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죽은 짐승의 남은 뼈조각에서 골수를 빼먹고, 땅 파서 뿌리 빨아 먹던 시절에 나는 나였다.
무리지어 사냥을 하며 맘모스를 쫒을 때 나는 늘어났다. 농사를 지으며 함께 벼를 벨 때
나는 또 커지고 많아졌다.
가족이 생기고 부족 형태에서 국가가 되면서 내어 놓아야 할 세금이 생기며 걱정어린 내가
태어났다. 돈이 만들엉지고 돈에 시간과 공간을 살 수 있게 되어 나는 돈의 양만큼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종교가 태어나고, 법이 만들어지고, 수 많은 규칙과 도덕과 윤리, 너와 나를 구별하고
차별하고 격을 나누니 나는 내가 생각한 범위를 훌쩍 넘으며 세상을 채웠다.
수 없이 늘어난 나가 서로를 앞 세워 살고 있다. 그래서 바람에 흔들리고, 돈에, 도덕에,
양심에, 사람에, 향기에, 소리에, 빛에, 그리도 흔들린다.
내가 내 속에 너무도 많다. 흔들리는게 내 오래된 역사다.
얼마 전 버드맨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마약 중독으로 재활 생활했던 주인공의 딸이
재활원에서 했다며 두루말이 화장지에 점선을 그어 놓았습니다.
두루말이 화장지 전체가 점선으로 그어져 있습니다. 과거의 인기와 현재의 시간에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마지막 두루말이 화장지를 때어냅니다. 그리고는 때어낸 화장지 한 칸을 들이밀며
이것이 인간이 있었던 시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시간을 보면 그저 짧은 시간인데 무엇이 중요한게 있냐면서 말이죠. 주인공은 그 얘기를 듣다가
무심코 화장지로 코를 닦습니다. 딸이 아버지가 지금 막 인류를 멸망시켰어요라고 말합니다.
인지(cognition)이 있는 이유가 사회라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중요한 의미였고
뜻 깊은 성찰이었습니다. 가끔 떠오르는 생각 중에 내 곁에 혹은 우리 곁에 있던 사람을 떠나
더 오래 지속되는게 그닥 없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에 내내 가슴 아파하며 떠오르기를 반복하고 살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각자의 세계에 들어찬 이야기에 전전긍긍하며 그렇게 흔드리고
있습니다.
수렵생활을 하며 하루 먹거리 발견하고 좋하하며 행복하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 수 많은 시간이 지나 오늘의 먹거리가 아니라 저 멀리 있는 시간을 걱정합니다.
중학생만 되어도 대학을 걱정하고, 대학생이 되면 직장을 걱정하며, 직장인이 되면
정년을 생각합니다.
십 분을 넘기지 못하는 동물의 인지능력이 수 십년 혹은 수 백년을 내다보며 걱정을
하는 천형을 받고 사는게 우리네 삶인가 봅니다.
지금에 머물며 어린시절에 목메이고, 지금에 살며 내일을 모레를 그렇게 걱정합니다.
좋은 질문을 할 때 입니다.
나는 누구였는지 말입니다.
몽골 초원을 달리던 그곳에
덩그라니 놓여져 있던 동물의 머리뼈가 떠오르네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현장에서의 1박!
그리고 내쳐 달렸던 그 길을 기억합니다.
매일 매일 흔들리는 속에 , 수많은 선택속에
오늘도 나의 역사는 만들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