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마 천문대를 올라가는 길은 커다란 소나무가 늘어서 아름답다. 2012 3월에 올라간 팔로마는 짙게 구름이 껴있었고 심지어는 검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고 천문대는 아니나 다를까 닫혀 있었다. 천문대 앞에 휴게소의 관광객은 우리 이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 높이 솟은 소나무과의 침엽수만 빗줄기를 머금으며 연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어쩔수 없는 것은 어쩔수 없는 거다.  대전에서 왔던, 대구에서 왔든, 태안 반도에서 아니 제주도에서, 경주에서 왔든 비는 내리는 거다. 멀리서 사람이 왔다고 빗줄기가 사정을 봐주는 법은 없다. 결국 첫 번째 경로를 뒤로 하고 아쉬움을 품은 채 차의 핸들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때였다.

'퉁' 하니 빗줄기를 뚫고 무언가 차 지붕을 쳤다. 톡이 아니다. '퉁' 이다.

가는 차를 막을 정도의 소리다. 펑크가 났다고 봐도 문안한 소리이다. 운전을 하고 있던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고스라니 맞으며 멈춰섰다. 그리고 내려서 소리의 정체를 보았을 때 소스라쳤다.

솔방울이었다. 머리통 만한 솔방울기억에서 스쳐 지나간 표지판이 떠오른다. 들어가는 입구에 하이킹과 운전할 때 솔방울을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팔로마 천문대를 향하는 표지판 보다 크게 써 붙여 있었다. 짧은 영어로도 충분히 해석이 가능한 문구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중요 한 것이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솔방울로 만든 솔방울 술을 좋아하는 우리 아버지가 떠올랐다. 기껏해야 자두 정도 크기의 솔방울로 술을 담궈 먹었던 내 기억에 수박만한 솔방울이 차 길을 막았을 때 그 어이없음이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내 눈 앞에 빗줄기와 함께 떨어지는 솔방울을 보며 저걸로 술을 담그면 얼마나 큰 술통이 필요할까 하고 있었다. 절래 웃음이 나왔다. 술 좋아하는 우리 아버지의 너털 웃음을 떠올린 것은 찰라였고 빗줄기는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삶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그 솔방울을 느낀 이후로는 장담하는 버릇은 사라졌다. 머리통만한 솔방울에 죽을 수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세요.라고 친절하게 써 있는 표지판을 보고 헛웃음 지었던 나를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각자마다 다른 솔방울이 떨어지는 법이다. 시간이 그런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다. 닥친 상황을 말할 때 솔방울의 크기가 다른 법이다.

얼핏 보아도 20여 미터의 소나무에서는 수박 크기의 솔방울이 떨어진다. 그게 중요하다. 인생의 소나기는 그렇게 쏟아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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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마 천문대 앞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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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리만한 솔방울이 빗줄기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