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사업상 벌여놓은 일들에 부쩍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있어서 자연과학 훈련시간 확보가

만만치 않아 이번 54회 천뇌는 발표를 생략하고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더군다나 발표시간이 최소한 1시간이상이니 이를 준비하려면 상당한 시간을 미리확보해야만 한다.

미리 김현미 선생님에게 살짝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다음날 천뇌모임 1주일을 앞두고 박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여건이 안되면 우주배경복사를 맡아서 한 30분정도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부담없이 발표를 하라고 하였다.

박자세베스트북에 소개된 조지스무트의 "우주의 역사"를 읽고 주말에 강의하는 내용을 참조하라고 

간단히 말씀하였다.


주중에 내내 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글씨 한자 제대로 읽기 힘들었고,

발표를 하루 앞둔 토요일에서야 비로소 온전히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침 6시부터 우주의 역사를 읽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만만한 느낌을 가지고 소설처럼 읽으면 될 줄 알았으나, 읽으면서 군데군데 어려운 개념과 이론들을 

교차해서 설명하는 대목은 이해에 상당히 시간을 소요하게 만들었다.

우주배경복사가 단순한 우주초기의 극초단파 복사를 측정하는 흥미있는 이야기 일거라고 막연하게 

예측하였던 게 얼마나 번지수를 잘못 찾은 생각인지 책을 읽는 내내 당황스러웠다.


기본적으로 양자역학과 입자물리학을 비롯한 물리학의 각 과목을 전반적으로 수식을 통해서 확실히 알아야만 

우주배경복사와 우주론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고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는거라는 걸 눈치채고 난 후에 

우주론이 태산같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책의 내용을 단 한번에 조망하고 요약하기가 만만치 않음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전체가 조망이 되던 말던 일단은 한번 읽는게 중요하다 싶어서 끝까지 정독하고나니 저녁 9시가 되었다.  

물론 시간을 확보하느라 식사도 한끼로 해결하였다.


다 읽고 났지만 개별적인 내용은 기억할 수 있으나 도무지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지 않고,

핵심적인 책의 스토리를 명료하게 파악할 수 없어서 난감함과 괴로움이 밀려왔다.

더군다나 우주배경복사의 측정이 가지는 의미조차 선뜻 파악이 안되었다.


이제 박사님이 지난 일요일에 한 137억년 우주진화 동영상 5강 강의를 통해서 우주배경복사의 줄거리와 

스토리를 파악하기로 작정하고 동영상을 세심하게 보다보니 새벽 3시가 넘어갔다.

이쯤되면 우주배경복사가 아닌 우주론 전체일지라도 윤곽이 잡힐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더이상 무얼 공부해야 하는지 방향감마저 상실되는 느낌이 들었다.


우주배경복사를 통해 들어간 우주론은 단순한 개별적인 이해가 아니라, 놀랄만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얽혀있는 물리적 개념들에 의해 전개되는 우주적 현상이 만든 질서와 구조를 파악해야하는 복잡한 

이해의 과정이었다.

시공간과 중력에 관한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과 입자물리학의 개념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들어가고, 

천체물리학과 천문학에 수반되는 관측천문학의 기본이 되는 관측기기에 관한 지식과 

전파천문학의 기본적 이해도 수반되어야 했다.

물론 전체적으로 열역학의 상전이에 관한 지식은 항상 배경과 전제조건으로 이해하고 있어야만 하고 

열역학에서 유도되는 우주론에 필요한 수식들은 기본적으로 마스터 한 상태여야만 했다.

너무 광범위한 영역에 풍덩 빠져 허우적대는데 지푸라기 하나도 손에 걸리는게 없는 느낌이었다. 

공부를 할 수록 헤어나올수 없는 타르핏에 온몸이 빠져 들어간 기분이었다.


이쯤되니 "간단하게.."라고 별 의미없이 툭 던지던 박사님말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예스"를 복창한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한시간짜리 수식발표를 한다고 하는게 나을 뻔했다는 후회막심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어느순간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끝까지 스퍼트를 다하자. 

그리고 언젠가 해야할 공부라면 어차피 이렇게 몰입하며 훈련을 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마음껏 이순간을 즐기자라고 생각하니 다시금 힘이 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모르거나 연결이 되지 않은 물리적 개념을 찾아보고 나름대로 머리속으로 연결해보다보니 어느덧

날이 하얗게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잠시라도 눈을 붙여 피로를 없애고 싶었다.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우주의 초기 모습을 상상하다 잠깐 의자에 앉은채로 30분 정도 조는걸로 수면을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비몽사몽간에 풀리지 않은 우주론의 수수께끼로 고민하다가 다시 정신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핵심사항이 명료하게 파악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기초적인 지식들마저 혼란스럽게 흔들리며 

뒤죽박죽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출발하여 어디에 있는 복사를 측정하는 것이지?

