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을 시작한지 네 달 째이지만 이제서야 처음으로 시험 감독으로 들어간다.
지금까지는 시험만 보는 학생의 입장이었다가 시험 보는 학생을 감독하는 입장이 되려니까 무언가 어색하다.

연구실에서 답안지를 챙겨들고 시험이 있을 강의실로 들어가서 앞 뒤 사람의 줄이 맞도록 자리를 정렬하고

혹시나 컨닝페이퍼가 어딘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닌지 강의실 구석구설 돌아다니면서 살펴본다.

"보던 거 집어 넣으세요."
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답안지부터 나누어 주고 있으니 교수님이 오셔서 시험지를 나누어 주시고 시험이 시작된다.

학생들은 불과 몇 분 전까지도 머릿속에 구겨넣었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어 샤프펜슬로 답안지 위에 기억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다.

미끄러지듯이 답안지를 채워나가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문제가 잘 안 풀리는지 머리를 긁적이거나 고개를 갸우뚱 하는 학생도 있다.


'나도 작년에는 저 자리에 앉아 시험을 보던 학생이었지.' 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제자리에 계속 서있으니 심심해서 강단 위를 왔다갔다 하면서 걷는다.

강단이 낡았는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학생들 방해가 될까봐 소리 안나는 부분으로만  천천히 걸어다닌다.

 

아까부터 나랑 몇 번인가 눈이 마주치는 학생이 있었는데,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것도 수상한 것이 혹시 컨닝하려고 맨 뒤에 앉은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그래서 살짝 옆으로 가서 그 학생의 책상을 살펴보았지만 수상한 점은 없어보였지만 의심을 거둘 수는 없다.

그러다가 그 학생이 다 풀었는지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가려고 하길래, 아직 마치고 나갈 시간이 아닌 것 같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러자 그 학생이 하는 말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 그제서야 오해가 풀렸다.

제출한 답안지를 살펴보니 삐뚤빼뚤 한 것이 무지 급하긴 했었나보다. 게다가 04학번, 아직 학교에 남아있는 걸 보면 마지막 학기여서 취업준비하느라고 부분등록을 한 모양이다.


시험시간이 중반에 이르자, 쉬운문제는 다 풀고 어려운 문제만 남았는지 턱을 괴고 싶은 생각에 잠긴 학생도 있고

'이건 아니야' 생각하며 지우개로 사정없이 답안지를 문질러 대는 학생도 있다..

다리를 꼬고 앉은 학생이 있어서 그 학생을 보니,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서 뇌로 가는 산소량이 적어지고 문제푸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학생이 긴장했는지 그냥 읽어보면 알 수 있는 사소한 내용도 물어본다. 그런 학생들은 그저 '아는대로 푸세요'라고 답해주면 된다.

하나둘씩 시험지를 내고 떠나는데 끝까지 남아서 한글자라도 더 쓰는 학생들은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히 적고도 모자라서 답안지 한 장 더 달라하기도 하고 답을 불러오기 위한 의식을 치루듯 손위에서 샤프를 춤추게 하는 학생도 있다.

손 안에서 샤프가 움직이는 시간이 차츰 줄어들고 이제 시험지를 정리할 시간, 응시인원의 반 정도는 끝까지 남아 시험지을 풀었다.

모른다고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IT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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