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나무

 

커피나무 화분을 하나 샀다. 나중에 커피열매를 거두자고 산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신기해서 키워보고 싶었을 뿐이다. 몇 달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크지 않는다. 쑥쑥 커 주었으면 바라지만 이 놈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일 들여다봐도 그저 그 턱이다.

 

커피나무를 처음 본 것은 슬라이드를 통해서였다. 60년 대 초입에 제물포고교의 김 찬삼 선생이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와서 귀국보고 강연을 하는데서였다. 극장을 빌려서 했는데 안에 들어간 청중보다 자리가 없어 극장밖에 서있는 사람이 더 많아 급히 확성기를 매달아 밖에서도 듣도록 마련할 정도로 정보에 목이 매 말랐던 시절이었다. 다행히도 서서보긴 했지만 안에서 슬라이드를 보는 영광을 누렸다. 큰 나무에 커피열매가 주렁주렁 열렸을 거라고 상상했는데 넝쿨식물이라 덤불이 진 사이로 빨간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동란 이후 미군들에게 보급되는 군수품상자가 민간에도 몰래 유통되었다. 어릴 적 이 상자를 통째로 받은 적이 있다. 요술 상자로 불리어지는 통속에는 애들이 좋아할 맛있는 물건들로 빼꼭히 채워져 있었다. 다른 것은 눈으로 보고 다 알겠는데 단하나 어떻게 먹어야 되는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카키색 은박지에 들어있는 검은 가루이다. 맛있는 냄새가 나서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니 탕약처럼 지독하게 쓴맛이 나는데 뒷맛은 약간 개운했다. 그 때는 그것을 물에 타 먹을 줄도 모르던 터라 남은 것은 죄다 버려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스턴트커피라는 물건이었다.

 

오래전, 산중 토굴암자에서 일 년을 산적이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일꾼을 사서 땔나무를 장만했다. 그때만 해도 커피가 귀한 시절이라 새참시간에 한잔 대접하면 아저씨들이 정말 고마워하면서 마셨다. 일이 끝나고 돌아갈 적에 아깝지만 남은 커피를 세분에게 나눠드렸다. 다음날 아저씨들이 남산만한 누렁둥이 호박을 하나씩 지게에 짊어지고 와서 주고 갔다.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던 커피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예부터 마시던 숭늉만큼 우리들과 친숙해져 너나할 것 없이 누구라도 마시는 대중의 기호품이 되어버렸다.

 

인스턴트커피 이외에 마신 적이 없었던 터라 일본 유학 가서 마신 원두커피는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기숙사 옆에 “재즈카페”라는 간판을 건 곳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주인장이 커피를 내리는데 여간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었다.

“대강 대강 해서 빨리 주세요!”

어느새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버린 탓에 무심결에 내뱉어버렸다. 커피 내리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내리는 손길이 더디기만 한 것 같아 한마디 했다. 아랑곳 하지 않고 주인장은 싱긋이 웃기만 하고 느릿느릿 계속하는 것이었다. 맛은 잘 모르겠는데 내리는 향이 홀 안에 가득했다. 그 카페 창가에 크게 자란 커피나무 한 그루가 놓여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아이는 많아봐야 열 살 정도였다. 빨갛게 익은 커피콩이 담긴 자루를 힘겹도록 지고 와서 바닥에 깔린 멍석에 부어놓는다. 따가운 뙤약볕아래 저렇게 힘에 부치게 일하는데 하루 일당이 2 달라 정도라니! 정말 말도 안 돼! 라는 소리가 저절로 입 밖에 나왔다. 농장의 커피나무에서 익은 열매를 따는 사람은 주로 할머니들인데 사정은 거의 비슷했다. 우리들이 복에 겨워 원두가 잘 볶아졌느니 ,향이 좋으니, 신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져 있느니, 풍부한 거품이 입맛을 자극한다느니 라는 소리를 하고 있는 동안 한쪽에서는 가진 자의 입맛을 위해 힘겨운 노동을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잔의 커피에도 많은 사람의 피땀이 서려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뭐든 군말 없이 마셔야겠다고 다짐했다.

 

음식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낸 글에 ‘오관게’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

그 첫째가 개공다소양피래처(皆功多少量彼來處)이다. 풀이하면, 이 음식이 오기까지 공들임의 많고 적음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를 헤아려 감사히 이 음식을 받겠다는 뜻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감사의 기도는커녕 맛 타령만 해대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커피콩에 얽힌 사연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음식들도 매 한가지이다. 볍씨를 싹틔워 농사지어서 밥이 되어 우리 입에 들어오려면 적어도 육십 번이상의 손을 거쳐야 된다는 글을 읽고 감탄했었지만, 그건 읽을 때뿐이고 다시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사다 심은 커피나무의 이파리가 진초록을 띄고 윤기를 더해간다. 이젠 빨리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국땅에서 자리 잡으려고 고생하는 나무를 위해 노래라도 불러주어 위로하고 싶어진다. 다시금 커피열매 한 알갱이가 주는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