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明이다.

밤의 장막은 아직 대지에 잔영을 깊게 드리우고 있다.

도요타 한 대와 카니발 네 대는 스물네 명 사막의 노마드를 싣고 1,300km 벙글벙글 대장정의 길을 나서려고 출정을 기다리며 도열하고 있다

차는 새벽의 어둠을 가르며 달린다.

사위는 정밀하다. 

 

진군 나팔소리가 들려온다. 우렁차고 당당하다.

라다메스 장군의 출정식이다.

승리를 확신하는 장군의 군인으로서의 결기와 연인 아이다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다짐하는 씩씩한 목소리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1막 「거룩한 아이다」다.

절정기 플라시도 도밍고의 화려하고 힘찬 칸타빌레가 일품이다.

 

감동을 가득 안겨주었던 안드로메다, 대마젤란, 소마젤란성운도, 너무도 친숙했던 남십자성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아득히 지평선에 희붐하게 빛이 어린다.

하늘이 서서히 열린다.

회색빛이 연미색으로 물든다.

여명이다.

 

길은 일직선이다.

正東이다. 一望無際 無車之境이다.

적요하다.

질주본능이 굼틀댄다. 고혹적인 최면이다.

계기판은 180을 넘어 200을 가리킨다.

주행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강렬한 충동이 이성을 마비시킨다.

긴장의 끈이 느슨해진다.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속도계는 200km를 넘어 자꾸만 올라간다.

나는 지금 금지된 장난을 저지른 소년이 되었다.

 

「사랑은 장밋빛 날개를 타고

탄식의 한숨은 하늘을 달려

희망은 산들바람처럼 방안에 나부끼고

추억은 사랑의 그리움을 일으켜 세우나니.」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만리코.

그가 겪을 고통을 노심초사하며 애간장을 태우는 레오노라.

자기 한 몸 희생하여 사랑하는 남자를 살리겠다는 여인의 열정과 절박함이 가슴을 쥐어짜는 심한 비브라토로 여명의 공기를 서늘하게 한다.

이제는 전설이 된 마리아 칼라스의 아직 발랄했던 시절의 「일 트로바토레 4막」<사랑은 장밋빛 날개를 타고>. 절창이다.

힘들고 척박한 세상이지만 열정이 있기에 살아간다.

우리는 지금 46억 년 지구 생성, 아니 137억 년 우주 탄생의 시원을 찾아 떠나는 사막의 Il trovatore, 방랑가객이다.

 

지평선은 타원형이고 하늘과 땅은 끝없이 맞닿아 있다.

색은 코발트 마린 블루다. 투명유리 그릇 안에 파란 물감이 번질 듯이 흩어진다.

하늘 끝자락에 노랑 빛이 물든다. 옅은 주황빛으로 점점 붉어진다.

페퍼민트 옐로가 된다. 버밀리언으로, 로즈레드로 카멜레온처럼 변신한다.

회오리바람이 인다. 꽃구름이 스펙트럼을 이루며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스멀스멀 너울거리며 파도가 밀려온다.

금세 바다에 풍덩 빠질 것 같다.

신기루다.

환영이다.

새벽 여명의 산란 현상이다.

서편 하늘에는 하현달이 한 점 조각배처럼 외롭게 떠있다.

 

「지극한 정성으로 신들의 마음까지도 감복시켜 저승에서 아내를 데리고 나오다 순간의 실수로 다시 아내를 죽게 만든 남편의 절망과 비통을 탄식하며 부르는 노래다.」

 

노래의 감촉은 냉랭하다.

템포는 느리고 표정은 진한 슬픔이 넘친다.

남편 오르페우스 역을 테너나 바리톤도, 초연 당시의 카스트라토도 아닌 메조소프라노가 부른다.

아그네스 발차의 서늘한 목소리다.

 

작년에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되었네.」라는 노래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바로 그녀다.

억눌린 사람들의 소박한 비애를 애잔하게 가슴 속에 스며들게 부른 게 “더 좋은날”이라면, 사랑의 굳은 의지가 힘차게 지상으로 솟구치고 있는 게 이 아리아다.

 

글루크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3막」<에우리디체 없이 무엇을 할까?>다.

오르페우스의 애달픈 탄식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진정한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준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귀중한 사람이다.

차는 경사진 언덕을 달린다.

지평선이 포물선을 그리며 내 눈 아래에 있다.

관목 사이로 태양이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내 눈과 직선으로 마주친다. 강렬하다. 그러나 작열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마주 볼 수 있다. 나를 나직이 올려다보며 수줍게 떠오른다.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비현실적이다.

 

방사형 털구름이 황색, 분홍색, 회색 띠를 두르고 동녘 하늘을 수놓고 있다.

주황빛 유리구슬에 아우라와 섬광이 푸른 하늘에 물든다.

드디어 Kimberly의 동쪽 하늘에 태양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백일홍 빛이다. 이글이글 타오른다.

다홍빛 마블링 물감이다. 홍시가 떨어져 질펀한 색이다.

태양이 나에게 정면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눈이 부시다. 레이저 광선을 쏜다. 빛의 향연이다.

 

「아,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술잔을 들고 흥청거리는 가운데 시골 청년 알프레도와 고급 창녀 비올레타의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椿姬로 익히 알려진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1막」의 유명한 <축배의 노래> 이중창이다.

 

사랑하지만 주위의 편견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나는 슬픈 얘기다.

원작자 뒤마피스와 작곡가 베르디의 실제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두 예술가의 슬픈 기억이 절절하게 스며있다.

단순한 연애물로 해석되나 은연 중 자본주의 성장 과정에서 배태된 가족 이기주의와 소외 계층의 희생이라는 모순된 세태를 고발하는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다.

마리아 칼라스와 디 스테파노가 펼치는 호탕하고 변화무쌍한 이중창이다. 쥴리니의 절묘한 관현악이 우리를 한 발 더 화려한 환락의 세계로 이끈다.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찬란한 아침이다.

 

정결하다.

아름답다.

활홀감이 온 몸을 휩싼다.

 

감동이 극에 달하면 머릿속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대자연의 장엄한 합창이 빛의 쇼와 더불어 끝없이 이어진다.

평생 다시 보기 힘든 경이로운 광경이다.

 

오, Kimberly의 태양이여!

 

차는 계속 질주한다.

무한경계의 검붉은 대지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