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쪼개고 순서를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이지요.

그리고 연말 연시, 시간에 끝과 시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통과 의례 또한 여전합니다.

2013년 말, 한국사회는 대자보 바람이 불기도 했습니다.

무언가 써서 붙인 다는 것, 글자 혹은 언어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계기도 됐지요..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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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내 방 보드에 시위하듯 남겨놓은 메모.

'싸돌아 다니는' 아빠와 '방학이지만 바쁜' 요즘 아이들.

내용이야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 메모를 보면서 내 속에 새로운 감각 기관이 하나 생긴 듯 했습니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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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붙은 종이를 봤습니다.

몇 줄 안되는 글이지만 이 역시 시대가 읽힙니다.

가수의 꿈 혹은 실직, 노래방, 부실 시공, 컬러 프린터까지.

 

엊그제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윗집 아주머니가 울부짖으며 싸우는 소리를 가만히 듣다나오기도 했습니다.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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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세다, 잠들게 해주소서!

혹은 돈은 (힘이) 세다.. (그냥 포기하고) 잠들게 해주소서!

쉼표 하나로 재미가 납니다.

돈과 대박.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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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가 만든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이 프로젝트 그룹의 멤버로 나온다고 해서

순천 들른 김에 잠깐 가봤습니다.

아오이 소라는 일본의 'AV(Adult Video) 배우'입니다. AV배우라는 말대신 '포르노 배우'라고 하는 편이

알기 쉽겠네요. 그녀는 뿐 만 아니라 일본 TV 드라마에도 출연하기도 하고, 얼마 전엔 중국에서 싸인회를

갖기도 하면서 무수한 뒷얘기를 남겼고, 국내에도 다녀간 걸로 압니다.

20대 젊은이들로 이뤄진 이 밴드는 가수 이소라씨의 노래를 좋아해서 그냥 '아오 이소라!'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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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에게 배운다. 

니시오카 쓰네카즈라는 궁궐 목수가 평생 나무만 바라보면서 살아온 얘길 써 놓은 책입니다.

연말에 누군가 다른 책 다 버려도 이 책은 꼭 읽으라고 불콰한 얼굴로 말한 게 떠올라 샀습니다.

천년을 산 나무는 목재가 되어서 다시 천년을 살 수 있다,

한 3백년 후 사람이 나무를 벨 수 있도록 나무를 심는 옛 사람들의 시간관념 등등.

여러가지 상념을 불러오는 책이었습니다.

 

나무에 대한 얘기를 하는 목수의 구술을 받아 적어

다시 나무로 만든 종이의 책에 인쇄가 되어

나무를 생각하게 됩니다.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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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세 수첩'이라는 저 유명한 양지사 WEEKLY 48.

2014년판은 손에 들어오는 느낌도 질감도 예전만 못해서 몇 권 사두고도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지사 직원은 '많은 분이 아쉽다고 얘기합니다'고 하더군요.

 

 

글자를 보고

기억을 하고

기억을 불러오고

생각을 하고

다시 여러 기억을 조합하여

창조적인

매력적인

사고를 언어를 기억을 창조하고 싶군요.

 

2014년엔,

쓰다가

잠들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