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경주박물관 특별전시실이다. 경주왕릉에서 나온 출토물이라는 팻말이 붙은 유리그릇 앞에 멈추었다. 약간 푸르스름한 빛깔을 띤 투박한 그릇이다. 깨어지고 금간 곳도 있어 투명한 실로 묶어 놓았으나 기품이 있어 보인다.

   ‘신라, 서아시아를 만나다라는 특별전시에서 만난 유리그릇은 어쩐지 눈에 익었다. 이 그릇과 비슷한 것을 다른 데서도 본 듯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일본의 미호(MIHO)미술관이었다. ‘고대 글라스-이집트에서 중국으로라는 전시에서였다. 이 전시를 본 뒤, 유리에 대한 편견과 얄팍한 지식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워 다시금 분발해 유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공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내 짐작은 맞았다. 왕릉에서 출토된 유리그릇은 미호미술관에서 만난 것과 거의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옆에 미호미술관에서 협찬을 받은 유리제품들이 몇 개 더 전시되어 있었다. 다시 보게 되니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이 무슨 기막힌 인연일까.

   미호미술관에서 유리그릇을 볼 땐 지금과 같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엔틱 글라스였을 뿐 이었다 경주박물관에 놓여 있는 유리그릇은 달랐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조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미호미술관에서 샀던 도록을 즉시 펼쳐보았다. 4세기에서 6세기사이 동지중해 연안에서 출토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중해 연안에서 출토되었다면 로마시대의 유물임에 틀림이 없다. 년대를 보니 신라가 흥성할 때의 시기와 딱 맞아 떨어졌다. 나는 이 기막힌 사실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학자들이야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했다는 뿌듯함이 온몸으로 저려왔다.

   유리라고 하면 지금은 흔한 물건으로 여긴다. 그러나 유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에서는 보석으로 취급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 예로 불교 경전에서는 일곱 가지 보석중의 하나로 꼽았고 구약성서에는 황금에 필적하는 보물로 여겼다. 시대가 바뀌어 로마시대에 들어와서는 사람들 가까이에 다가와 멋진 그릇이 되는 과정을 거쳐 왔다. 이때 만들어진 그릇을 로만글라스(Roman glass)라고 부른다.

   역사를 모르면 단순히 보잘 것 없는 유리그릇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지나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유리그릇은 크나큰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신라가 얼마나 번성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옛 신라인들이 유럽까지 무역의 영역을 넓혔다는 건 그 당시 신라의 국력이 그만큼 강했다는 것도 말해준다. 로만글라스를 사용할 정도로 신라의 왕실문화가 화려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는 유물인 셈이다.

   왕릉에서 출토되었으니 왕실에서만 사용하였으리라. 통일신라시대의 왕들이 궁중연회에서 이 유리잔을 기울이며 술을 마시고 태평성대를 노래한 잔이었을까. 아니면 왕과 왕비가 탁자에 마주 앉아 서로 즐기던 술잔이었을까. 상상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아무튼 서민들은 가까이 접해 보지도 못하고 감히 만져보지도 못한 귀한 물건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로만글라스의 깨어진 조각도 버리지 않고 목걸이나 반지의 알맹이로 쓸 만큼 귀히 여긴다. 뿐만 아니라 고가에 팔린다고 하니 그 당시의 가치는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만 할 따름이다.

   로만글라스라는 유리그릇이 어떤 길을 따라 서라벌까지 와서 왕실에서 쓰는 귀중품이 되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역사를 더듬어 보았다. 로마에서 신라로 오는 그 사이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역할을 한 것은 터키의 이스탄불이라는 무역항구이다. 작년에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경주와 시발지인 이스탄불에서 동시에 세계문화엑스포 2013’이 열려 문화교류의 장을 펼쳤다. 이 행사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여러 모로 뜻있는 행사라는 생각이 든다.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이라는 학습단체에서 실크로드를 가게 되었다. 천산남로를 따라 역사를 더듬어 가는 탐사여서 처음부터 강행군이었다. 천산산맥은 지형이 험준한 돌산이라 척박한 곳이다. 게다가 그 지역은 비도 거의 안 내리는 사막지대이다. 그런 곳이라 차로 이동하는데도 힘들었다. 실제로 급작스런 기후변화로 폭우가 내려 산사태를 만났다. 차가 오도 가도 못하고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도 생겼다. 그러니 낙타로 물건을 실어 나르고 걸어 다니던 그 옛날에는 어땠으랴 싶었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어려운 여정을 거처 신라 땅으로 물건이 유입되었을 것이다. 정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물관의 전시품은 말없이 놓여 있지만, 저마다 깊은 역사와 사연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각각의 유물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언젠가 끌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유리그릇처럼 어느 날 누가 찾아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유리그릇은 아마 옛 신라의 왕실로 돌아가 다시 왕의 그릇이 되고픈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왕의 무덤 속에서 그냥 그대로 있기를 원했는데 사람들에 의해 발굴된 것을 싫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도 아니라면 박물관 전시실에 앉아 태어난 고향인 로마에서 서라벌로 오기까지의 여정을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어보고 조용히 있기를 바라는지도 모를 일이다. 엉뚱하게도 벼라 별 상념이 다 떠오른다.

   옛 것만 배우는 것이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꼭 익혀야 될 필수덕목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다. 깨지고 금이 간 하나의 유리그릇이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매시지는 너무나도 크다. 지나간 역사는 내일을 설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하는 원동력 이라는 걸 유리그릇을 보고 배운다.

   다시 한 번 경주박물관으로 가서 유리그릇을 만나보았다. 이젠 옛 것에만 머물 것이 아니다. 옛 서라벌이 아닌 지금의 경주 땅에서 새로운 문화가 발돋움을 할 때가 왔다고 유리그릇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찬란했던 옛 문화를 오늘에 되살려 현실로 다가올 날을 기대하며 박물관을 나섰다.