어디서 날라오는 것일까? 아님 항상 우주공간에 가득차 있는 걸 재는 것일까? 배경복사가 우주내에 가득차 

있다면 그 미약한 진공에너지만해도 어마어마한 양인데, 배경복사에너지의 밀도와 총량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출발점이 있는 것일까? 등 온갖 초보적인 지식마저도 의문의 싹을 틔우며  

헷갈리는데 일조를 하기 시작하였다.

기초가 부족하다 못해 부실하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까지 어설피 알았던 지식들을 응용은 커녕 확신조차 할 수 없는 수준임을 확인하자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샤워를 하고 정신을 맑게 하고 다시한번 우주의 역사를 읽어보자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한번 얽힌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들이 주의를 뺏어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찾아서 의문을

해결하며 두서없이 시간만 보내다 천뇌모임 발표장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정리가 되기는 커녕 무엇하나 제대로 파악이 안되었다고 생각하니 헛웃음만 나왔다.

더군다나 일찍오신 몇몇 회원분들이 몇가지 우주배경복사에 관해 질문을 하셨으나 아직도 해결못하고 있어서 

난감하였고, 발표전까지 해결못하면 뒤죽박죽인 상태로 발표할 수 밖에 없다며 발표시간에 함께 고민해 보자고 미리 양해를 구해두었다.


앞순위 발표자들의 발표가 끝나고 저녁 식사시간이 이어졌다.

아직도 머리속을 가득채우고 있는 것은 우주배경복사의 해결되지 않은 부분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식사를 하고 10여분 남짓한 시간에 우주의 역사 책장을 뒤적이며 생각에 몰입하고 또 몰입했다. 

마치 바둑둘때 초읽기에 몰려 옆에서 카운트를 하는 상황에서 수를 내는 기분이다.


마침내 절박한 상황에서 수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37시간만에 그간 머리속에서 혼란스럽게 드러나지 않았던 우주배경복사와 우주론이라는 분야의

전모가 안개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초읽기 시간속에서 숨가쁘게 수를 읽어가며 우주론과 배경복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실타래를 나름대로 풀기 시작하자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서 내심으로 환호성을 터져나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우주론과 우주배경복사의 측정을 둘러싼 질문에 대한 해답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투명하게 드리워진 커튼 뒤로 신이 우주를 만들던 작업장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순간에  Wayne Hu 박사가 "Wandering in the Background"라는 논문에서 장자에게 썼던 서문의 의미가 확 덮쳐왔다.


날아갈 것 같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박자세 훈련포맷에 맞게 발표를 해야한다고 다짐하면서도 

머리속에서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채 그간 박사님이 강의를 했던 내용과 우주의 역사에 나왔던 줄거리를 

토대로 발표를 마쳤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이야기하려다보니 상세한 의미연결이 안된채로 대충대충 건너뛰어 부족한 설명이

많았으리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내가 가지고 있는 짧은 지식을 이용하여 만든 엉성한 CMB 이해 스토리였다.


온도와 밀도가 매우 높았던 우주초기에 물질과 빛이 완전한 열적평형상태에서 오늘날 관측된 등방적 성격의 

흑체복사가 생성되었다. 이 흑체복사는 복사에너지의 파장에 따른 분포의 특성이 온도만의 함수이다.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서 우주배경복사는 처음에 감마선에서 출발하여, 엑스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 전파의 영역에 스펙트럼의 전영역을 옮겨왔다. 우주 진화의 순간에 열역학 1법칙에 의해 온도만 알면 그 순간에 전 우주에서 생성된 복사에너지의 파장에 따른 분포양상을 알 수 있다.

흑체복사의 광자들의 평균에너지는 복사온도에 비례하며, 그 광자의 파장에는 반비례한다.

따라서 주어진 부피에 존재하는 흑체광자들의 개수는 이들의 평균파장의 3승에 반비례하며, 

온도의 3승에 비례하게 된다.

우주가 팽창하면 복사파장도 팽창하는 적색편이의 현상이 나타나고 이때 광자들은 에너지를 잃고

우주팽창에 따른 평균파장의 증가로 복사온도는 감소한다. 

