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었다. 컴퓨터는 '냉정과 열정' ost를 쏟아내고 있었고, 치료실 한 구석에서는 청소가 한참이었다. 난 내 책상 귀퉁어리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장 하나가 툭 튀어나와 내 앞을 가득 채우더니 날 잡아 먹어 버렸다.

 

내 인생 전체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것이 내게도 있었다니 하며 난 감탄했다. 내 인생이 갑자기 럭셔리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잡아 삼킨 " Establish ties." 어린왕자에서 사막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관계를 맺는다는 건 길들여지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왠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열어 놓은 창문에서 들어 온 따뜻한 봄바람처럼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름모를 풀 꽃 하나라도 사랑하고 볼 일이라는 글귀가 내 안을 맴돌았다.

 

때때로 이런 현상이 생긴다.

 

삶은 무언가 의미를 품어야 한다는 듯 나를 옥죄어 오고,

살아온 이야기는 무언가 남겨야 한다고 압박을 하고,

소복히 내린 눈은 추억 하나라도 꺼내야 한다고 속삭이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데도 그러하다. 주변을 보니 책이 내게 말을 걸어 온다.

 

스티븐 미슨의 마음의 역사는 ' 너의 마음이라 불리는 의식 세계는 쉽지 않은 시간이 걸렸단다.'

라고 말을 하고 앤드류 파커의 눈의 탄생은 ' 빛이 있으라 하메 눈이 생겨났다. 그리고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고

한다. 앨런 터너, 마우리시오 안톤의 에덴의 진화는 '사는 것이 나를 바꿨단다. 시간과 공간이 아프리카를

물들였지. 눈에 보이는 모든 삶에는 살아야만 했던 의미가 있는거야'라 한다.

 

리처드 도킨슨의 조상이야기는 '너에게 오는 길, 그거 네가 선택한 것이 아니야. 삶은 기적과 같지.'

라고 말하고 있다.

 

수 십권의 교과서는 내게 말한다. 더 많이 알아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내게 쌓이는 지식의 양은 평가하지 말고 들어라 한다.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어금니 꽉 깨무는 시간은 나를 덧없게 한다.  더 많은 해석과 지식과 사건이 주는 정보는 ' 의미없는 세상에 발버둥치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

 

그리고 알게 된다. 발버둥치는 간절함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눈이 많이 내린 2012년 12월 5일 저녘 11시가 넘은 시간에 박자세 사무실에서 회의가 끝난 후 집으로 들어오는 집 앞은 누군가가 눈을 치워 놓았다. 감사함이 일어난다. 묵묵히 눈을 치웠을 이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시공의 사유는 어쩌면 깊이 녹아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연결하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문 앞에 깨끗이 치워진 계단을 오르며 관계를 생각한다. 나도 관계 속에 있었던거다. 너무도 따뜻한 세상 그 곳에 놓여 있었던 거다. 그런 해석을 만들고 싶다. 더 많는 정보와 지식, 헤아릴 수 있는 현상의 해석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목놓아 부르는 이런 이야기가 슬프다. 괴롭다. 의미없다 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이에게 조금만 더 세상을 보고, 더 열심히 세상을 알아가는 노력으로 감정의 끝자락에 놓인 세상 너머에 관계 맺으며 일어나는 현상이 있음을 알게 하고 프다.

 

 

이것이 어쩌면 내가 박자세를 통해 느낀 'Establish ties.'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