 세계를 야()라고 춘추전국시대에는 불렀다고 한다. ()를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의 규칙과 문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말이 된다. 길 위에서는 약탈도 살인도 일어나지 않는다.

 

동양철학에서 중요한 단어가 있다. 장소가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바로 입장(立場)’이다. 기억은 장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해마에 'place, grid, head direction cell' 있다. 장소에서의 변화가 시간으로 작용하고 우리의 기억의 바탕이 된다. 장소의 개념에는 위치의 개념도 들어가 있다. 또 어떤 단체나 사람의 직위, 혹은 바라보는 관점도 포함된다. 본다는 의미는 보고 있는 위치가 다르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신호를 위반하여 정지선을 어기는 차를 보고 화를 낸다. 그러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신호를 미쳐 못보고 정지선을 넘어서 횡단보도 중심에 멈춰 선다. 자신을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을 보고는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속으로 이야기한다.

 

모든 장소는 각각의 변화를 지니고 있다. 강과 산, 자동차 안과 밖, 밤과 낮, 사장과 직원, 서빙을 보는 사람과 손님, 보수 단체와 진보 단체 등은 서로 다른 변화를 간직하고 있다.

 

원래 없던 장소가 인간의 문명 속에 많이도 등장하였다. 일요일이 있는 장소와 없는 장소, 신발을 벗어야 하는 장소와 신어야 하는 장소, 걸어야 하는 장소와 뛰어야 하는 장소가 지정되고 만들어 졌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감정의 골이 만들어진다.

 

지난 휴가에 부산에 있는 용궁사 앞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좌회전 하는데 앞으로 오토바이 하나가 급하게 끼어들기를 시전 하였다. 너무 놀라서 급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오토바이는 쌩하니 사라지고 없다. 놀란 마음에 욕지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베트남을 갔는데 길에 있던 모든 오토바이가 차 앞으로 끼어들었다. 같은 상황인데 마음에서는 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입장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끝없이 일어나는 화와 감정은 문명이 만든 입장이라는 패턴에 의해 탄생되는 경우가 많다. 일요일에 문을 두드리는 예의 없는 인디언과 일요일이라며 문을 열지 않는 예의 없는 식료품 가게의 주인의 이야기는 내게 많은 생각을 선사해 준다. 오늘도 일어날 내 감정에게 천천히 생각해 봐 다 이유가 있을 거야 하려한다.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입장 속에 나부끼며 살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