Z값과 우주의 크기와 온도는 모두 동일한 의미의 개념을 가진다.

즉 물질과 복사가 분리되던 시기에 우주의 온도는 3,000도 K에서 오늘날 2.7도 K로 하강하였고, 

광자들의 파장과 우주의 크기는 오늘날과 비교하여 약103배 정도로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주의 구조형성을 결정한 인플레이션이론에 따라 무한 팽창을 하던 우주가 편평한 우주를 만들며

계속 팽창을 함에 따라 우주에 양성자와 전자의 밀도가 점점 감소하고, 이들과 고온의 상호작용을 하던

복사 역시 팽창에 따른 파장의 증가로 에너지를 잃고 더이상 양성자와 전자의 결합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물질과 복사가 분리되는 순간에, 우주는 안개가 걷히듯 맑고 투명하게 개었고 

복사는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갔다.


빅뱅후 38만년에 우주의 커튼이 걷히기 이전의 우주는 열역학과 입자물리학을 기반으로 수식을 통해 

짐작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 커튼(Last Scattering Surface)이전은 들여다 볼 수가 없기때문이다.

언젠가 인류가 중력파와 중성미자를 관측하는날 빅뱅부터 38만년까지의 시공을 들여다 볼 수 있으리라.


이러한 빅뱅의 과정은 무한한 공간속의 어느 한 구체적인 지점에서 시작된게 아니라 

우주의 모든 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10-33크기의 초기우주는 양성자 보다도 작은 모든 물질의 압축 그 자체였고, 

빅뱅의 순간에는 우주의 바깥은 물론이고 심지어 텅빈 공간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복사는 모든 곳에 있고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균일하게 등방적으로 측정되는 우주배경복사는 오늘날 우주가 은하와 은하단등으로 이루어진 

불균일한 밀도로 구성된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부족하다. 

좀더 정밀한 계측기기를 통해서 초기 빅뱅직후의 온도의 미세한 불균일 온도측정(10만분의 1도 편차)을 

통해 우주의 구조가 은하의 출현을 가져오는 과정을 밝혀야만 한다. 

이러한 온도의 불균일은 복사압력과 중력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밀도의 불균일을 가져왔고,

이로인해 오늘날 은하형성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파장과 온도와 밀도의 밀접한 연관과 변환관계를 통해 빅뱅의 초기과정을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측정하는 우주배경복사의 파장과 온도의 미세한 편차의 측정을 통해 빅뱅초기의 에너지와 물질들의

밀도요동을 계산하고 이를 통해서 당시 우주의 상태와 구조를 확실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오늘날의 우주의 구조와 존재들의 기원이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다.

이처럼 우주배경복사(CMB)는 우주초기의 지문을 담은 우주의 화석이다.


빅뱅시 대칭이 깨지는 순간의 양자적 요동의 결과 우주의 모든 것이 생성되기 시작했고, 

오늘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양자적 요동과 137억년의 시공간상에 연결이 되어있는 것이다. 

아니 양자적 요동과의 연결이 아니라 양자적 요동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공은 멀리 떨어진 지점이 아닌 바로 내가 서있는 이 시공이였다.

내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만이 아니라 내가 숨쉬는 이 시공도 빅뱅의 양자적요동이 

137억년의 시공간상에 팽창을 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주위의 모든것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였고 

표현할 수 없는 눈물어린 감동이 솟구쳐 올랐다.

시공간축으로 137억년을 달려온 지금 서로가 구분되어 달리 보이지만,

지구상 생명체도 머나먼 은하도 텅빈 공간도 모두가 하나였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엉성하고 논리적 물리적으로 빈틈이 많지만 내 나름대로 우주론에 관한  대강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니 

기쁘기 그지 없다. 

엉성하고 빈틈이 많은 부분을 세밀하게 채워넣는 과정의 훈련에 매진을 더해야 겠다는 각오가 새로워졌다. 

우주를 입체적으로 아는데 필요한 지식이 무언지 어느 수준으로 훈련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우주론을 훈련하면서 채워지는 지식은 곧바로 우주를 입체적으로 상상하는 재료로 쓰일 것이다.  


박문호박사님이 왜 박자세 회원이라면 우주론은 피해서는 안되는 필수과목이라고 했는지

열역학은 남자가 필생을 걸고 도전할 위대한 학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는지 그 의미가 전달되었다.


모든 자연과학공부는 최후에 우주론으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