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직업은 중추신경계 손상된 사람을 치료하는 일이다.

 

1999년 5월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세상에 무엇이 중요한지 금새 알게 된다.

부와 명예, 권력 등의 휘황 찬란한 단어를 묘사하기도 전에 알게 된다.

 

통장 잔고 액수에 고민하고, 유행에 맞춰가기 위한 노력, 부족주의적 사고 방식에 걸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최선이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는 금새 사라지게 한다.

 

죽음과 맞닥드리는 사건은 모든 것의 생각의 기준을 재정립 시킨다.

 

어느날이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실려 가셨다고 한다. 병수발을 하던

어머니는 어깨뼈가 9개로 조각나서 어깨를 잘 못쓰시는 상황이었다.

 

성당에서 독거노인을 위해 김치를 500포기를 담그시고 마지막 고춧가루 잔뜩한

수돗가를 정리하시던 상황이다.  이미 얼어버린 수돗가에 물을 부으시다 넘어지셔서 어깨뼈가

부숴 지셨다.

 

누님이 하던 사업은 부도가 나서 집안에 있던 현금이란 현금은 산산조각이 나서 어머니의 어깨뼈처럼

부서지고 있던 그런 시기이다. 심지어 나조차 잘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직장은 팀장과의 불화가

겹겹히 뭉치던 그런 상황이다.

 

세상살이가 그리도 빡빡하고 서러우며 스치는 바람에도 눈물이 글썽이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날도 뇌성마비 아동을 치료하는데 그 아이에게 소리를 치는 어머니를 보았다. 아이는 머리를 몇 번을

갈라내고 쪼개었는지 머리카락이 동여매진 수술 자욱 옆에만 송송 나있던 녀석이었다. 잘 걸으라고

그렇게 잘 걷던 녀석이 이게 뭐냐고 소리치가 통곡을 하는 어머니를 보았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내 상황이 도대체 뭐가 그리고 힘든 것일까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짐을 했었다. 치료실 들어서는 자동문을 지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어금니 꽉깨물어서라도 웃음을

지어야겠다고 말이다. 돌아서서 바라보면 내 얼굴의 찌뿌림이 불안이 되는 상황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에 알게 된 이야기이다. 모든 기준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전개되면 무엇이 남는지를 알게 된다.

세상은 자극으로 가득하고 그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 알게 된다.

 

뇌성마비 아이 중에 걷지 못하는 것이 한 때는 뇌의 이상만으로 그러한 줄 알았다. 뇌졸증 할머니가 밥 맛이

떨어지는게 그냥 어딘가 안 좋아서인 줄 알았다.

 

다 내 모름의 내용이 만든 착각이다. 잘 못 걷는 뇌성마비 아이의 발에 있는 감각 수용기가 잘 걷는 아이보다

숫자가 적고,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는 근방추의 크기와 역치가 낮으며, 피부의 탄력성이 떨어져 피부 감각

수용기의 수가 적음이다

 

뇌졸증 걸린 할머니는 팔 다리를 못 움직이는 현상만이 아니라 내장의 활동과 감각을 담당하는 영역 또한

함께 동반 손상되는 현상이다.

 

자극이 닿는 순간 공간이 형성되고 기억이 확산된다. 모든게 공간이다. 기억이 공간 위에 들어서 있다.

기억을 만드는 해마의 세포는 모두 장소를 통해 감각이 체계화되고 구체화되며 획일화된다.

 

내 몸이 만든 그 수 많은 감각을 받아들이는 수용기가 그 세계를 만든다. 발바닥의 압각수용기, 근육이

움직임을 느끼는 근방추, 관절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골지건 기관, 온도를 느끼는 온도 수용기 등의

수용기의 숫자는 내가 움직이지 않고는 늘어나지 않는다.

 

건강이란 결국 내가 움직여 활성화 시켜 느끼는 세상이다. 몸으로 들어오는 자극은 어떤식으로 든지

부호화된다. 뇌가 전기적 화학적 자극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이 만든 자극은

뇌로 유입되면서 거대한 전기적 흐름 속에 물결이 된다.

 

그 물결의 이름 중에 슬픔도 괴로움도 언어화 되어 종획지어진 결과일 뿐이다.

 

언어는 감정을 쏟아내는 혹은 압축하는 현상이며 장치이다. 거대한 인간의 틀 속에 몇 몇 이야기만이 시간에

고착되고 화석화되어 저장된다. 그리고 각자의 기억에 남겨지고 사라진다. 언어화되지 못하고 문자화되지

못해 남겨지지 못한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자극은 많은 것을 열어 젖힌다. 하늘, 나무, 열매, 햇살, 따뜻함, 어머니, 아기, 포옹....... 은 언어가 만든

구획화이며 체계화이다.

 

감정은 어떠한가. 슬픔, 기쁨, 기다림, 외로움, 정열, 사랑 그리고 화 어떤것도 고정되고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만의 현상이다.

 

나이가 들며 일어나는 현상은 모두 내 몸 안에 감각 수용기의 숫자의 줄어듬 혹은 퇴화되는 현상의 연장이다.

나이가 들며 클레식 음악이 좋아지고 전경의 다채로움이 어지러워지는 현상이 본인의 취사 선택이 아니라

끝없이 밀려올라 오는 감각이 만든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아무리 감각이며 우리가 언젠가 슈퍼노바 폭발의 범위내에서 지구라는 행성이 사라지고 다시

차디찬 다이아몬드가 되어 만나다 하여도 지금 이 자리에 이 순간에 쏟아지는 감정의 뿌리가 있다.

 

맞닥드리는 사건에 의해 열린 기억은 시간을 거스르고 공간을 점령하여 내내 멍하니 나를 파고든다.

인간이 만든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현상임을 느끼고 아는데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존재한다.

 

그게 내가 만나는 삶의 접점이 만든 이야기며 성숙한 정신을 통해 일궈내고 해석해내는 인간의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삶의 접점은 현실과 현재도 내 안에 풍겨지고 불어나는 이야기임을 분명히 확고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